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울적해서 길을 나섰네~
하루 내 이 노래가 입에 맴돌았다.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다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 방장산에 올랐다. 
이미 늦은 밤, 달이 밝다. 보름이거나 아니면 그 근방이거나..

홀로 나서는 밤산행은 약간의 공포를 동반한다. 
자연히 걸음이 빨라지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되지만 정신은 오히려 가볍고 맑아진다. 
조망이 터지는 능선에 오르면 순식간에 무섬증은 사라지고 아랫 세상을 내려다보며 알지 못할 희열에 휩싸인다. 

30분 나마 땀을 쏟아 갈미봉에 올랐다.
허공의 달은 휘영청 밝고 장성 너머 광주쪽 하늘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따금 양고살재를 넘나드는 자동차 불빛이 꼬부랑길을 휘감고 돌 뿐 인기척이라곤 없다. 

방장산은 구절초가 이쁘게 피는 산, 달빛에 어린 구철초가 청초한 빛을 발한다.

벽오봉에서 바라보는 고창 읍내의 불빛이 휘황하다. 
날로 궁핌해지는 어두컴컴한 촌사람 사는 동네와 대조된다.  
불빛 뿐일까? 그렇겠지? 지금이 어느 시대라고..
박근혜 치하에서 그 누구의 살림살이라고 편할 것인가..

방장산 주릉이 어둠 속에 듬직하다. 
움푹 패인 파리재 너머 저 불빛은 흥덕 것인가, 정읍 것인가..
저 산길은 내일 축내기로 하고 벽오봉 아래 해맞이 데크에 짐을 푼다. 

천막은 가져오지 않았다. 판쵸우의로 지붕을 만들고 깔판 위에 침낭을 편다. 
바람이 차지만 두툼한 침낭이 있으니 오늘밤은 안락할 것이다.

오하기문, 오늘밤 이 책 보다 잘거다. 
청소년 시절 공원 벤치 등지에서 한뎃잠 자는 것을 "난장깐다"고 말했댔다.
오늘밤은 '월하난장'이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지붕을 걷어야 되나?
헉.. 어느결에 자정이로군..

2016/10/14 - [산이야기] - 억새봉의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