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눈이 펑펑 내려 수북이 쌓이고 세상이 온통 꽁꽁 얼어붙기도 해야 제격인데..

자연의 순환에 기댄 소박한 소망마저 겉으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세상살이..

거리에서, 하늘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참으로 고단하고 치욕스러운 세월이다. 

새해 대둔산 해맞이 산행 이후 팔다리에 뻗치는 기운을 억제하기가 쉽지 않다. 

쑤시는 좀을 참다못해 선운산 낙조대를 찾았다. 

 

천마봉 오르는 길 계곡 으슥한 곳에서 밤톨만 한 굴뚝새 한 마리 발길을 붙잡는다. 

가는 겨울과 오는 봄 사이 주로 출몰하는 녀석인데 제 세상이라도 만난 듯 몹시 촐랑거리며 부산을 떤다. 

 

 

 

반나마 오르다 전망 좋은 바위에서 숨을 고른다. 

마애 미륵불과 도솔암 내원궁이 내려다보인다. 

도솔암 내원궁에는 보물급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어 지장보살을 읊어대는 독경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불이 입적한 이후 미륵불이 오기까지 부처 없는 세상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임무를 맡고 있으며,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지옥에 직접 들어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지옥세계의 구원자다. 

어쩌면 지장보살이야말로 미륵불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 않겠나 싶다. 

지장보살이나 미륵불이나 고통받는 민중들이 주로 의탁해온 분들이 아닌가. 

그런데.. 선운사 입구에서부터 밑도 끝도 없이 "이제 미륵 부처님 세상"이라는 현수막을 덕지덕지 붙여놓았다 싶더니 전에 없던 시설물과 번쩍거리는 조명으로 마애불 주변을 요란스럽게 치장해놓았다. 

이게 무슨 노천 카바레도 아니고.. 

미륵불을 밑천 삼아 불자들 주머니 깨나 뒤적거리게 하는 도솔암의 가없는 상혼이 영 마땅치 않다. 

 

선운사 도솔암 마애 미륵불 배꼽에 얽힌 동학농민혁명의 전사(前史)

전라도 고부를 중심으로 동학농민혁명의 기운이 무르익던 무렵, 

“도솔암 미륵부처님의 배꼽에 신기한 비결이 들어있는데 그 비결이 나오는 날 한양이 망한다”는 말이 은밀하게 나돌았다. 

이에 1892년(고종 29) 8월 어느 날, 동학 대접주인 손화중(孫華仲)의 접중(接中)에서, 민중을 구원할 이상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륵의 비기가 반드시 필요하며 지금이 바로 비기를 열어볼 때임을 결의하였다. 

이에 동학도 300여 명이 도솔암으로 올라가서, 청죽 수백 개와 새끼줄 수천 다발로 임시가교를 만들어 암벽에 올라간 뒤 비기를 꺼내었다. 

그 후 미륵의 비기에는 “이조 500년 후에 미륵석불의 복장을 여는 자가 있을 것이며, 그 비기가 세상에 나오면 나라가 망할 것이요, 그러한 후에 다시 새롭게 흥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동학도가 천지개벽의 비결을 입수했다는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무장ㆍ고창ㆍ영광ㆍ흥덕ㆍ고부ㆍ정읍ㆍ태인ㆍ전주 등 전북의 동쪽 지역 일대에서 동학도의 수가 수만 명으로 급격히 불어났다. 

미륵신앙(彌勒信仰)과 동학(東學)이라는 사상적ㆍ실천적 물결의 합류는, 민중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희구해온 혁세(革世)의 불씨에 거대한 불길을 일으켰던 것이다. 

실제로 동학도들이 비기를 꺼내었는지 또는 그 내용이 어떠하였는지 등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미륵불의 힘을 통해 모순에 찬 현실을 타파하고  이상 세계를 이루고자 한 당시 민중들의 간절한 염원과 실천적 행동은 엄연한 역사적 현실이었다.

 

도솔계곡
낙조대

 

천마봉에 올라 도솔계곡을 굽어보고 사방 경계를 둘러보며 시간을 보낸다. 

해가 아직 많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내심 기다리는 녀석들이 있는데 영 나타나지 않는다. 

천마봉에서 매년 만나던 바위종다리들이 재작년부터 종적이 없다. 

바위종다리는 백두산 천지 주변에서 번식하고 남녘 곳곳 바위 봉우리에서 겨울을 난다. 

매년 이 곳을 찾던 무리가 무슨 변고를 당한 것인지, 다만 내가 못 볼 따름인지 알 수 없다. 

겨울이 가기 전에 몇 차례 더 와봐야겠다. 

 

고슴도치섬 위도
방장산

 

낙조대에서는 위도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인근 병풍바위 철계단을 올라섰는데도 봉우리 하나 시야를 가린 채 바다 멀리 희미하게 보인다.  

핵폐기장을 짓겠다 하여 한바탕 난리를 치렀던 그 위도다. 

한여름이 되어야 위도 인근으로 해가 떨어지겠다. 

위도를 바라보다 몸을 돌리니 고창 산줄기의 맹주 방장산의 듬직한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방장산 앞에 방장산 닮은 작은 산줄기는 화시산(화시봉 403m)이다. 

화시봉 왼편 산줄기는 무장에서 기포한 농민군이 고부로 진격할 당시 타 넘었던 굴치를 품고 있다.  

 

 

다시 낙조대로 돌아와 떨어지는 해를 본다. 

해는 바다로 떨어지기 직전 칠산바다에서 올라온 구름이 삼켜버렸다. 

해 떨어지는 저 산봉우리 너머에는 영광 원전이 숨어 있다. 

오른짝의 철탑들은 76만 5천 볼트 초고압 송전 기술을 연구한다는 구시포 한전 전력시험센터에 세워진 것들이다. 

 

칠산바다에는 더 이상 조기 떼가 오지 않는다. 풍요롭던 갯벌도 날이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다. 

핵발전소에서 쏟아내는 온배수가 바다 생태계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바다의 변화는 바다에 의지해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에도 전환적이고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해는 매일같이 뜨고 지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끊임없이 변해간다. 

문제는 변화의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