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5일(양력),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 본대가 후퇴를 거듭하여 전주에 이르렀다. 청주성 전투에서 패한 김개남은 논산에서 전봉준과 합류하여 함께 전주로 들어왔으나 곧 다시 헤어졌다. 손화중과 최경선은 나주를, 순천의 김인배는 전라좌수영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 이들에게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봉준은 12월 21일과 23일 원평과 태인에서 마지막 전투를 치른 후 부대를 해산하고 잠행에 들어갔으나 28일 순창 피노리에서 피체되었다. 하루 앞선 27일 손화중과 최경선이 부대를 해산했다. 이날 태인에서 피체된 김개남은 채 48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전주에서 즉결 처형되었다. 12월 31일 이방언이 이끄는 농민군이 장흥을 함락하고 부사 박헌양을 처단했다. 1월 1일 김인배가 순천에서 피..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세 분의 초상을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무릇 혁명에 있어 지도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 분들은 어떻게 동학농민혁명 3대 장군의 반열에 오르고 시공을 뛰어넘어 역사 속에 살아남게 되었을까? 어찌 이 분들 뿐이겠는가? 5대장군, 10대 장군, 이름도 성도 없이 쓰러져간 무수한 농민군들을 그려본다. 스러져가는 한 시대와 더불어 기꺼이 사라짐으로 하여 새 시대를 열어젖힌 사람들, 자신의 흔적을 끊임없이 지워가며 온몸을 불살라 오히려 선명하게 역사에 각인된 혁명가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조를 잃지 않았기에 유해조차 수습할 수 없었던 헛묘의 주인들. 강경파니 온건파니, 지어 NL이니 PD니 하는 삿된 잣대와 논쟁을 거두어들일 일이다. 여기 김남주 시인의 유고시 한 편으로 필설로 어찌할 ..
살아남은 농민군은 의병이 되었다. 우금티 패전 이후 농민군은 일본군과 관군, 유림이 조직한 민보군에 맞서 삼천리강산을 피로 물들이며 죽어갔다. 이렇듯 광범위하게 자행된 살육전에서도 살아남은 농민군은 산적 혹은 화적떼로 변신하거나 흩어져 몸을 숨겨야 했다. 이런 그들이 항일의병 투쟁에 가담한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림이 중심이 된 초기 의병 투쟁에서 농민군은 환영받지 못했다. 춤성심을 품고 의리를 붙들려 하는 자는 몇몇 사람에 지나지 않으며 ... 그리하여 농민이 천 명, 백 명씩 무리를 이루고는 의병이라 일컬었다. 심지어 동비의 남은 무리가 그 반을 차지했다.(매천야록, 황현)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강상의 도’가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한 양반 의병장들은 농민군 출신 의병들을 색출,..
"때가 왔네 때가 왔네, 다시 못 올 때가 왔네" “칼노래라는 것은 우리 대신사 수운 선생께서 여기 전라도 남원 선국사 은적암에 머무르실 때 지으신 노래올시다. 여기 은적암에서 석 달을 머무르셨는데, 그 사이 도력이 더욱 왕성하시니, 그 희열을 금치 못하여 스스로 노래를 지으시어 달 밝고 바람 맑은 밤을 타서, 목검을 짚고 묘고봉상에 홀로 올라 노래를 부르며 칼춤을 추시니, 그 노래를 일러 검결 즉 칼노래라 하였습니다.”(녹두장군, 송기숙 저) "때가 왔네 때가 왔네 다시 못 올 때가 왔네. 만년에 하나 날까 말까 한 대장부가 다시 못 올 때를 만났으니,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 쓰고 어찌할 것인가? 기세 좋게 칼을 들어 천지를 감당하고, 일월을 희롱하며, 우주를 덮을 용맹을 떨치니 만고명장인들 당할 수 ..
