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모내기를 하던 지난 17일 도연맹에서 일하는 갑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쌍용자동차에 쌀을 싣고 올라가야 하는데 내 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 심다 말고 얼결에 그렇게 하자고 대답해놓고는 걱정이 늘어졌다.
모내기는 끝났다 하지만 연속되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못가는 걸로 돌려보려 했으나 허사였다.

19일 새벽 길을 나섰다.
그제서야 쌀의 내력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쌍용차 노조의 파업을 지지, 지원하는 범국민 대책위의 모금으로 마련한 쌀이라는 것과, 한정된 모금액으로 한톨이라도 많은 쌀을 사기 위해 노력한 결과 전북도연맹을 통해 익산의 모 RPC에서 구입하게 되었다는 것.
그러니 불평 말고 긍지심을 가지고 운전하라는 것이다.


쌍용자동차 정문에 도착하니 약속한 10시 30분이 지나 11시가 다 되어간다. 
물리력을 동원한 회사측의 진입시도가 무산되고 협상국면으로 전환된 때여서인지 공장 앞은 평온해보인다.
기자회견을 위해 노동자들이 모여 있고 차량 진입을 위해 문이 열렸다.

함께 살자! 우리는 이긴다!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쌍용차 노조와 범국민대책위 관계자, 파업노동자들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 . 리 . 해 . 고 . 분쇄 . 투쟁 . 결사 . 투쟁 !

전농 한도숙 의장이 쌀을 전달하고 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선봉대 대원의 안내를 받아 쌀을 하차하기 위해 공장 깊숙히 진입하였다. 
연대와 승리를 기원하는 타 단체, 부문의 현수막과 대자보가 공장 도처에 게시되어 있다.
아쉽게도 전농의 현수막은 보이지 않는다.
40여일이나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는 굴뚝을 지난다. 
대오를 지어 굴뜩 밑을 지나던 노동자들이 굴뚝을 향해 함성을 지른다.
공장 요소요소마다 공권력 투입, 사측의 진입에 대비한 바리케이트가 설치되어 있고 뭔가 임무를 띤 노동자들이 대오를 지어 움직인다.
팽팽한 긴장감이 있으되 평화로운 나른함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공장 안은 아무 문제없어 보인다.

쌀을 하차하였다.
쌀은 20KG 100포대, 이정도면 나흘간 먹을 수 있다 한다.
하루 500KG을 소비하는 셈이다.

구내식당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구내식당은 노동자들이 직접 관리하고 있다.
깎지 않은 수염이 멋진 노동자들이 배식과 설겆이를 담당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밑반찬에 돼지고기 썰어넣은 김치국이다. 
노동자들은 라면을 끓여 밥을 말아먹기도 하고 각자 소장하고 있는 밑반찬을 꺼내놓고 함께 나눠먹기도 하는 모습이다. 
맛있게 먹었다.

공장을 나서는 길, 마지막 출구에서 노동자들이 검문을 한다. 
쌀을 싣고 왔던 차량이라 하니 깎듯이 인사하고 문을 열어준다. 
감사하다고,, 안녕히 가시라고..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뻗친다.

우리 동네에 쌍용차에 다니는 형이 있다. 
평택에 다녀온 이튿날 그양반 어머니가 우리 철쭉 심는데 일을 오셨다. 
어제 쌍용 자동차 공장에 다녀왔다 했더니 하나가 아니라 큰아들과 싯째아들 둘이 쌍용차에 다닌다고 한다. 
그 형들이 어찌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통 말을 안하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내 말을 들은 어머니는 걱정에 땅이 꺼진다. 
더구나 싯째는 인자사 애들 한참 갈칠 나이라는 것이다.
괜히 말했나 보다. 

나한테 한마디 하신다. 
"집이들이 어찌코 잘 히봐, 우리야 뭔 심이 있당가"
그러나 힘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쌍용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