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일 멈추기 어려워 마지못해 떠난 길, 밤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마지못해 나섰다는 건 실상 거짓인 게다, 관성의 법칙이 잠시 작용했을 뿐..
버스로 갈아타고 서문시장 내려 관덕정 구부다 보고 뒷길로 북초등학교 지나 탑동 사거리, 숙소를 목전에 두고 술 자시러 가는 일행과 맞닥뜨리고 말았다.
짐도 풀지 못한 채 술자리로..

관덕정
.

이 하르방을 어디서 만났을까?
이미 술이 거나해졌던 것이다. 



아침, 숙취를 부여안고 짐을 꾸려 숙소를 나선다. 
회의는 열 시 반, 걷다 보면 깨겄지..

탑동 광장 지나 서부두, 산지항 너머 사라봉을 본다. 

.

주정공장 옛터를 지나며 노래를 듣는다. 
무한반복..

차라리 사라봉 무너져 내려 이 몸을 이곳에 묻어주면..
차라리 산지포 강풍을 만나 이 몸이 이곳에 흩어지면..

사라봉을 오른다. 

사라봉 지나 별도봉, 비로소 한라산 방면 조망이 터진다. 

동부지역 오름군, 딱히 짚어 이름 붙일 알 만한 오름이 없다. 

곤을동
연자방아
.

군경의 학살과 초토화 작전으로 불타 사라진 마을 곤을동, 연자방아가 뒹굴고 집터와 올레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
너의 그 아픔을 알면서도..
아무 일 없는 듯 그저 가슴에 파묻고
걷고 걷고 걸으며 살자 살자.


아뿔싸 시간이 많이 가부렀다. 어디냐고 전화가 온다. 
다행히 택시가 바로 왔다. 
어인 일인지 숙취가 가시지 않고 술이 무장 올라온다. 
고생스레 회의를 마치고 오후 일정으로 넘어간다. 

제주 중산간 이런 길 좋다, 무장대 소년 연락원이 가쁜 숨 몰아쉬며 달려올 듯한..

깔끄막을 몹시 싫어하는 사람들 다랑쉬오름을 배경으로 작은 봉우리를 오르고 있다.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 손지오름, 용눈이오름, 저 멀리 지미봉, 그 너머 우도가 길게 누워 있다. 

성산포 방면

동검은이오름에서 내려와..

평대 바다
방어

이틀째 밤이 깊어간다.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 운전병을 자원하여 술자리에서 벗어났다. 


 

성산 들러 해장하고 서쪽으로,
번잡한 도로를 피해 산록도로를 탄다. 
이쪽에서 보는 한라산은 마치 거인의 뒷모습..

배를 기다리며..

자 우리 동무야 한자리에 모여서 높이 들자 술잔을
마시자 자유론 내 조국 위하여 마시고 또 부어라~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운전병이다. 
한 시간여를 기다려 마라도행 배를 탄다.

마라도 하고도 최남단 쑥부쟁이

방어잡이 선단을 바라보며 입맛 다시는 최남단 가마우지

벵에돔이라 했던가? 영판 맛나더라고..
운전대 반납하고 한라산 한 병을 꿀꺽꿀꺽..

.

본래 울창한 숲이 섬을 뒤덮고 있었다 하나..

섬에서 섬을 바라본다.

모슬봉, 산방산
방어잡이 선단



또다시 알콜로 밤을 불사른 사람들, 나는 마지막 순간 탈출을 감행하여 살아남았다. 
일 때문에 먼저 떠나기도 하고, 심하게 술을 들이키기도 하여 예정대로 산에 오를 자 나뿐이다. 
간밤 산간에 내린 눈으로 1,100 도로가 봉쇄되었다네, 발길을 돌려 성판악으로 이동한다. 
홀로 산으로 가는 나를 걱정스레 배웅하는 일행과 헤어져 산으로 든다. 
이래저래 늦어졌다. 12시 안에 진달래밭에 도달할 수 있겠는지 계산하며 산을 오르는데 정상 등정이 통제됐다는 알림이 온다. 
강풍 때문이라고, 얼마나 된바람이 불길래..
잘 되었다. 사라오름까지만 다녀오자 마음 차분히 먹고 터벅터벅 산을 오른다. 

.
.
해발 1,300m

사라오름에 이르니 내내 구름에 갇혀 있던 하늘이 드러나고 해가 쨍하고 나타난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우~

.

들어가 한바탕 뛰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
.

전망대에 서니 서귀포 앞바다가..
바다에 뜬 섬은 아무래도 범섬, 육지에 붙어 보이는 건 섶섬이 아닐까 가늠해 본다. 
한라산 정상부는 구름 속에 들어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
.

눈 아래 오름은 논고악인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다. 
가보고 잡네..
다시 하늘에 구름이 가득해진다. 

반짝 하늘을 보여준 사라오름에 고맙다 인사하고 하산길을 잡는다. 

아무 일 없는 듯 그저 가슴에 파묻고
걷고 걷고 걸으며 살자 살자.

많은 사람이 나를 앞질러간다. 
늙었네 늙었어..

산에서 벗어나니 오후 1시 30분, 정확히 3시간 50분을 산속에 있었다. 
성판악은 버스가 자주 다닌다.
방금 한 대 지나갔는데 얼마 기다리지 않아 다시 버스가 오고, 쏟아지는 졸음과 싸우며 공항으로..
헌데 공항이 종점, 그런 줄 알았으면 그냥 자는 건데 그랬다. 
미역뿐인 성게국에 밥 말아먹고 4시 35분발 광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안녕 제주, 또 만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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