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도요가 나타났다. 

5년만에 다시 본다. 

언젠가 소성 사는 농민회원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런 놈 보시거든 신고하라 했더랬다. 

대뜸 우리 논에서 봄마다 본다 말하기에 믿지 않았다. 

너무나 쉽게 대답하기에 아마도 꺅도요랄지 하는 녀석을 잘못 본 것일거라 생각했다. 

애써 물어봐놓고 믿지 않은건 무슨 심보였던지 모를 일이다. 

상대를 앝잡아 본거다. 앞으로 그러지 말아야지.. 

몇년 전 일이다. 



그런데 전화기로 사진이 날아왔다. 

논에서 로타리 치는데 이 녀석들이 논바닥에서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호사도요다. 잘못 본게 아니었군..

녀석은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논에서 번식하고 새끼를 키우고 있었다. 

그러던 차 트렉터 작업으로 은신처가 사라지자 이처럼 새끼를 달고 논바닥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전화기로 박은 것이니 무지하게 근접한 사진이다. 

어미를 따라 이리저리 피해 다니던 새끼들이 기진맥진하여 잘 달아나지도 못하게 되자 일부러 멀리 떨어져 작업하면서 새끼들 위협하는 왜가리들 쫓아내느라 무지 애썼다고 힘주어 자랑한다. 



맘 같어서는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 시각 나는 부산에 있었다.

이튿날 아침 모종의 과제를 수행하고 나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한바퀴 둘러보고 '역시 다른 논으로 이동했구나'라고 생각할 찰라 여전히 그 논에서 새끼를 달고 이동하는 호사도요가 눈에 들어왔다. 

우선 증거를 남기고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다 그만 발목이 뒤집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달린다. 절뚝이면서..





그 사이 보이지 않는다. 

논두럭을 살살 짚어 걸어가는데 발 밑에서 어미가 황급히 난다. 

다친것처럼 날개를 퍼덕이며 논바닥을 기던 녀석 이내 작전을 바꿔 위협하듯 달려든다. 

새끼들은 발 밑 어딘가에 있을 터인데 보이지 않는다. 

꼭꼭 잘 숨었군..


다급한 어미의 황망한 날개짓을 뒤고 하고 현장을 빠져 나왔다. 

뒤집어진 발목이 심상치 않다. 

한의원에 들러 치료를 받고 해질 무렵 다시 현장을 찾았다. 

녀석들은 모가 한창 자라고 있는 옆 논으로 이동해 있었다. 

이렇게 옮겨간 녀석들도 현명하지만 찾아낸 나도 대단하다. 

호사도요와 나는 인연이 깊다. 





논배미 깊은 곳에서 정기적으로 새끼를 품어주면서 여유롭게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거리가 너무 멀어 아쉽긴 하지만 안정되고 평화로운 모습을 보니 발목 통증이 다 가신다. 

새끼 잘 키우도록 하여라. 


사진을 보내준 선배 말에 따르면 이 근방 논에서 매년 눈에 띈다 하니 녀석들은 텃새처럼 눌러앉아 살고 있는 모양이다. 

지금은 보이지 않으나 고창에 있던 녀석들도 월동과 번식이 확인되었던 점을 고려하면 미조 혹은 나그네새로만 기록되어 있는 것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지 않겠나 싶다. 

호사도요는 수컷이 새끼를 키운다. 내가 목격한 바로는 혼자 키울 뿐만 아니라 암컷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한다. 

엄마같은 아빠, 호사도요의 부성애가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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