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고 성묘만 하기로 한 지 석삼년, 
올해는 그조차 빼먹었다.
보름 후면 어머니 기일이니 벌초를 정성스레 한 것으로 벌충한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길을 나선다.
달은 산에서 봐야 제 맛이다.
늘 혼자 가던 길, 이번에는 애들이랑 간다. 
언제부턴가 혼자 산에 드는 게 껄적지근해졌다, 늙어가는 게다. 
흔쾌히 따라나서는 녀석들, 좀 큰 게다. 

한신계곡 따라 올라 세석에서 하룻밤 자고 천왕봉 들러 백무동으로 하산할 계획이다. 
9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숲에 드니 선선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온몸이 땀으로 촉촉해진다. 
비 지나간 숲도 촉촉, 가을은 아직 여기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애들은 그럭저럭 신이 나 있다, 아직은..

.
가내소폭포

다소 지쳐가는 듯..

험악한 오름길 막바지 조망이 터진다. 
백운산, 영취산 지나 덕유산 주릉 따라 백두대간이 북상한다. 

두류봉 능선

다 올라왔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나름 천신만고..

해는 이미 서산에 몸을 숨기고..

어두운 빛을 사방에 들이밀어 오더라~

햇반에, 라면에, 오리고기에 저녁을 마치니 이미 초저녁.
구름에 갇힌 달은 나올 줄 모르고..

대피소 계단 쑥부쟁이가 가을을 알린다.

구름이 걷히고 달이 휘영청~
밤이 깊었다. 

소원을 빌었다. 
어떤 소원이었는지 훗날 기억할 수 있을까 몰라..

몇 번을 들락거렸을까? 
아침 참 더디 오더라. 

아침 요기 후 촛대봉으로, 일출을 보기엔 늦었다. 
풀숲, 이슬 머금은 동자꽃이 지나간 여름의 흔적으로 남았다. 

저기 멀리 반야봉

하동 방면
섬진강
투구꽃
저기 멀리 반야봉
촛대봉
천왕봉

운무에 휩싸인 천왕봉을 바라고 산길을 이어간다. 

구절초

가히 선경이다. 
신선이 나오거나 내가 신선이 되거나..

저기 멀리 반야봉,

반야봉 없는 지리산은 심심하다. 
반원 무지개가 떴다. 

남매, 내년엔 막둥이도? 
음.. 막둥이는 내년에도 안 되겠구나. 

구름바다 저 멀리 장수덕유, 남덕유..

용담
버섯
구철초

저기 멀리 반야봉,
그 많던 구름 다 벗어던지고..

여기는.. 거림골..
저 멀리 삼각봉은 삼신봉일까?
모르겠다. 

천왕봉

고산 분위기 물씬

.

울울 첩첩 산줄기 너머 무등산이 확연하다. 
무등산 앞쪽에는 아마도 백아산 능선, 그 앞은 모르겠고..

저기 멀리 장수덕유, 구름에 휩싸인 백두대간

천왕봉이 손에 잡힐 듯..

쑥부쟁이, 구절초
연하봉
.

연하봉 지나 장터목 가까운 곳에서 만난 잣까마귀, 
앗, 잣까마귀, 확인하는 순간 줄행랑

장터목에서 다시 만난 잣까마귀

지가 무슨 이카루스라도 되는 양..

저 청한 하늘 흰구름 사이로 날아가 버리고..

정터목 지나 제석봉을 오른다. 
제석봉 분위기는 올 때마다 달라진다. 
고사목 사라지고 새로 자라는 나무들로 푸르게 푸르게..

잣까마귀

제석봉에서 또다시 만났으나..
아따 그놈 무쟈게 까칠하게 군다. 
따라다니질 말던가..

나로 어찌 안 되겠냐 큰부리까마귀 날아오고..

.
조롱이?
.
.
.
새매
잣까마귀

칼깃이 다섯 장으로도 보이고, 여섯 장으로도 보이고, 맹금 여러 마리 어지러이 날며 위로공연..
조롱이와 새매가 어우러져 놀던 것으로 지레짐작, 그중엔 잣까마귀도..
그러나 아쉬운 마음 여전하니 내 다시 올란다. 
잣까마구 이 녀석 잡히기만 해 봐라..

천왕봉을 지척에 두고 사진만을 남긴 채 철수,
뭔가 핑계를 대며 천왕봉은 다음에 오르기로 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나는 아무런 핑계도 대지 않았던 것이다. 

좌우튼 웃어..

.

인고의 하산길 더듬어 백무동 계곡으로..

로드킬일까? 뾰족부전나비

이 녀석은 이제 출몰하지 않는 곳이 없네. 
기후변화의 징표..

가을엔 역시 구절초..
지리 주릉 구절초는 이제 내년에나 볼 수 있겠지?
쑥부쟁이는 더러 남아 있을 수도..
가을걷이 마치고 애들 한 번 들쑤셔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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