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새가 아닌 철새를 해가 바뀐 후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는 일은 매우 감동적이다.
홀연히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지는 듯 하지만 새들은 계절의 변화와 운행의 질서를 정확히 파악하여 어김없이 제 때에 이동한다.
텃새로 사는 새들보다 이동을 숙명으로 하는 철새에게 더욱 끌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서해안 갯벌을 중간 기착지 삼아 상상하기 힘든 장거리를 이동하는 도요새 무리,
전세계 생존 개체의 대다수가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가창오리떼..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대규모 방문객들 외에도 많은 새들이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거나 여름을 난다.
이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라져가는 갯벌, 사라져가는 서식처, 사라져가는 먹이..
이런 변화들은 모두 사람 세상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들의 생존과 관련된 가장 직접적이며 결정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선운사 도솔암 앞 하늘로 비상하는 거대한 바위 봉우리 천마봉.
산이 깊긴 하나 높지 않은 선운산은 갖가지 기묘한 바위봉우리들을 도처에 흩뿌려놓고 거느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천마봉. 
그 천마봉에서 바위종다리들이 겨울을 난다.
내가 알기 훨씬 이전부터 녀석들은 천마봉에서 겨울을 났겠지만 나는 작년에서야 녀석들의 존재를 알았다. 
그리고 올해, 혹여나 하고 오른 천마봉 암벽 위에서 녀석들을 다시 만났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녀석들은 척박한 암벽 지대에서 사람들이 남기고 간 부스러기들을 즐겨 먹는 듯 하다. 
인근의 인적 드문 암봉이 아닌 사람이 가장 북적대는 천마봉에 자리를 잡은 까닭이다.   
많은 새들이 사람과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긴 하지만 사람의 발치에서 서성이는 녀석들의 행동거지는 매우 독특하다.
'저러다 밟힐라' 하는 염려가 들 정도이니..


산 아래 인간세상을 졸리운 듯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아~ 쩌 세상은 재미없어.. 허고헌날 쌈박질이나 해대고.."
이러고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