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왔네  때가 왔네, 다시 못 올  때가 왔네"

“칼노래라는 것은 우리 대신사 수운 선생께서 여기 전라도 남원 선국사 은적암에 머무르실 때 지으신 노래올시다. 여기 은적암에서 석 달을 머무르셨는데, 그 사이 도력이 더욱 왕성하시니, 그 희열을 금치 못하여 스스로 노래를 지으시어 달 밝고 바람 맑은 밤을 타서, 목검을 짚고 묘고봉상에 홀로 올라 노래를 부르며 칼춤을 추시니, 그 노래를 일러 검결 즉 칼노래라 하였습니다.”(녹두장군, 송기숙 저)

"때가 왔네 때가 왔네 다시 못 올 때가 왔네. 만년에 하나 날까 말까 한 대장부가 다시 못 올 때를 만났으니,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 쓰고 어찌할 것인가? 기세 좋게 칼을 들어 천지를 감당하고, 일월을 희롱하며, 우주를 덮을 용맹을 떨치니 만고명장인들 당할 수 없으리라."

1892년 11월, 교조신원을 명분으로 삼례에 모인 동학교도들이 칼노래를 부르며 집단 칼춤을 추는 장면이다. 때는 바야흐로 혁명전야, 30년 전 사도난정의 죄로 처형당한 교주 최제우의 칼노래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동학의 여러 노래를 모은 용담유사에도 수록되지 못하고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던 칼노래였다. 

‘사도난정’이란 무엇인가? 삿된 가르침으로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것이다. 
“(동학의 무리는) 귀천이 같고, 등급과 지위의 차별도 없다. (그리하여) 백정과 술장사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그들은) 남녀를 차별하지 않는다. 포교소를 세우자 과부와 홀아비들이 모여들었다. 재물과 돈을 좋아하여 있는 사람과 없는 이들이 서로 도우니, 가난한 이들이 (매우) 기뻐한다”(동학배척통문, 1863년). 영남의 유림들이 돌렸다는 통문의 내용이다. 지배계급 양반들의 눈에 비친 동학은 이처럼 천지분간 못하고 계급질서를 어지럽히는 불온한 무리였다. 더구나 천지개벽을 암시하는 칼노래까지 불러대니 어찌 두고 볼 수 있었을 것인가? 오늘날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어떠한가? 과연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1892년~1893년 진행된 동학의 교조신원운동은 동학농민혁명의 전사에 해당한다. 억울하게 처형된 교주의 명예를 회복하고 포교활동을 합법화하며 교도들에 대한 무고한 탄압을 제거하자는 것이었다. 이 운동은 교단 상층부의 순수 종교적인 측면을 뛰어넘어 하층 농민들의 반봉건, 반외세 운동으로 발전되었으며 동학농민혁명의 조직적 담보로 되었다. 

당시 민중들은 동학의 그 무엇에 열광했을까? “나의 마음이 곧 네 마음, 한울님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이니라” 동학은, 인간 평등을 역설했고 최제우는 두 여종의 족쇄를 풀어 며느리와  딸로 맞아들여 자신의 교리를 몸소 실천했다. 동학의 인간해방과 개벽사상이야말로 당대 조선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핵심 교리였을 것이다. 

때가 이르렀다는 혁명가 최제우의 칼노래는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는 백산 격문으로,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가리"라는 민중의 노래로 계승되었으며, 역사의 고비마다 의병투쟁으로 민중봉기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민중의 발걸음은 결코 멈춤이 없을 것이다. 구시대의 마지막 지점, 새로운 백년의 문턱에 서서 다시 오지 않을 때가 이르렀다는 칼노래의 서슬 퍼런 기상을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