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생긴 조선낫을 만났다. 
조선낫, 우리 동네에서는  황새목낫이라 하였다.
쭉 빠진 몸매에 야무진 손잡이.
무엇 하나 나무랄 데 없는, 머릿속에 늘 그리던 어릴 적 보았던 그 황새목낫
아 그런데 이빨이 빠지고 녹이 슬었다. 
창고 한 짝 구석에서 하릴없이 뒹굴고 있다. 
이런 야무진 낫을 가진 농사꾼이 어찌 이리 낫을 방치했을까? 

해남 양반 낫이라 한다. 
해남 양반은 올해부터 손에서 일을 놓았다.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노익장을 과시하시던 참 농사꾼 하나 농업전선에서 은퇴하였다. 
영예로운 은퇴가 아니다. 
한 평생 농사일에 쎄가 빠지고 등골이 휜 채 세월에 밀려 연장을 놓았다. 
주인의 운명처럼 낫은 녹슬고 이빨이 빠졌다. 
수많은 조선낫이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누가 다시 이 야무진 조선낫에 생명을 불어넣을 것인가?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고
주인이 종을 깔보자
종이 주인의 모가지를 베어버리더라
바로 그 낫으로.

김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