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속에 맞이했던 19호 태풍 솔릭은 상처 대신 선물을 주고 갔다. 
비가 많이 왔으나 큰비라 할 수 없고, 바람 꽤나 쳤으나 된바람이라 할 수 없다. 
폭염 또한 물러날 것이라 하니 선물도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는 나를 위주로 하는 말이니 보편타당하지 않다. 

태풍전야, 22일의 저녁노을

23일 오전, 집 앞 전나무

밤 사이 태풍이 고요히 지나갔다.
들판은 무탈하다. 

쫄아든 저수지에도 물이 차오르겠지..

뙤밭 물주기도 이제 졸업이다. 

밤사이 메밀싹이 올라왔다.
파종한지 열흘이 넘었다.
늦어서 어떨지 모르겠으나 좌우튼 싹이 텄으니 되얐다. 
지가 늦게 올라온 만큼 서둘러 크것지. 

우리집 껄맠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여럿 있었다. 
오동나무 2주, 은행나무 암수 각 1주, 전나무 3주..
이 전나무는 수차에 걸친 태풍의 습격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유일한 나무다.  
그 언젠가 기록적인 강풍을 동반한 태풍이 고창을 덮쳤을 때 다른 나무들은 무사했으나 이 전나무는 얼병이 들었다. 
바람이 30분 가량만 더 불었어도 이 나무는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이 나무는 시나브로 쇠약해져갔다. 
2012년 다시 된바람을 동반한 태풍이 습격했을 때 이 전나무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나무들이 죄다 쓰러졌다. 
전화위복,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져 많은 가지를 잃어버린 이 나무는 바람을 타지 않았던 탓에 홀로 살아남았다. 
온몸에 딱따구리 구멍이 파이고 이제 몇년이나 더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이 나무 아래 홀연히 날아온 능소화가 싹을 틔웠다. 
그리고 올해에는 이렇듯 꽃을 피워 죽어가는 이 나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 전나무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최후를 장엄하게 장식할 동반자를 얻었으니..
껄맠 전나무는 오늘도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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