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서해안, 그중에서도 고창과 정읍 접경에 집중적으로 눈이 내렸다. 

정읍 가는 길, 두승산이 눈길을 잡아끌며 이리 오라 손짓한다. 

두승산은 길을 나서는 나를 가장 멀리까지 바래 주고, 돌아오는 길 가장 먼저 달려 나와 반기는 그런 산이다. 

돌아오기 어려운 길을 나선 농민 혁명군들에게도 그리 했을 것이다. 

오전 내내 눈발이 오락가락하다 해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푹한 날씨 탓에 봄눈 녹 듯 눈이 스러지는 가운데 두승산이 홀로 아련하게 빛난다. 

정읍에서 일을 마치자마자 두승산으로 달려간다. 

시간이 많지 않다. 

 

 

 

눈이 제법 왔다. 정갱이까지 푹푹 빠진다. 

묘하게 산을 오를수록 눈이 적어진다. 

 

 

나는 아무래도 돌탑 쌓는 마음을 알아낼 길이 없다. 

그래도 분위기는 좋다. 엉성한 돌탑들이지만 경건하면서 정갈한 부도전 같은 기운이 전해져 온다. 

 

 

능선 아래 아늑하게 자리한 원통암, 부처님 정법도량이라고 보일동 말동 작은 팻말이 서 있고 방문에는 "목숨 걸고 묵언수행 중"이라 적혀 있다. 

지난가을에 왔을 때처럼 방 안에서 작은 기척이 느껴진다. 

 

 

말봉에 올랐다. 말봉은 두승산 산봉우리 중에서 가장 조망이 좋다. 

갱아지 두 마리 노닐고 있다. 지들끼리 올라온 모양이다. 

아무리 봐도 피붙이로 보이진 않는다. 연인일까? 신세가 나보다 고급스럽다. 

 

 

여기 어딘가에서 황토재(황토현) 전투가 벌어졌겠는데.. 당최 가늠할 수가 없다. 

황토재가 구체적으로 어디를 이르는 것인지 잘 아는 사람한테 물어봐야겠다. 

두승산은 많은 것을 지켜봤을 터인데 아무런 말이 없다. 

 

 

늘 다니던 유선사 방향 말고 반대쪽 끝봉으로 향한다. 

말봉에서 끝봉으로.. 말봉은 뭐고 끝봉은 뭔지..

끝봉에 세워진 팔각정이 운치 있어 보이나 현장의 실상은 다르다. 방장산 산줄기가 성큼 다가선다. 

끝봉에 서니 동네 앞 동림 저수지가 멀지 않다. 

붉게 타는 저녁노을 속에 날아오른 가창오리 떼가 고부 들판을 향해 날아오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눈 아래 펼쳐지는 가창오리 군무는 어떤 모습일까? 

언제가 될지 기약하긴 어렵지만 노을 좋은 날 올라와 한 번쯤 기다려보고 싶다.  

 

 

끝봉에서 노적봉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간다. 

우리 동네에서 보면 두승산 전체가 노적봉을 둥그렇게 감싸고 있고 그 가운데 노적봉이 불끈 솟아올라 있다. 

풍수쟁이들은 두승산을 아주 높게 친다 하는데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언젠가 두승산 기슭에서 산삼을 여러 뿌리 캤다는 소식이 방송을 탔었더랬다. 

 

 

원점으로 돌아오니 먼저 내려온 갱아지들이 꼬리를 치며 반긴다. 

말봉에서 봤다고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상당히 서둘렀는데도 시간이 늦었다. 

부리나케 시동 걸고 전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