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11일) 농림수산식품부는 ‘08년산 쌀 과잉물량 10만톤 매입방안과 2009년산 공공비축제 시행계획’이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되었다고 밝혔다. 
작년 기록적인 대풍작으로 쌀이 넘쳐나 쌀값이 하락하고 있기에 이에 대한 대책으로 과잉물량 10만톤을 매입하여 시장에서 격리하겠다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이 조치로 시중쌀값의 하락 추세가 진정되고 수확기 가격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과연 그러할까?
안타깝게도 농식품부의 보도자료는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 차 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자.
 

농식품부는 금년 쌀값 폭락의 원인을 지난해의 기록적인 대풍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지난해 쌀농사가 큰 풍년이 들어 시중의 재고량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문제는 정부의 '쌀' 정책이다. 
우리나라에서 쌀 정책은 곧 식량정책이고 이는 나라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초적인 정책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을 뿐더러 쌀을 시중 물가를 잡는 제1의 도구로 삼아왔다. 
이명박은
물가상승 집중관리 품목 52개중 첫번째 관리 대상에 쌀값을 선정하고 지속적인 시장개입을 통해 쌀값 하락을 유도해왔다. 
작년 추석 물가가 들썩이자 정부는  "추석물가 안정대책"이라는 것을 마련하고 9월 3일 정부미 공매(854천석)를 실시하여 쌀값을 하락세로 반전시키는데 성공하였다고 자평하고 있다.
조생벼 햅쌀이 막 수확되는 시점에서 행해진 정부미 공매는 생산자 농민의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역대 어느 정권도 해본 일이 없는 수확기 정부미 방출이라는 초유의 일을 이명박 정부가 벌인 것이다.
추석 물가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농민이야 '죽건말건'이다.


여기에 더하여 매년 진행되던 대북 쌀지원이 완전히 중단된 것도 쌀값폭락에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반북대결  소동을 일으켜 남북관계를 파탄내었고 이전 정부에서 매년 실시하던 대북 쌀지원을 전면 중단하였다.
매년 지원되던 30~40만톤의 쌀이 북송길이 막혀 고스란히 시중 재고로 덧쌓이게 된 것이다.
2008년산 쌀을 정부가 매입하여 대북지원을 재개하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북관계도 풀고 쌀 문제도 풀 수 있는 좋은 방안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함에도 정부는 풍년탓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올해는 기록적인 흉년농사를 지어야 한단 말인가?


농식품부는 마치 정부가 나서서 벼를 매입하고 시장에서 완전 격리시킬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매입은 중앙회가 하는 것이고 정부는 생색만 내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매입물량 역시 시장에서 어떻게 격리시키겠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10만톤 매입물량은 차차 봐가면서 처리하고 정부공매는 자제하겠다는 입에 발린 소리 뿐이다. 
더욱이 시중 재고량이 전년 대비 34만톤 이상 증가한 조건에서 10만톤 매입은 너무 적은 양이어서 가격 반등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명박 정부의 공공비축제는 '물가상승에 대비하여'로 바뀌어야 한다.


자기 나라에서 생산된 농산물로 식량을 자급하지 못하는 나라가 온전한 나라일 수 있을까?
자국의 농업을 경쟁력없는 산업이라 치부하여 농업예산을 대폭 줄이고 식량생산조차 포기해버린 필리핀의 오늘날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필리핀 정부는 기본식량인 쌀은 보다 싼 수입쌀로 대체하고 사탕수수, 코코아 등 유망한 수출농업을 육성하였다.
그 결과 논농업에 종사하던 농민들은 대부분 파산하여 농사를 포기하고 사탕수수 농장의 농업 노동자로 전락하였고 논 면적은 1/3로 줄어들었다. 
세계 최대 쌀 수입국으로 전락한 필리핀은 작년 불어닥친 국제 곡물가격 급등으로 식량폭동이 일어나는 등 나라 전체가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으며 막대한 예산을 투여해 식량자급률을 높이려 하고 있지만 아직도 식량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한번 파괴된 생산기반을 되돌려놓는 일이란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수출농업은 어찌되었을까? 
소수 농장주, 유통업자만을 살찌우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그나마 해당 작물의 국제가격 폭락 등, 여건 변화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였다.
필리핀이 주는 교훈은 '식량자급을 목표로 하지 않는 수출농업 육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투기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며, 잘못된 농업정책은 국가의 존립기반 자체를 뒤흔드는 엄청난 후과를 불러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 '농업선진화'를 추진하면서 필리핀 정부가 일찌감치 걸어가본, 그래서 나라 전체가 거덜날 위기로 이끈 농업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려 하고 있다. 
이명박의 농업선진화 방안은 필리핀의 과거 농업정책과 너무도 흡사하게 닮아 있다. 
필리핀의 농업정책은  IMF가 요구한 신자유주의 농업정책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었다.
이명박의 농업정책 또한 소수 재벌, 해외 투기자본의 농업 수탈의 길을 여는 것이기에 그 근본에서 다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명박표 '농업선진화 방안'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쌀 정책은 식량정책이 아닌 물가정책이다.
쌀은 물가를 잡아 정권의 인기를 유지하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명박은 쌀값 하락에는 적극 개입해왔으면서도 '폭락에 따른 대책'을 요구하는 농민들에게는 '시장'을 들먹이며 정부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고 발뺌해왔다. 
이런 배경에서 정부의 이번 대책은 쌀값하락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가를 반증주고 있다. 
그러나 시늉 뿐이다.
언뜻 보기에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 정부가 하는 일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정부는 전체 국민을 상대로, 생산자 농민을 상대로 심각한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농민들은 쌀값 하락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묻고,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허울 뿐인 정부 대책을 볼 때 올 올 가을 쌀 대란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에 농민들은 이에 대응한 큰 투쟁을 현장에서부터 일궈가고 있다. 
공적자금 투입을 요구하며 투쟁을 벌였던 쌍용 노동자들과, 쌀값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투쟁은 본질에 있어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정부의 태도 역시 본질에 있어 전혀 다르지 않다.
정부가 나서는 것만이 쌀 문제를 풀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모두가 말하고 있다. 
끝내 정부가 쌀 문제를 외면한다면 농민들의 싸움은 정권폐기 투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