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방장산은 나하고 인연이 꽤 깊다.

지금은 없어진 모교 초등학교 교가에 방장산이 나온다.

'바앙장산 굽어보는 희망찬 동산..' 재작년엔가 그 자리에 서서 방장산 주릉이 한 눈에 잡히는 걸 확인한 바 있다.  

실제로 방장산에 올라본 건 20대 하고도 중반이 된 이후의 일이지만 뇌리 속에 이미 방장산이 깊이 각인되었을 터이다.

고창 사람들이 이런 저런 연유로 대부분 그럴 것이다.  

 

최초로 방장산에 오른 건 아무래도 1991년도일 것이다.

1989년 가을 농사를 짓겠다고 고창에 내려온 이후 농민회 산하에 청년모임이 만들어지면서 고창의 젊은 청년 농사꾼들하고 함께 올랐었다. 

지금은 딴 세상 사람이 되어버린 만주형과 고창읍내 젊은 언니들 생각이 또렷하다.

당시 고창읍내의 끝자락에 있던 실내 체육관에서 출발하여 월곡 마을을 지나 이른바 600 고지(지금은 억새봉이라 부른다)를 거쳐 꽤 오랫동안 방장산 정상이라 여겨지던 헬기장이 있는 700 고지(지금은 봉수대라 팻말 박혀 있다)를 밟고 용추골로 급전직하하여 세곡마을까지 걸어 나가 버스를 타고 고창읍내로 돌아오는 꽤 힘든 노정이었다.

자가용도 없고 대중교통도 시원치 않았던 시절의 일이다.

청년모임에서 내던 소식지 이름이 '방장의 함성'이었다.

 

한번 발길이 닿은 이후로는 구석구석 헤집으며 줄기차게 방장산에 다녔다.

특히 연애하던 시절에는 참 많이 다녔다. 눈만 오면 올라가서 600 고지에서 소주 한병, 700 고지에서 소주 한병을 비우고 내려오곤 했다.

횟수도 횟수지만 이래저래 참 많은 사람들하고 올랐다.

벨 볼일 없긴 하지만 나의 산 타는 능력은 대부분 방장산에서 연마되었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기도 여러차례 이번에는 장성해버린 아들놈이랑 올랐다. 
 

 

몸무게 많이 나가는 녀석인지라 좀 편히 오르는 길을 택했다.

방장산 휴양림에 차를 받치고 임도를 따라 오르다가 가평으로 넘어가는 파릿재로 오른다.

휴양림이 들어서기 전 이 계곡은 망골이라 불렸다.

맞은편 용추골과 더불어 방장산에서는 가장 물 많고 수려한 계곡이다.

파릿재는 옛날 가평 사람들이 장성 넘나들던 고개라고 가평 계시던 고광인 선생님이 일러준 이름이다.

 

 

서산에 해가 걸렸다. 좋던 날씨가 오후 들어 흐려지면서 간간이 눈발이 날리고 있다.

 

 

임도를 따라 오르다가 잠시 비탈을 타니 이내 방장산 주릉에 올라선다.

눈을 이고 있는 편백의 기상이 힘차보인다.

 

 

이제 능선을 따라 오른다.

 

 

정상 못미친 부근에서 서쪽 하늘이 잠시 열렸다.  이미 구름바다 속으로 잠겨버린 2012년 마지막 해가 토해내는 붉은 기운이 힘겹게 느껴진다.

그래 이렇게 또 한해가 가는구나. 어찌 되얐건 잘 가시라 2012년.

 

 

방장산 정상, 목적지까지는 20여분 더 가야 한다.

그놈 볼딱지 터질락 한다.

 

 

가평 들판이 잠시 열렸다.

 

 

저기 저 뒷봉우리까지만 가면 된다.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에 당도하여 눈을 다지고 천막을 치고 나니 날은 이미 어둑해졌다.

다행히 바람이 세차지 않았으나 천막을 고정시키는 말뚝이 없어 다소 고생하였다.

분명 바람이 일어날텐데 좀 걱정이 된다.

 

 

가볍게 소주 한잔 하고 자리에 누우니 무려 아홉시도 안되었다.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잠이 오니 우선 자야지 별 수 없다.


눈을 뜨니 12시 40분, 해가 바뀌었다.

바람도 없이 고요한데 밖이 환하다.

잠시 밖에 나가보니 달은 중천에서 교교히 빛을 발하고 산 아래 고창사람 사는 동네는 불빛이 찬란한데 장성 방면으로는 구름바다..

별도 여러개 보인다.

 가히 월하선경, 전화기 사진기로는 감당이 안되는 풍경이다. 별도로 사진기를 가져왔어야 했다.

그냥 마음 속에 담아두는 수밖에..

 

천막을 뒤흔드는 바람소리에 다시 눈을 떴다. 두시가 살짝 넘었다.

세찬 바람이 비좁은 천막을 뒤흔들며 등을 떠밀어댄다.

말뚝이 없어 나뭇가지로 고정시키고 눈을 다져 눌러놓은 천막 덮게가 훌렁 벗겨질 것 같은 걱정에 뒤척인다.

바람은 갈수록 거세지고 한시간 정도 간격으로 눈이 떠진다. 천막에 맺힌 성에가 끊임없이 쏟아져 침낭 겉이 얼었다.

그래도 침낭 속은 보송보송하고 따뜻하다.

 

 

7시 기상하였다. 천막과 덮게 사이 공간이 이렇게 되었다.


 

해뜰 시각이다. 그러나 눈보라만 거세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가 안뜨지는 않겠지. 눈에 안보인다고 해가 없나?

제아무리 눈보라 거세고 가야 할 길 험난하다 해도 해는 뜬다.

2013년 새해가 밝았다.  

 

천막 덮게가 얼마나 단단히 고정되어 있던지 걷느라 고생하였다.

덮게가 훌러덩 벗겨지는 상상은 기우에 불과하였다.

 

 

이제 내려가자.

그나 눈보라 한번 기세 좋게 휘몰아친다. 

 

 

산은 뭐 거의 환상적이다 못해 몽환적이다.

지금 내리는 눈은 서설이겠지?

 

 

전망대, 지금은 아무것도 보여줄 수 없지만 쾌청한 날을 기약하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편백숲의 기상이 꼿꼿하고 힘차다.

온갖 시련과 난관을 극복하며 역사를 창조해가는 우리들 민중의 기상을 닮았다고 생각하고 다짐한다.  

 

 

짜식 좀 홀쭉해진것 같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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