내란수괴 윤석열이 체포되었다. 이제 그 일당을 빠르게 색출·처벌하고, 뒤틀린 우리 사회의 근본을 바로잡아 다시는 윤석열, 국민의 힘과 같은 괴물이 발붙일 수 없는 대한민국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우리는 또한 도탄에 빠진 민중의 생존과 짓밟힌 기본권에 눈을 돌리고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롭게 사는 사회 구현을 위한 실질적 방안을 마련해 제도화해야 한다. 둘러보라, 우리 농민들의 형편은 어떠한가? 오늘 윤석열이 체포되었지만, 벼농사 강제 감축이라는 농정 쿠데타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내란 동조자 송미령이 여전히 농식품부 장관으로 건재하며, 개방농정 관료 적폐가 두터운 탓이다. 돌아보라, 지난 수십 년 민주를 표방한 정권이건, 독재를 꿈꾼 정권이건, 농업파괴, 농민말살 농정은 ..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시기가 무르익고 있다. 내란수괴 윤석열과 그 일당, 국민의 힘을 비롯한 모든 동조세력은 반드시 단죄될 것이다. 바야흐로 항쟁의 막이 오르고 또다시 격변의 시기가 도래했다. 전봉준 투쟁단을 앞세운 우리 농민들은 어떻게 싸울 것인가? 윤석열 탄핵, 체포, 구속.. 편의상 ‘처단’이라 하자.윤석열 처단의 기치를 들고 투쟁의 전면에 나서자.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탄핵 너머의 투쟁을 지금부터 꺼내들어야 한다. 윤 퇴진운동본부 또한 윤석열 즉각 탄핵과 사회대개혁을 동시에 걸고 비상국민행동으로 진화하지 않았는가? 전봉준 투쟁단은 사회대개혁이 아니라 농업대개혁으로, 나아가 보다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농민헌법 쟁취’를 투쟁의 기치로 걸어야 한다. 1기 전봉준 투쟁단이 ‘쌀값폭락 박근혜 ..
날이 꽤 추워졌습니다. 이렇게 날이 추워지면 따뜻한 아랫목이 생각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따뜻한 아랫목을 그리워만 할뿐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일하는 사람들, 노동자, 농민, 도시 서민들이 그렇습니다. 농민들의 삶은 어떠할까요? “가을이면 풍년 들어 겨울이면 행복하네”라는 유행가 가사는 이제 꿈에서조차 그리기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일 년 내 지은 농사가 쭉정이 뿐이고 이조차 헐값에 팔려나간다면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풍년 농사가 도리어 죄가 되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풍년이면 배포라도 두둑해지는 것이 우리 농민들인데 이제 이조차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달라진 기후가 봄부터 가을까지, 아니 1년 내내 재앙이 되어 농민들을 괴롭힙니다.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피땀을 쏟..
11월 12일 오후 2시 국회 소통관, 이 열렸다. 진보당 전종덕 의원실에서 제안하고 '농민의 길'에서 받았다. 나는 제안 취지를 전하고, 일정을 조율하는 등 이런저런 중간다리 역할을 했다. 이 기회를 빌려 당과 대중조직이 함께 하는 기자회견 등 공동행동이 이뤄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밟게 되는지 되짚어본다. 11월 4일 매주 월요일 아침 열리는 진보당 대표단 회의를 마치고 전종덕 의원실 보좌관들을 만나 아침에야 알게 된 몇 가지 일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의견을 주고받는다. 민주당 쌀값보장 요구 국회 본관 앞 천막농성과, 쌀생산자협회 등 농민단체와 민주당이 공동 주최하는 기자회견에 왜 전농은 함께 하지 않는지, 진보당과 전종덕 의원실은 왜 이것을 뒤늦게 파악해 중간에 끼어든 것처럼 함께 하게 됐는지, ..
최상돈,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이덕구 산전에서였다. 가수라는데 영 그리 보이지 않았다. 영락없는 싸움꾼, 그것도 단도직입을 일삼는.. 하여 그에 대한 첫인상은, "쩌 냥반 진짜 가수 맞어?" 헌데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 청해 들었던 노래, 이덕구 사령관과 그의 동지들, 한라산 빨치산들이 이별하는 장면을 그렸다는 그 노래가.. "돌아서다가 돌아보았네~" "살아 만나자 약속하였네~" 하는 대목에 이르게 되면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나들던 빨치산들의 그 이별 장면이 너무나 선명히 떠올라 절로 숙연해지곤 했던 것이다. 그 노래를 듣고 또 들어 골백 번쯤 들어 흥얼거릴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가수 최상돈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 더불어 '산오락회'도 알게 되었으니 이 노래로 하여 예기치 않은 새로운 인연들이 ..
