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 화백은 20년이 넘는 세월을 농민으로 살며 농민운동에 헌신하였다.
삼천리 방방골골 농민회 사무실마다 박홍규 화백의 판화나 그림이 없는 곳이 없고 농민들은 그를 농민화가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2년 전  한국농정신문이 전농에 의해 재창간되면서 만평을 연재하기 시작하였고 '박홍규의 농민만평'은 농정신문의 가장 인기있는 구성부문이 되었다.
그런 그가 올 7월부터 일관되게 그리는 것은 산더미같은 쌀가마이다.


7월 20일.
벼가 잉태하여 농민들이 이삭거름을 줄 시기.
추수는 멀었지만 이미 예견된 추수기 쌀대란을 막을 해법으로 '대북지원 법제화'를 제시하고 있다.


8월 10일.
닥쳐올 쌀대란의 원인과 책임이 다름 아닌 정부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8월 17일.
광복절을 맞아 농민들은 전국에서 쌀을 싣고 임진각으로 모여 대북지원 재개와 법제화를 촉구하였다.
당시 농민들이 모은 쌀 40톤은 인천항을 통해 북으로 보내졌다.
대통령 이명박이는 여전히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8월 2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였다.
6.15와 쌀 대북지원을 높이 평가하였다.


8월 31일.
정부의 쌀 조기 관세화 방안은 식량안보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망국적 처사이다.


9월 7일.
농촌현장은 조벼 수확을 앞두고 쌀대란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9월 14일.
우리나라 쌀 생산의 주요거점 전남북, 충남의 농민 1만여명이 전주에 모였다.
쌀투쟁의 서막.


9월 21일.
민주노동당 오은미 전북도의원이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21일간 단행된 오은미 의원의 단식농성은 3천여 전북농민을 궐기케 하고 김완주 지사를 굴복시켰다.


10월 19일.
추수가 한창인 농촌 들녘의 들끓는 민심을 형상화하였다.


10월 26일.
농촌현장과 각계각층의 빗발치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이명박이는 중국산 수입옥수수 1만톤 대북지원을 발표한다.


11월 9일.
개사료보다 못한 쌀값은 개만도 못한 이명박 정권이 초래한 비극적 현실이다.

450만 농민은 박홍규 화백 쌀가마 연작의 조기 종료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