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과 연초 가족을 뿌리치고 향했던 제주도.
많은것을 생각케 하고, 또 모든 것을 잊고 즐겁기도 했던 유익한 여행으로 평가하였다. 
같이 갔던 사람끼리 소주 먹으면서 주고받은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좋지 아니한가?
3박4일간 우리는 니돈내돈 안가리고 니가 내라 내가 낸다 할 것도 없이 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여행을 잘 마무리하였다.  
마지막 남은 땡전 한닢까지 다 털어버리고 정읍행 기차에 탔을 때는 모다 완벽한 개터럭이 되어 있었다.
맘에 맞는 사람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맘껏 느낄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날이 풀려 봄기운이 완연한 오늘 언 땅을 뚫고 두꺼운 낙엽 사이로 얼굴을 내밀 들꽃을 찾아나서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며 제주도 여행을 되새김질해본다.

아침 7시 30분경 출발하는 KTX 열차에 몸을 실었다. 
밤새 내린 눈이 하얗게 덮인 들판 너머로 먼동이 트고 있다.
철도청 철도-선박 연계 상품권을 이용하면 요금도 할인되고 직접 운전하는 일 없이 느긋하게 여행할 수 있어 좋다. 
기차와 선박 각기 30%씩 할인이 되고 목포역에 도착하면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다가 신속하게 항구까지 실어다준다.  

항구에 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배에 올라타니 배는 큰 몸집만큼이나 여유롭게 파도를 가르며 섬 사이를 헤치고 나아간다.
배 속에서는 주로 술 먹고 바다 쳐다보고 그러다 한숨 자고 자다 깨면 술 한잔 더 하고 책도 좀 뒤적거리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제주항에 당도한다.
급한 일이 아니라면 비행기보다 배가 좋다.

수확한 감귤을 선별하던 제주도 총각들과 만나 무엇보다 먼저 술부터 한잔 한다.
제주도 총각들은 돌하루방을 빼다 박았다. 
푸짐한 갈치찜이 겁나게 맛있다.

밤이 되어 바닷가에 나가 찬바람 잠깐 쏘였다. 
엄청나게 몰아대는 바람에 간간이 날리는 눈발이 얼굴을 세차게 때린다.
으아 정신이 번쩍 난다.
바닷가 옆 횟집에서 부시리회를 시켜먹었다.
제주도 총각들을 앞세우니 서비스가 남다르다.

이른아침 눈을 떠 밖을 내다보니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다.
그럴듯한 해돋이를 기대하였는데 글렀다.
이렇게 해안지대에까지 눈이 쌓이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라 한다.
해돋이와 한라산 오르기를 작파하고 다랑쉬오름을 목적지로 바꿔 안내를 부탁하니 제주도 총각들이 고개를 내두른다.
눈이 쌓여 운전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창에서 다져진 눈길운전 솜씨를 걸고 운전병을 자처하고도 거의 윽박지르듯 해서야 겨우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제주도 사람들은 눈이 내리면 아예 운전을 안하는 모양이다.

다랑쉬오름 가는 길목 김영갑 겔러리에 들렀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아담하게 잘 가꾸어놓았다.
전시실의 사진과 돌담 밑에 핀 눈속의 수선화가 인상적이다.

성산을 지나 구좌 방면에 접어드니 내린 눈의 양이 현저히 적다.
애써 찾은 다람쉬오름, 보기와 달리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오르기를 포기하려는 정덕순이를 이끌고 오른 이한세의 망가진 모습이 사진기에 잡혔다.
다랑쉬오름에서 바라본 주변의 오름군과 '잃어버린 마을 다랑쉬' 마을터를 둘러보며 제주 4.3 항쟁 당시 처절했던 제주도민의 삶과 투쟁을 되새기며 잠시나마 숙연한 시간을 가졌다.

이튿날 한라산 등정에 나선 우리는 성판악에서 출발하여 다시 성판악으로 내려왔다.
어제 다랑쉬오름에서 보여준 망가진 모습을 만회라도 하듯 정상에 선 이한세의 몸가짐이 의젓하다.
얼마나 바람이 불던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진다.

마지막날 성산일출봉에서 일출을 보고 우도를 들러 4.3기념관까지 관람을 마친 우리는 마지막으로 용두암으로 발길을 잡았다. 그간 기회 있을때마다 찾아 헤매이던 해녀 할망들이 직접 썰어주는 바닷가 해물좌판을 찾아내지 않고서는 여행이 완결될 것 같지 않은 분위기에 우리 일행은 휩싸여 있었다.  
설마 하니 용두암에는 있지 않겠는가..
아 있다. 대처나 있다. 
자칫 지나칠수도 있었는데 바위 뒤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로 감을 잡았다.
하! 제주도를 한바퀴 뺑 돌아서야 찾아냈다. 
맛나게 묵었다.  
용두암에서의 한잔 술로 제주도 여행 맛나게 완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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