이 노래들을 통해서 농민들이 희망과 기쁨을 얻고, 농촌사회가 인간다움을 회복하며, 정의와 통일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농민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도 불려지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회장 배종열 1985년 농어촌 연구부, 이 책을 끼리고 살았다. 틈 날 때마다 늘 뒤적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내가 노래를 배우는 방식은 오로지 반복, 부르고 또 부르고.. 그러다 보면 똑같이 부르게 된다. 노총각 타령 일자리도 인정도 없는 도시엔 뭘 하러 가나 이내 몸은 노총각 신세 일만 한단다 금순아 갈 테면 가라 삼돌이도 갈 테면 가라 개간지 비탈에서 나만 홀로 괭이질한다 논도 밭도 없는 놈이 농사는 무얼로 짓나 이내 몸은 소작농 신세 일만 한단다 금순아 갈 테면 가라 삼돌이도 갈 테면 가..
이두황, 박기순, 박영철, 백남신, 백인기 전주 출신 혹은 전주를 주무대로 활동했던 친일 반민족 행위자 다섯 놈. 귀하는 이 중에 알만한 자가 몇이나 되는가? 나는 이두황, 이 자만 알 뿐 나머지는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작자들이다. 놈들은 역사의 단죄를 받았을까? 아님 최소한 죗값이라도 치렀을까? 이 자들의 후손들은 지금 어찌 살고 있을까? 날조와 왜곡, 은폐와 조작으로 덧칠된 놈들의 행적, 화려한 변신, 부와 권력의 승계.. 대다수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은 그렇게 살아남았고 그 후예들은 오늘날 우리와 함께 동시대를 살고 있을 터,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놈들의 전모를 알지 못한 채 우리는 여전히 놈들의 발아래에서 굴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철저히 검증하고 파헤쳐 단죄하고 청산해야 한다. ..
15척 담 안에 또 가시철망으로 둘러친 감옥 안의 감옥 이가사에서, 총살당한 동지들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 펜을 들었다. 이 책은 총살당한 동지들과 죽음을 앞에 두고 주고받은 이야기, 처절했던 삶, 그리고 사형수였던 나의 회상으로 되어 있다. '글을 못 남기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면서 날마다 머릿속에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 영웅적으로 싸우다가 돌아가신 동지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생을 마치리라 몇 번이고 다짐했다. 내 가슴속에 나와 함께 있는 동지들, 삼가 총살당한 동지들의 명복을 빈다. (작가 서문 발췌) 책을 덮는 순간 " 아~ 나는 얼마나 막 살아왔단 말인가..", 한숨이 나왔다. 책에 써놓으신 선생님의 말씀을 상기하면서 정신을 수습했다. 사람의 육체적인 성장은 이십 대에 멎지만 정신사상적..
국수는 나의 영혼의 단짝, 국수를 무쟈게 좋아했다. 나로 하여금 혈당을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 처지로 만든 원인 중의 하나가 국수였을 것이라 생각한다.원망은 없다, 맛있게 먹었으니.. 그러니 영영 끊고 살 수는 없다. 하여 나는 혈당 걱정 없이 맘껏 먹을 국수를 찾는다. 우연히 들른 한살림 매장에서 사둔 국수가 있었으니 보리국수, 그것도 보리로만 만들었다는..곤약국수보다 낫겠다는 생각에 샀더랬다. 두어 달만에 드디어 먹을 결심을 한다. 어젯밤 일이다. 국수 삶는 법은 봉지에 쓰여 있다.특이하게도 5분 삶고 5분 뜸을 들이라 했다. 삶는 과정에서 거품이 많이 일어나 찬물 두어 차례 부어가며 잘 저어주었다. 뚜껑 닫아 5분 정도 뜸 들이는 것 말고는 일반 국수 삶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꽤 쫀득거린다, 보리..
