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림저수지 가창오리 떼가 AI 발병의 근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딱 그 참에 맞춰 가창오리 떼죽음 소식이 온갖 언론을 도배질하고 있다.

거의 모든 언론들이 '동림저수지 가창오리 1천여 마리 집단폐사' 소식을 앞다퉈 싣고 그 원인에 대해 갑론을박하고 있다.

갑론을박이라 하나 사실상 AI에 의한 떼죽음을 기정사실로 몰아가는 가운데 가창오리는 이미 AI 발병의 주범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 언론도 집단 폐사한 1천여 마리 가창오리의 주검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기껏해야 조각배 두척 띄워 죽은 오리들을 건져내는 영상이 전부다. 

뿐만 아니라 가창오리의 떼죽음이 신고에 의해 발견되었는지 검역 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최초의 언론보도와 이들이 취득한 정보가 누구에 의해 제공된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림저수지 가창오리 1천여 마리 집단폐사'는 누군가에 의해 부풀려지고 날조되었다.  

 

1월 16일 아침 동림저수지 가창오리떼
1월 16일 아침 동림저수지 가창오리떼

동림저수지에 가장 인접한 마을에 살고 있기에 꽤 오랫동안 가창오리를 관찰해왔다. 

다만 요즘은 객지에서 주로 생활하고 있는 탓에 집에 들를 때 틈틈이 시간을 내서 저수지를 둘러보는 정도이다. 

위 사진은 16일 아침 동이 튼 직후의 모습이다. 

밤새 들녘에서 먹이활동을 마친 가창오리들이 휴식을 위해 저수지로 들어왔다. 

이미 들어온 녀석들과 새로 도착하는 녀석들이 자리를 잡느라 부산하다.

저수지에 내려앉은 녀석들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거의 움직이지 않고 낮 동안 저수지 복판에 모여 휴식을 취하고 황혼 무렵 대오를 정비하여 해가 진 직후 먹이활동을 위해 들판으로 향한다. 이때 가창오리는 그 특유의 황홀한 군무를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월동지에서 가창오리는 야행성이다.  

몇 마리나 될까? 아마도 10만 마리 이상은 되는 듯하다.

정말로 무지막지한 숫자가 도래하던 10여 년 전 또는 그 이전의 시기와 비교하면 그리 많은 수는 아니다. 

최근 몇 년간은 많은 경우 30만 마리 정도가 오는 것으로 보인다. 

 

1월 16일 아침 동림저수지 가창오리
1월 16일 아침 동림저수지 가창오리

저수지 가에까지 내려앉았던 녀석들이 나를 보더니 다시 무리로 돌아가고 있다. 

얼굴에 태극문양이 있는 녀석들이 수컷, 수수한 녀석들이 암컷이다. 

 

1월 16일 아침 동림저수지 가창오리떼

망원경으로 관찰하면 가창오리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오리들이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물닭, 비오리, 흰비오리, 흰죽지, 기러기, 큰고니 등등..

동림저수지는 가히 겨울철새의 낙원이라 할 만하다.

이날 한 시간 가량을 저수지 가에 머물며 가창오리들을 관찰하였지만 특이한 현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17~18일 마을을 떠나 다른 곳에 나가 있는 동안 가창오리 집단폐사 소식을 들었다. 

대규모 군집 생활을 하는 가창오리는 전염병이나 사냥 등 사람의 간섭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큰일이다 싶었으나 잘 믿기지 않았다.  

 

1월 19일 오전 동림저수지 가창오리떼
1월 19일 오전 동림저수지 가창오리떼

마을 앞에서 저수지를 들여다보았다. 

우리는 떼죽음 당하지 않았다고 항의라도 하듯 16일에 비해 가창오리 숫자가 늘었다. 아마도 1.5배가량은 되어 보인다. 

가창오리 떼 너머 떠 있는 배는 방역기관 또는 행정에서 띄워놓은 것으로 보인다.  

뭔가 조사를 벌이고 있거나 가창오리의 동향을 살피는 듯하다. 

밖에서 들여다보기에 아무 문제없어 보인다. 

 

 

우리 동네 입구에 일종의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었다. 행정 공무원들과 경찰관들이 나와 외지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그 양반들에게 물었다. 

 

<천마리나 죽어부렀다는 디 다 건져갔다요?>

천마리는 아니고 정확히 81마리 건져갔다고 한다. 17일 날 30여 마리, 18일 날 50여 마리..

<아직 다 못 건진 것이요? 그것이 다요?>

그것이 다라 한다. 가창오리 수거 현장을 직접 본 마을 어른들의 말씀과 일치한다. 

<근디 문 천마리나 죽었다고 그렇게 떠들어쌌는다요?>

긍게요.. 

잘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온다. 

 

10만여 마리 가창오리.. 그중의 80여 마리..

이것이 집단폐사라 할만한지 어떤지는 잘 알지 못하겠다. 

그런데 엄청나게 부풀려져 언론에 보도된 것으로도 모자라 검역당국의 분석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AI에 의한 집단폐사'로 결론 내어지고 있다. 

이것은 매우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진실에 기초하지 않은 허위 과장보도와 이에 기초한 성급한 결론.  

그 결론은 무엇인가? 가창오리가 AI 발병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어느 누구도 사육 오리의 집단폐사와 AI의 확산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머나먼 시베리아에서 국경을 넘어 날아온 녀석들이 하늘을 날며 갈긴 똥이 AI 발병의 원인이라면 이는 거의 불가항력에 속한다. 

사람이 책임질 일이 아닌 것이다. 

좁은 공간에 수천, 수만 마리씩 집단 사육하는 사육방식의 문제도, 방역체계의 문제도, 대량생산을 필요로 하는 대량소비의 문제도..

사람이 만들어낸 그 어떤 문제도 문제 될 것이 없게 된다. 가창오리가 주범이라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