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솔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학교에 다녔다.
이따금 커다란 날개로 소리없이 미끄러지듯 활강하는 녀석들을 보아왔다.
놀랄 겨를도 없이 솔숲 어디론가 이내 사라져버리는 녀석들이 어린 눈으로 보기에도 경이롭기 짝이 없었다.
부엉이 아니면 올빼미라 생각했을 뿐 정확히 어떤 녀석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들은 이제 깊은 산중에나 가야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잊고 살아왔다.
새를 보는 눈이 새삼 커지고 있는 요즈음.. 녀석들이 여전히 우리 주위에서 강건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작년 여름과 올 겨울을 지나며 우리 땅에서 살아가는 부엉이라 이름 붙은 녀석들을 모두 보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수리부엉이

수리부엉이


토끼가 수리수리마수리 하고 새로 변신하였으나 내공이 부족하여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말았다.
가장 특징적인 긴 귀때기를..
그래서 암벽, 흙벽에 기대어 은밀하게 숨었다. 
하지만 넌.. 영락없이 토끼다.
들판과 마을이 있는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밤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텃새로 살고 있다.

칡부엉이

칡부엉이


이 녀석도 태생이 토끼였음은 속일 길이 없다.
쫑긋한 귀, 땡그란 눈으로 "나 토끼 아니야" 하고 우겨보지만 그럴수록 더 토끼같아진다. 
그래서 칙칙한 숲 속에 숨어 있다. 
겨울손님으로 깊은 산이 아닌 야트막한 야산과 들판이 어우러진 작은 숲에서 보았다.

쇠부엉이

쇠부엉이


증진된 내공으로 귀도 거의 사라지고 눈 색깔도 많이 개선되었다.
토끼 아니라고 우겨볼 만한지 좀 더 개방된 곳으로 나왔다.  
칡부엉이를 보러 갔다 만난 녀석. 칡부엉이가 늘 앉는다는 소나무에서 날아 전봇대에 앉았다 다시 논바닥에 앉은 녀석을 찍은 것이다.
좀 달라보일 뿐 의심할 여지 없이 칡부엉이로 알았으나 알고 보니 쇠부엉이.
서식환경이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칡부엉이와 동거하고 있는 녀석이다.
혹 변신술을 연마한 토끼가 칡부엉이에서 쇠부엉이로 진화한 것은 아닐까 싶다.
겨울손님.


이 녀석에게서는 더이상 토끼의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 자신감으로 자신의 모습을 의연하게 보여준다.
사진을 찍는 나에게 주먹 쥐고 공군다.
"내가 토끼였다는거 발설하면 알지"
여름 손님으로 우리집 뒷낭깥에 온다.

토끼가 변신했다는 것 말고 이 녀석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사람과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으면서 쥐를 주식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심새 동지애마저 느껴지는 녀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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