제주에서 정선까지 멀리도 뛰었다.며칠 만인가? 집에서 몸을 누인 것이..추워진 날씨, 겨울비가 오락가락 후드득거리며 겅중거린다. 밤사이 눈이 될 수도 있겠다.온기를 잃은 방은 싸늘하다. 아궁이에 불 지피고 넘실거리는 불꽃 앞에서 잠시 불멍..시나브로 온기를 되찾아가는 방에서 사르르 잠이 들었던 것이다. 잘 자고 일어났다. 방장산이 하얗다. 어느새 점심과 맞물려 난처해질 시간, 아침 요기를 어찌해야 할까 머리를 굴린다. 어젯밤 정선에서 가져온 참송이 몇 개 찢어먹고 잤더랬다. 숲향 그윽한 참송이와 제주 동백기름이 잘 어우러졌다. 참송이, 닭가슴살 쪽쪽 찢어 올리브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소금 살짝 뿌려 굴린다. 구운 건지 볶은 건지..동백기름 살째기 둘러 접시에 담는다. '참송이닭가슴살볶음'이라 해두자.고소하..
여기는 정선, 술자리가 이어진다.술꾼들 사이, 주지육림에서 혈당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했다.술을 먹지 않겠다 선언하고 운전병을 자임한다.처음 접해보는 음식 향어백숙은 맛이 순하다. 어죽 비스무리한데 강냉이쌀이 들어 있다. 조심스레 두어 사발 후루룩..송어회무침은 달다. 역시 뙤작거리며 조심스레 젓가락질..묵무침을 시켰는데 설탕 범벅,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푸른 엄나무순무침만이 마음놓고 젓가락질 할 만하다. 요건 한 접시 더..나름 선방했다.자리를 옮겨 2차전 돌입,화목난로 불관리, 군고구마 공급책을 자임한다.정선 사과, 몹시 달다.사과는 당도에 비해 혈당을 크게 올리지 않는다.한 개 정도는 비교적 안심하고 먹을 만하다.군고구마는 구워만 주고 먹지 않는다.생고구마 한 입 베어무는 것으로 만족..오..
겨울이면 오리들이 둥둥 떠다니는 길 가상 작은 방죽.'새가 많네, 언제 한 번 봐야지' 한 5 년 그리 지나다니다 마침내 들여다본 방죽.작고 귀여운 댕기흰죽지들이 단연 눈에 띄었다.다시 한 5년 댕기흰죽지나 담으며 그리 지내다가 문득 '좀 귀한 녀석들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정밀 탐색.하여 보게 된 적갈색흰죽지와 붉은가슴흰죽지, 재작년 일이다. 이제 겨울이면 궁금해진다. '녀석들이 왔을까?' 흰죽지, 댕기흰죽지, 청머리오리,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물닭, 쇠물닭, 논병아리.. 둥둥 떠다닌다. 암수가 유별하니 종이 더 많아 보인다. 고개 처박고 발레 하는 녀석, 풀 뜯어먹는 녀석, 잠수하는 녀석 각양각색 평화롭다. '아직 안 왔나?' 공 들여 탐색한다. '왔네' 저기 멀리 혼자 노는 녀석, 나도 모..
갯벌과 주변 새들 살펴보는 날, 한 달에 두 번, 물이 가장 높은 사리 때에 맞춘다. 우리 패가 맡은 구간은 고창 상하에서 심원에 이르는 해안, 고창에서 도요물떼새가 가장 많이 도래하고 통과하는 곳이다. 11월 17일, 도요물떼새는 이제 월동 개체를 빼고는 대부분 떠나고 없다. 붉은어깨도요 무리(약 750마리)만이 전에 없이 많이 관찰됐다. 조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부안면 수앙들판을 지난다. 뚜루루~ 뚜루루~ 흑두루미 서너 무리 대략 60여 마리, 좀처럼 내려앉지 않고 하늘을 배회한다. 가을걷이 끝난 빈 논을 둘러보다 황새를 본다. 황새 다섯 마리, 유유자적 논바닥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 사람을 그다지 경계하지 않았다. 왼쪽 가람이, 오른쪽 번영이가락지를 식별해 신상을 턴다. 번영이(E85)와..
