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사회봉사 마지막 날이다.
고추를 땄네, 한 나절씩이나..
나는 꽤 오랫동안 된장 발라먹을 풋고추 딸 때 말고는 고추밭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얼마 만인가? 내 고추밭에 얼씬도 하지 않은 건 어머니 돌아가신 다음부터였다. 
그러니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해 여름 땡볕에서 고추를 따고 돌아오신 어머니는 어째 머리가 아프시다며 대청마루에 누워 낮잠을 청하셨다. 
그날은 내 용케 어머니 거들어 고추를 땄던지라 함께 낮잠을 잤더랬다. 
이튿날 나는 서울에 갔네, 둘째 수명이 어머니에게 맡기고 범민족대회였는지 민족공동행사였는지 다녀왔다. 
그러니 그날은 8월 15일이었다. 
온 가족이 냉면집에 갔는데 어머니 젓가락질이 이상했다. 
접시하고 거리를 가늠하지 못해 자꾸 맨바닥에 젓가락질을 하셨다. 
"어찌 이런다냐?" 하시며 어머니도 웃고 나도 웃고 온 가족이 웃었다. 
머리는 여전히 아프다 하시고..
아무래도 이상했다. 
8월 16일 전북대 병원에 모시고 갔다. 
머릿속 혈관 하나 부풀었다고, 부푼 혈관이 시신경을 누르고 있다고, 하니 부푼 혈관을 집게로 물어주면 된다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수술을 앞두고 머리를 민 어머니를 보고 "왐마 어무이 두상도 이쁘요~" 하고 농담을 건넸다. 
어머니는 시석 없는 소리 말라는 듯 말없이 웃으셨다. 
이것이 어머니와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그날의 그 서글픈 웃음을 잊을 수 없다. 
어머니는 수술 후 마취도 덜 풀린 상태에서 발병한 폐렴과 패혈증으로 중환자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두 달여만에 돌아가셨다. 
돌아보면 머리 아프시다는 어머니한테 어린 딸내미 맡기고 서울 다녀온 일,
수술하자는 의사 말에 어머니 의견도 묻지 않고 덜컥 머리부터 밀게 했던 일,
사실은 고추 따기 전부터 머리가 아프시다는 말을 달고 사셨는데 무심코 흘려 들었던 일, 
어머니와 관련된 많은 일들이 막심한 후회로 남는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그날 고추를 같이 땄다는 것뿐인데 내 그날 이후 지금껏 고추를 따 본 일이 없다는 것이고..
한여름 땡볕 아래 고추밭에서 일하는 노인들을 보면 '저 양반 저러다 돌아가시지' 하는 생각에 어머니 모습이 겹치면서 나는 애써 고개를 돌리고 외면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제사가 코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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