몽골 풍경
몽골에 다녀온 지 어느새 두 주가 되어간다.
마음의 여독을 추스르지 못해 한 주가 덧 없이 가버리고, 뒤늦은 후회 속에 미뤄둔 농사일 제끼느라 쎄가 빠진다. 농민회 일도 그렇고..
이래 저래 몽골의 기억은 아스라한 추억으로 산화하기 일보 직전에 있다. 편집된 기억의 조각들만 떠다니기 전에 뭐라도 끄적여둬야 하겠다.
드넓은 땅덩어리, 고작 한 주, 내가 가본 곳이라곤 몽골 중앙부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몽골의 풍경은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압도적인 광활함이 지배한다.
허나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오름 많은 제주의 중산간을 뻥튀기해놓은 듯도 하고, 수목한계선을 넘어 백두고원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도 했다.
어중간한 렌즈로는 몽골 풍경을 감당할 수가 없겠더라. 하여 대부분의 풍경 사진은 전화기에 부착된 초광각 렌즈가 담당했다.
몽골 인구는 대략 3백만, 그중 150만 가량이 울란바토르에 산다.
면적은 한반도의 7배, 몽골 인구밀도를 남한에 적용하면 많게 잡아 17만 명 정도가 사는 꼴이라 하니 울란바토르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양과 염소, 말 그리고 야생동물들이 차지하고 산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길이여 길이여 너의 끝은 그 어디
한 생을 걸어도 못다 걸을 길이여
먼 길을 왔다고 돌아보지 말라
전사가 가는 길 후회가 없다네
몽골의 길은 크게 세 가지 정도 되겠더라.
포장길과 비포장길, 그냥 가면 길이 되는 길..
몽골의 길은 단조롭다. 모퉁이를 도는 맛도 없고 고개를 넘는 맛은 밋밋하다.
무지막지하게 먼 거리를 이동하지 않는 한 길 위에서 뭔가 변화를 기대했다간 실망하고 말 것이다.
천리길 끝난 곳에 만리길 또 있어라.. 노랫가락이 절로 나오는 몽골의 길.
초원 깊숙이 파고 들어가는 비포장길은 그저 길 자체로 아름답더라.
새벽녘 쏘내기가 살째기 지나갔다.
몽골에서 첫 밤을 보내고 맞은 아침, 숙소 인근 가장 높은 산에 올랐다.
산이라기보다는 초원의 정점? 그리 멀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왕복 두 시간, 막상 나서니 꽤 멀더라.
산 위에는 돌탑이 있었다. 낯익은 풍경, 산봉우리에 돌무더기를 탑으로 쌓아 올리는 건 조선이나 몽골이나 매 한 가지로군. 다른 나라는 안 가봐서 모르겠다.
산봉우리와 고갯마루의 돌무더기, 그래 사람이란 누구나 염원이 있기 마련이다.
몽골에서 산을 타면서 네 개의 봉우리에서 돌탑을 만났다.
예까지 왔는데 저기는 한번 가봐야겠다 하고 오른 곳에 꼭 돌탑이 있더라.
몽골 사람들은 언제 산에 오르는 것일까? 산 위에서 한 번도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저 흔적을 보았을 뿐.. 아마도 가족과 가축의 안녕을 기원하는 유목민들이겠지, 그들 말고는 달리 사람도 없다.
우리는 산을 보기 위해 산에 오른다. 산에서 바라보는 산이야말로 산을 타는 이유가 된다.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능선에 서면 세상은 어찌 보일까 하는 기대가 동반된다.
그런데 적어도 몽골에서는 저 산 너머에 대한 기대는 버리는 것이 좋겠더라.
애써 오른 능선 너머 하나도 다르지 않은 똑같은 풍경이 펼쳐질 때의 실망감이라니..
쩌기 가면 분명 늑대가 있을 것 같은데 만나는 건 염소 떼.. 아니 이 녀석들이 어찌 여기까지?
그 허탈함이라니..
물 귀한 몽골에서는 씻지 않아도 된다. 이 아니 좋을쏘냐?
몽골 여행에서는 쓸데없는 몸단장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몽골 사람들 여럿 만나봤지만 역시 세수 안 하고 살더라. 아~ 이 동질감이라니..
그래도 때에 절어 꾀죄죄해 보이는 사람 하나 없더라.
말 위의 몽골인들, 그들의 뒤태는 위풍도 당당하더라.
그들이 내지르는 말 모는 소리, 양 떼 모는 소리가 초원을 호령하더라.
체구 단단하고 키 낮은 몽골 말 한 마리 가지고 싶더라.
통하지 않는 말, 손짓 발짓에 대화 전반을 맹칼없는 웃음으로 때워도 알 수 있다.
잘 씻지 않고 살아도 그들이나 나나 구김살 없는 사람들, 배짱이 잘 맞겠다 싶었다.
그들과 주고받은 술잔, 숙취를 잡아주던 수태차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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