탐조 10여 년, 난생처음 새 보기 대회에 참여했다. 고창갯벌 람사르 습지 지정을 기념하는 것이라 했다. 새 보기 쉽지 않았던 5월 농번기, 명색이 대회인지라 눈에 불을 켜고 고창을 종횡으로 누비던 기억이 새롭다. 이른 새벽 갯벌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며 대죽도에 들었다. 갯바위를 뒤지며 먹잇감을 찾는 노랑부리백로가 흡사 굴 따는 할매들 같다.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한 것은 검은이마직박구리, 떼를 지어 날아다녔다. 녀석들을 처음 본 지 불과 수삼 년, 이제 녀석들은 참새떼보다 흔한 새가 되어가고 있다. 기후변화의 징표.. 섬은 섬이었다. 무당새와 할미새사촌이 관찰되었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섬에서 돌아 나오는 길, 중부리도요와 좀도요가 날아오른다. 나는 이날 좀도요를 관찰 목록에 올리지 못했다. 섬에서..
산에 사는 산새, 들에 사는 들새, 물에 사는 물새.. 새들은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소중한 이웃들이다. 새를 본다는 것은 새의 삶을 엿보는 것이니 우리의 관심과 관찰이 그들의 생활에 끼칠 영향을 무겁게 생각할 일이다. 수리부엉이는 산새인가, 들새인가? 녀석들은 산과 들의 경계에 산다. 암컷이 어딘가에 있겠는데 찾을 수 없다. 대놓고 다가가도 딸싹도 하지 않던 녀석,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 황급히 퇴각, 다시 찾지 않으리라.. 백두대간 산지에서 만난 검은머리방울새 무리는 일본잎갈나무 열매만 골라 조지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우리 집 지붕을 스쳐 뒷낭깥 소나무 위에 잠시 머물다 사라진 솔잣새 무리, 이 녀석들을 처음 본 것은 인적 드문 선운산 깊은 산중이었다. 십 수년 만의 만남, 올해 수백 마리 솔잣새..
고부, 영원, 백산, 죽산 거쳐 광활 지나 진봉.. 한 시간여를 달려 징게 맹개 너른 들판의 끝자락 만경강 하구에 다다른다. 내 처음 심포항에 간 것은 17년 전이었다. 포구엔 어선이 가득하고 거리엔 조개구이집이 즐비했더랬다.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되고 소위 각종 개발행위가 지속되고 있는 지금 너무도 많은 것이 변했다. 바닷물 찰싹였을 해안 초소, 초병은 간 곳 없고 초소만 위태롭게 남았다. 갯벌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초지로 조성된 비 내리는 거전 벌에 새떼들이 날아다닌다. 무슨 바이오 생명용지라 하더라. 도로 끝에 이르니 아직 개발되지 않은 예전의 갯벌이 무성한 갈대밭으로 남아 있다. 다시 바닷물이 들어오게 되면 여기는 다시 갯벌이 될 수 있을 터인데..솟대 위에 앉은 까마귀가 신령스럽다. 이 아이는 ..
그 옛날 '돌아온 무숙자'라는 영화가 있었다. 집도 절도 없이 떠돌면서 총만 잘 쐈던 사람 이야기였을까? 아마도 이 영화는 종길이 아재랑 자전거 끄시고 고창에 가서 봤던 것 같다. 그 내용이야 뭐 디지게 총질하는 것이었겠는데 내용은 간 데 없고 제목만 기억에 남았다. 오늘날 나는 '돌아온 조복자'가 되었다. 남들이 쉬 보지 못하는 새를 길 가다 보고, 얼떨결에 보고, 갔다 하면 보고.. 하여 나는 한때 조복 많은 사람으로 통했다. 그러던 것이 새 보러 돌아다닐 시간도 줄어들고, 재미도 시들해지고.. 그런데 최근 가는 곳마다 새들이 툭툭 튀어나와 새 보는 재미가 새록새록 살아온다. 타고난 조복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 나는 '돌아온 조복자'인 것이다. 재단사가 지나간 잔디밭, 찌르레기들이 먹..
