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천관산 달팽이 산행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하였다.
천관산을 오른다.
천관산은 이래저래 장흥 위씨들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위씨 집에서 자고 나서는 길이라 각별하게 느껴진다.
천관산 기슭의 방촌 마을은 위씨들이 모여 살고 산으로 드는 입구에 '장천재'라는 위씨들의 재각이 있다.
장천재를 들머리로 삼아 산행을 시작한다.
매표소를 지나면서 시나브로 거칠어진 빗줄기가 우산을 꺼내게 만든다.
장천재 입구 청뢰문에 서서 우뢰 소리를 기다려보지만 들리지 않는다.
장천재를 지키다 늙어 죽은 소나무가 애처롭다.
팔색조 어린 녀석을 보았다. 최소한 세마리 이상은 되어보이는 녀석들을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가다 땅벌집을 건드려 벌 두방 쏘이고 퇴각.
10여분가량 몸의 반응을 살폈으나 이상 없어 금강굴을 지나 환희대에 이르는 길을 잡아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정상 거쳐 양근암이 있는 능선길을 따라 하산할 계획이다.
장천재를 떠나 계곡 건너 가파른 산길을 올라 능선에 붙고 나서도 한참을 땀을 쏟아야 전망이 트이는 곳에 이른다.
비가 그치고 우산은 양산이 되었다.
간간이 전망이 트이는 곳에서 땀을 식히며 고도를 죽이다 보니 제대로 된 암봉(선인봉)에 도달한다.
대략 1시간 20분가량이 걸렸다. 더디게 걷고 많이 쉬었다.
왼편으로 부용산, 저 멀리 억불산과 그 너머 제암산, 사자산, 일림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의 능선이 조망된다.
철쭉 명산 일림산
이름값하는 제암산, 제암산 앞에 사자산이 납작 엎드렸다.
득량만, 복판의 섬이 득량도가 되겠다.
그 너머가 고흥반도, 그 중 가장 높이 솟은 산이 팔영산
종 모양을 닮았다는 종봉 바위 틈새기에 뿌리내린 돌양지와 억새
저 아래 선인동, 그 위에 종봉, 여기는 노승봉쯤 되겠다.
천주봉
천관사 쪽에서 오르는 능선의 암봉들
여기는 어디쯤인지 잘 모르겠다.
환희대에서 바라본 득량만, 여기까지 오는데 무려 3시간 40분이 걸렸다.
정읍에서 서울 가는 시간보다 더 걸렸다. ㅎㅎ
정상(연대봉)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
구룡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강진. 해남 방면의 산과 바다가 조망된다.
억새밭이 넓어 억새꽃 흐드러지는 늦가을에 오면 좋겠다.
아주 맑은 날에는 한라산이 보인다고 한다.
부드러운 능선을 걸어 정상에 당도하였다. 해발고도 720미터. 환희대에서 다시 40분 소요, 이건 숫제 달팽이 산행이다.
새 본다, 나비 본다, 땀 식힌다 이래저래 많이 쉬며 할랑할랑 걸었다.
정상 못미친 능선 아래 '감로수'라는 샘이 있는 것으로 지도에 표시되어 있고 이정표도 있으나 정작 샘에 이르는 가장 근접한 지점에는 안내판이 없다.
이래저래 더듬어 찾아갔지만 방치된 샘은 마시기에는 매우 곤란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바가지에는 올챙이들이 헤엄치고 있다. 그래 올챙이 너네나 잘 살아라.
목말라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실제 그 정도는 아니었다 보다. 미련없이 돌아서 나왔으니..
봉수대 위에 올라야 실제 정상에 올랐다 말할 수 있을까?
봉수대에서 보이는 일대 경관에 대한 그림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지만 대부분 벗겨져 뭐라 써 있는지 해독이 되지 않았다.
지나온 산길 위에 놓인 종봉, 노승봉, 대세봉, 천주봉이 보이고 그 너머 너머에 월출산이 우뚝 솟아 하늘에 닿아 있다.
양근암
금강굴
하산 경로에 놓인 양근암, 참 야물게 생겼다.
오름길에 있었던 금강굴 혹은 또 다른 능선에 있는 금수굴과 음양의 짝을 이룬다 한다.
양근암을 지나고 나서는 뭐 이렇다할 조망처가 없다. 아니 있어도 그냥 지나쳐왔다.
이제사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한다. 조망도 없고 바람도 없는 가파른 산길을 서둘러 내려가려 하지만 내리막길이 다소 사납다.
주차장에 당도하니 4시, 무려 여섯시간 하고도 40분가량을 산에 머물렀다.
급하게 차를 몰아 정읍까지 쉬지 않고 달리니 5시 50분이 되었다.
벌 쏘인 자리가 욱신욱신, 후끈후끈하다.
으악새 흐드러지는 시기에 다시 가게 된다면 천관사에서 올라 구룡봉 거쳐 탑산사 쪽으로 하산하는 길을 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