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지리산, 종주에 나선 사람들.. 나도 그 틈에 낀다. 

하루 늦게 선비샘에서 합류하기로 하고 의신 마을에서 선비샘으로 오르는 직동 길을 찾아 등산로의 특징과 경로 등에 대해 머릿속에 잘 넣어 두었다. 

초행길이지만 선 답자가 남긴 gpx 파일이 있어 든든하다. 

구례 사는 갑장 농사꾼이 실어다 주고  밥까지 사준다. 

상쾌한 기분, 뱃심 좋게 길을 나선다. 

산으로 곧장 이어지는 마을 골목길을 지나 몹시 가파른 산발에 일궜던 논밭을 지난다. 

묵은 지 오래, 돌로 쌓은 축대는 무너지고 논밭에는 잡풀만이 무성하다. 

가파른 산발을 타고 올라 작은 능선을 넘으니 산허리를 감아도는 매우 편안한 길이 이어진다. 

잘 닦인 길,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돌돌 물흐르는 골짝을 건너 다시 오름길이 시작되는 곳, 고로쇠 물 받을 채비를 하느라 산에 오른 마을 분들이 쉬고 계신다. 

눈이 한번도 내리지 않았냐 했더니 비가 와서 다 녹았다 한다. 

녹차 한잔 얻어 묵고 쭉 올라가면 된다는 격려를 받으며 다시 길을 나선다.  

색 바랜 단풍잎이 해를 넘기고도 떨어지지 않았다. 

다소 희미하긴 하지만 길은 분명하다. 하지만 잠시라도 한눈팔았다가는 길 놓치기 십상이다. 

길을 찾았다 놓쳤다 하면서 산을 오른다. 희미한 길이나마 길을 따라 걷는 것이 훨씬 빠르고 편하다. 

 

눈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더니 고도가 올라가면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있는 듯 없는 듯 이어지는 이런 산길 좋다. 

 

희미한 산길을 더듬어 좀 더 굵직한 능선을 넘으니 벽소령으로 가는 오래된 임도(작전도로)가 나타난다.

정신없이 임도를 따르다간 벽소령으로 가게 된다는 정보를 머리에 입력해 두었으나 나도 그랬다.  

아차 싶어 오던 길 100여 미터를 되돌아가니 임도를 버리고 산으로 드는 길이 보인다. 

이어지는 낙엽송 조림지역, 크고 작은 산죽과 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이 꽤나 성가시게 길을 막아 나선다.

아까 만난 마을분들도 낙엽송 조림지역을 지나기가 사나울 것이라고 했더랬다.  

 

차라리 네발로 걷고 잡다.

 

낙엽송 이파리에도 살초 성분이 있을까? 

조릿대가 집단 고사한 구간을 지난다. 

 

낙엽송 조림 지대를 벗어나 얼마간 오르니 펑퍼짐하고 편안한 능선길이 나타난다. 
덕평봉에서 뻗어 내린 덕평봉 남릉 길에 당도한 모양이다. 

군데군데 잔설이 남아 있으나 여전히 눈이 없다. 

 

지리산길이 이다지도 편해도 되나 싶을 정도, 선비샘에 이르기까지 길이 이렇다. 

 

능선상의 바위를 잘 골라 올라서야 조망이 터진다.
그것도 주릉을 바라보고 오른쪽, 남부 능선 방향으로만..

선답자의 산행기에서 봤던 좌선대 부근이었던 듯.. 좌선대를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고 지나쳤다.  

남부 능선 끝자락 삼신봉이 솟아 있고 멀리 백운산, 그 사이로 섬진강이 흐른다.

 

능선 곳곳 수북이 쌓여 있는 도토리, 다람쥐는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어디선가 배 두드리며 늘어지게 자고 있는 모양이다. 

 

느닷없이 나타난 경고문, 어라? 다 와부렀네..

'임걸년 못'이랄지 하는 곳을 살펴보지도 못했는데 지나친 건지 경로가 살짝 달랐던 건지 확인할 수가 없다. 

그나 돌아가라는데 어떡하지? 성의 없게도 달아놨다.  주릉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이 보게 해야지 참 놔..

바로 코 앞이 선비샘, 반달곰 활동지역으로 들어간다. 

주릉 종주대와 시간을 맞추자고 느적느적 걸었어도 세시간 반이 걸렸다. 

통상 세 시간 잡으면 충분할 듯..

 

시종일관 반야봉 방면 조망은 터지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gpx 파일을 첨부한다. 

 

의신선비샘.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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