잔디 출하를 시작하자 용케도 비가 내린다. 겨울비가 주룩주룩, 작업은 중단되었고 한동안 재개도 어렵겠다. 여러모로 일이 잘 안 풀린다. 아홉수에 걸렸으까? 아니다, 농사 절반은 하늘에 매인 탓이겠다. 어쩌면 팔자소관.. 굶주린 가창오리 일단의 무리들이 텅 빈 들판을 뒤적인다. 무슨 묵잘 것이 있을까? 너도 한 알, 나도 한 알 노나 묵지 못하고 너무 싹싹 긁어 거두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늘에는 늘 적정이 떠 있다. 배고픈 가창오리들을 습격한 참매, 혼비백산한 가창오리 뚝 너머 저수지로 돌아가고.. 사냥에 성공하지 못한 참매의 눈매가 퀭해 보인다. 북방에서 온 녀석일까? 그러니 이름자가 그렇겠지.. 흰눈썹울새의 행방을 물어보지만 부질없다. 잿빛개구리매가 높이 떴다. 나는 연습하는 겐가, 녀석은 아..
동림지에 가창오리 떼가 가득하다. 쟁기촌 앞 저수지 가상 논배미, 고라니 한 마리 놀라 달아난다. 왕버들과 갈대가 무성히 자라 시야를 가려주니 오리들 동향을 살피기에 좋다. 나무와 수풀 틈새기 좁게 터지는 시야를 겨우 확보하고 자리를 잡으니 오리 떼가 점점 저수지 가상으로 밀려온다. 오리 떼 웅성거리는 소리 말고 고요하던 저수지가 일순 한바탕 소동에 휩싸인다. 뭔가에 자극을 받았다기보다는 낮에도 이렇게 법석을 떨며 자리 이동을 반복한다. 그러니 내 탓은 아니다. 가창오리가 발휘하는 이 고도의 집단성은 어떻게 훈련되었을까? 이들은 번식지에서는 짝을 이뤄 단독생활을 한다. 이들이 대군집을 이루는 것은 월동지에서다. 아마도 오랜 세월 갈고 닦인 생존의 기술일 것이다. 저수지 아래 들판에서 월동 중인 붉은뺨멧새..
이곳은 본래어쩌다 한 번 왕이 드나들던 자리고관대작 뻔질나게 거들먹거리던 자리가물에 콩 나듯 양반네들 몰려와왕한테 엎드려 대들던 자리어리석은 백성들 감히 고개조차 못 들던 지엄한 자리갑오년 앞둔 동학도들 몰려와복합상소 떠들썩하던 자리그러나 그들 빈손으로 돌아가고농민군으로 다시 돌아와조선을 흔들었다네운명을 건 싸움에나섰다네오늘의 광화문넘쳐나는 깃발군중이 싸움 끝나고 나면우리 손에는 무엇이 남을까이 싸움의 진짜 끝은어디에 있을까우리는 역사에 어떤 흔적을남기게 될까.
쌀이 남아돈다쌀 농민이 문제다쌀농사 줄여라농민은 그만논에서 나오라농민 떠난 논자리 누가 차지할까경자유전은 개뿔국가는 한 땀 두 땀음모를 실행한다그러나 정작 넘쳐나는 건 수입수입에 밀린 우리 쌀논에서 쫓긴 우리 농민북망산으로 간다수입쌀 사라지면시장이 사라지나쌀수입 멈추면삼팔선 터지나터진 아가리에똥을 쳐넣어라놈들의 똥창에죽창을 꽂아라.
40년 전 어느날이었다어쩌면 이맘때쯤낯모르는 선배 내게 물었다이 책을 아는가책 속에이런 말이 있다 했다"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끊임없는 대화다"멋진 말이라생각했다그러니 학습하자이것은 첫경험,하여 잊히지 않는다죽을때까지 안 잊히겠다그러나 응하지 않았다막걸리가 더 좋았다오늘에야 본다세월 건너..내 기억의 한 구석생의 저편에서몽글몽글뭉게구름 피어난다반가웠다그냥,난생처음 실물영접, 국회 의원회관 책 진열장 속에 갇혀 있었다. 옛 생각이 떠올랐다. 오래된 책인데 지금도 읽히는 모양이다. 옛 친구라도 만난 듯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