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제주도가 필요하지 제주도민은 필요치 않다.
제주도민을 다 죽이더라도 제주도는 확보해야 한다"

미 군사고문단장 로버츠가 조병옥 등 한국 관리들을 불러다 놓고 한 말이다.
나는 이것이 제주 4.3항쟁의 본질에 직접 가 닿을 수 있는 가장 함축적이며 직설적인 발언이라 생각한다. 
이에 자극받은 한국 정부는 섬 전역에 걸친 대대적인 초토화 작전과 전대미문의 대량학살로 화답하였다.
당시 제주도민의 1/3인 3만여명이 희생되었다.
입에 담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4.3항쟁은 민주화의 진전과 더불어 그 전모가 차츰 복원되고 있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제주도민들의 끈질긴 투쟁의 한 결과물인 4.3 평화공원과 4.3평화기념관을 제주 여행의 마지막 답사지로 찾았다.  
제주 절물휴양림에서 제주시 방향으로 약 2km 지점에 있다.
제주시 봉개동 거친오름 기슭이라 한다.

공원에 도착하니 내내 구름에 가려 정상을 보이지 않던 한라산이 구름을 벗고 평화공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공원 너머로 한라산이 구름을 벗고 내려다보고 있다.

4.3항쟁 60주년 기념시화전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4.3평화기념관은 다소 묘하게 생겼다.
'한라산과 산방산에 얽힌 제주의 근원설화를 형상화한 것'이라 하는데 도무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건물 내부에 들어서면 1관 역사의터널, 2관 흔들리는섬, 3관 바람타는섬, 4관 불타는섬, 5관 흐르는섬, 6관 새로운시작 그리고 특별전시관인 다랑쉬굴 등을 시간의 흐름대로 관람하며 4.3항쟁의 전모에 접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4.3백비', 아무것도 새기지 않은 하얀 비석이 누워 있다.
"언젠가 이 비에 제주 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는 안내문이 있다.
4.3이 완결되지 않은 논쟁의 복판에 있음을 말없이 웅변하고 있다.


우리는 말없이 각자 심각한 얼굴로 전시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사진, 영상, 예술작품 등으로 다채롭게 채워진 전시실은 가는 곳마다 발길을 진지하고 겸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건물의 외양은 이해가 안가는데 내부의 전시실은 훌륭하기 그지 없다.
4.3항쟁의 전모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만들어져 있으며 동시에 훌륭한 현대사 학습장이다.
다시 밖으로 나오기까지 족히 시간 반은 걸린 듯 하다.

4.3항쟁은 미군의 진주와 군정실시에서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인간 사냥꾼 서청 입도

미국은 항쟁 기간 내내 '보이지 않는 손'이자 학살의 주동자였다.

강요배 확백 '한라산자락 사람들'. 5.10 단선에 반대하여 한라산 자락으로 피신한 제주 민중들을 형상화하였다.

"원인에는 흥미 없다. 나의 사명은 진압 뿐"

대한민국 정부 수립. 한자리에 모여선 가이새끼들..

초토화작전으로 폐허가 된 중산가마을

특별전시관, 다랑쉬굴 입구. 다랑쉬굴 유해발굴 당시를 그대로 재현해놓았다. 들어가면 숨이 턱 막힌다.

4.3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관람객들이 남긴 쪽지


관람을 마치고 나와 한라산을 올려다보니 이미 짙은 구름 속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가슴 복판이 먹먹해진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치욕과 고통을 감내하며 오늘날 제주를 다시 일으켜세운 제주도민들에게 삼가 경의를 표한다.
눈감지 못한 4.3 영령들을 추모하는 듯 까마귀들이 곳곳을 누비며 지키고 있다. 
까마귀들의 모습이 을씨년스럽기보다는 신령스럽게 느껴진다.  

한겨울 4.3 평화공원은 관람객보다는 까마귀들이 지키고 있었다.

수의가 새겨져 있다.

어머니의 젖가슴마냥 거친오름이 봉긋하다.


이번 제주 여행의 백미는 4.3평화기념관 답사가 아닌가 싶다.
여행의 출발지로 잡기는 다소 무겁겠고 여행을 경건하게 마무리하는 답사지로 삼으면 좋을 듯 하다.
특히 중고생을 동반한 가족여행객의 필답을 권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