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영실에서 어리목까지,
한라산을 오를라치면 늘 고민이 밀려온다.
짜장면 묵으까, 짬뽕 묵으까 하는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러나 고민도 잠시 몸은 이내 백록담에 직접 오르는 것보다는 백록담 화구벽을 바라보는 것이 더 멋진 산행이 될 것이라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만다.
한라산을 오르는 것이 목적이 아닌 다른 볼일을 마친 이후의 약간의 틈을 타 오르는 산행인지라 시간이 넉넉지 않을뿐더러 백록담을 오르내리는 고된 발품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영실로 오르기로 하였다.
영실은 해발 1280m로 1700m가 되는 윗세오름 대피소까지는 400여 m만 고도를 높이면 된다.
다소 가파른 길을 40~50분가량 올라 채고 나면 편안한 고산 평지가 이어진다.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한라산, 그나마 짙은 운무에 휩싸여 있다.
가파른 오름길, 등산로 주변의 들꽃들이 피로감을 덜어준다.
급한 경사로를 올라 키 작은 침엽수림을 잠시 지나 이 곳 너덜 강을 건너면..
갑자기 시야가 툭 터지고 너른 평원이 펼쳐진다.
애석하게도 백록담 화구벽은 구름 속에 숨었다.
한없이 노닥거리고 싶은 편안한 길이 이어진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윗세오름 대피소에 이르니 구름 사이로 화구벽이 살짝 드러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라산 까마귀가 신령스럽게 앉아 있다.
하산길, 구름체꽃이 피었다.
단 한 개체를 보았을 뿐이다.
귀한 녀석인 모양이다.
한라산이니 탐라산수국일 게다.
빽빽이 들어찬 제주조릿대 밭에도 곰취가 꽃대를 올렸다.
민대머리오름의 부드러운 능선.
가지 마라 손짓하는 듯한 백록담 화구벽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한다.
고도를 낮출수록 운무가 몰려와 시야를 가린다.
평원을 지나 숲길이 나타나고 물소리, 매미소리 없는 어두컴컴한 숲길이 걸음을 재촉한다.
어리목에 당도하였다.
지나온 산길을 되돌아보니 한라산은 짙은 운무 속에 숨어들었다.
구름을 타고 내려온 기분,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네 시간을 예상하였으나 세 시간 만에 산을 벗어났다.
속도를 내어 걷기에만 주력한다면 2시간 반에도 가능할 듯..
제주 터미널 근처 무진장 식당의 깔끔 담백한 고기국수로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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