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나트는 도를 깨친 석가가 함께 고행했던 수행자들을 찾아 처음으로 설법했다는 곳이다. 

자신이 깨달은 바를 말로 풀어내 다른 사람을 감화, 설복시킨 최초의 장소가 되겠다. 

당시 이 곳에는 함께 고행을 하던 다섯 명의 수행자들이 머물고 있었다.

이들은 극한의 고행 수련법을 버리고 강변의 여인에게서 우유죽을 얻어먹은 석가에 실망하여 결별했던 사람들이다. 

 

한편 석가는 한그릇 우유죽을 얻어먹고 심기일전하여 근처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깊은 명상 끝에 대오각성에 이르게 된다.   

당시 석가는 "무엇이 인간을 윤회 속에서 허덕이게 하는가. 어떻게 하면 그 괴로움에서 탈피할 수 있을까. 무엇이 삶에 내재되어 있는 업의 덩어리인가. 과연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었고 이에 대한 뭔가 큰 깨달음을 얻었을 터이다.

자신의 깨달음을 누구에게 먼저 전할 것인가? 

그리하여 찾은 곳이 함께 고행했던 다섯 수행자들이 머물던 이 곳 사르나트가 되겠다. 

득도한 곳으로부터 버스로 대략 6시간을 달려야 하는 거리라 하니 꽤 먼 거리를 걸어왔겠다. 

득도의 기쁨을 전하러 가는 당시 부처의 발걸음이 어땠을까? 축지법이라도 쓰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먼 길 달려온 부처의 설법을 들은 수행자들도 마침내 깨달음에 이르게 되어 부처의 제자가 되었다.   

 

당시의 설법은 대략 이러했다 한다. 

"비구들이여! 삶은 고통이다. 태어나는 것, 늙은 것, 병드는 것, 죽어야 하는 것은 고통일지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것, 원한 있는 자와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고통이니라. 구하나 얻어지지 않는 것도 고통이니, 요컨대 번뇌의 수풀 위에서 뿌리박은 이 몸이 존재하는 것이 고통이니라. 무엇이 이 고통의 근본이랴? 성내고, 탐내고, 어리석은 것, 이 세 가지가 모든 고통을 유발하는 원인이니라. 고통의 소멸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갈애(탐, 집착, 번뇌)의 피안을 벗어나서 영원한 기쁨에 안주하는 것이니라.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경지를 얻을 수 있을까? 올바로 보고 올바로 생각하고, 올바로 말하고, 올바로 업을 지니고, 올바른 생활수단을 갖고, 올바로 기억하고, 올바로 노력하고, 올바로 마음을 닦는 일이 바로 열반을 얻는 방편이니라."

이른바 8정도..

 

부처는 한동안 이 곳에 머물면서 법을 베풀어 많은 사람을 출가시키고 재가불자(우바이, 우바새)를 두어 일정한 세를 확보한 후 본격적인 중생교화의 길에 나서게 된다. 

 

사르나트가 어떤 곳인가 하는 탐구가 뜻하지 않게 길어졌다. 

사족을 달자면 나 또한 조계종이 인증하는 공식 재가불자, 우바새다.  

이름하여 '만각(晩覺)'처사.

 

 

 

 

 

 

뭔가 달라 보이는 녹야원의 개, 득도했을까?

도가 통한 건지 다른 걸 참고 있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Yellow-billed babbler, 노랑부리꼬리치레 정도로..

babbler '시끄럽게 지껄이는 어린애', 시끄러웠나? 잘 기억이 안 난다. 좀 화난듯한 표정..

 

 

 

 

Spice Finch, 향신료 핀치는 이상하고 비늘가슴 핀치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