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암 천마봉 바윗길, 선운산 속살을 헤집다.
잠시간이지만 한때 암벽등반을 하던 영태 따라 그 세계에 발을 내디딘 적이 있었다.
선운산 동백 호텔 지하의 자그마한 실내암장과 암벽등반 초급 코스가 있던 할매바위에서 땀 깨나 쏟았고 도솔암 주변의 바윗길을 싸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옛날 생각이 났다. 그 길을 간다.
다만 그 존재를 모를 뿐 장비 없이도 약간의 담력과 주의력만 있으면 갈 수 있는 길이다.
도솔암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마애 미륵불을 스쳐 지난다.
미륵불은 여전히 경외와 치성의 대상이다. 마애불 위에 자리 잡은 도솔암 내원궁에서는 오늘도 지장보살을 찾는 염불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마애불 지나 용문굴로 가는 어느 지점에서 오른쪽 바위로 붙는다.
갈라진 바위틈을 비집고 침니 등반으로 오르는 길을 못 찾고 헤맨다. 세월이 흐른 탓이다.
길을 찾지 못하고 적당하고 만만한 바위를 골라 기어오른다.
본래는 이 길로 이렇게 올랐어야 했으나 나중에서야 찾았다.
저 틈을 비집고 고개를 내밀면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바위 세상이 펼쳐진다.
다른 길을 돌아 오를 수도 있지만 저 틈을 비집고 올랐을 때의 맛이 각별한데 아쉽다.
천마봉과 사자암 능선이 눈 앞에 펼쳐진다.
한겨울인데 묘하게 가을빛이 물들고 날씨는 봄이다.
어린 소나무가 바위틈에 뿌리를 단단히 내렸다.
사람 손 타지 않고 말라죽지 않고 잘 자라주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먼 훗날 다시 만나자는 부질없는 약속을 건넨다.
천마봉과 사자바위가 한 곳을 바라고 있다.
미륵을 기다리는 걸까? 미륵불은 그쪽이 아닌데.. 바위에 새겨진 미륵은 진짜가 아닌 모양이다.
능선을 거슬러 천마봉에 올라 도솔암을 내려다본다.
마애불 위의 내원궁과 그 일대의 바위들이 고스란히 한눈에 잡힌다.
우리가 지나온 바윗길이 저곳에 있다.
천마봉과 낙조대 사이에서 천마봉 허리를 휘감아 내려오는 바윗길로 내려선다.
다소간의 담력이 필요하지만 몹시 위험한 길은 아니다.
아찔한 고도감.. 주의력을 요하는 구간, 매우 위험해 보인다.
하지만 사진이 항상 현장의 진실을 그대로 전하는 것은 아니다. ㅎ
바위에서 얼굴이 튀어나와 나하고 같은 방향을 응시하고 있다.
내가 어디를 바라보고 있었던고..? 그냥 아무 데나 쳐다보고 있었다.
자가인증
마지막 구간에는 자일이 있으나 세월만큼이나 낡아 믿고 의지하기 어렵다.
바위는 습하고 이끼가 끼어 있어 매우 미끄럽다.
보기와 달리 가장 어렵게 통과한 구간이다.
계곡물에 손을 씻으며 세월을 훌쩍 거스른 13년 만의 등반을 마무리한다.
훌쩍 젊어진 느낌이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올려다본 천마봉이 무덤덤하다.
언제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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