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목 축이러 나간 대피소 마당에서 은하수를 보았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은하수지.. 참으로 별 많다. 
느지막이 일어나 행장을 꾸려 길을 나선다. 
늦은 출발이라 하지만 일곱 시가 채 되지 않았다. 
간밤 생각지 않았던 마가목술의 출현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었으나 약간의 숙취를 남겼다. 
밥은 벽소령에서 먹는 걸로.. 
날이 몹시 맑다. 그야말로 쾌청, 구름 한 점 없다. 

 

아! 구름 있구나.. 좌우튼 날 좋다. 참으로 좋다.
어제와 달리 암봉이 자주 나타나고 확 트인 조망이 가는 발길을 시시때때로 부여잡는다. 
어차피 오늘 세석까지만 가자 했으니 빨리 갈 이유도 없다. 

 
 

휘파람새를 불러내 놀기도 하면서 느적느적 걷는다. 
서다 가다를 반복하는 거북이 운행, 서늘한 바람이 같이 한다. 

금강애기나리, 색감 참 오묘하도다.
10여 년 전 민주지산에서 보고 오늘에야 다시 본다. 

벽소령에서 아점을 먹고 선비샘 부근에서는 낮잠까지 잤으나 어느새 천왕봉이 눈 앞에 성큼..
이 정도 폼은 잡아줘야.. 촌 냄새 풀풀 나는 병길 형님은 지리 주릉이 초행길이다.
28년 전 고창에 내려와 맺은 첫 인연, 고창에서 농사 지어볼란다고 내려온 첫날 만났다. 
곡절 많은 인생길.. 지금은 나무 농사꾼으로 탄탄히 자리 잡아 든든한 나의 후견인이 되어주고 있다. 

가꾼들 이리 될까? 참양지꽃 혹은 돌양지꽃..
돌틈이 아니니 참양지쯤으로 해 둘까? 어렵다. 

다시 만난 나도옥잠화, 아스라한 꽃대 위에 참하게도 꽃을 피웠다. 
종주 도중 너뎃 군데에서 군락을 만났다 

땃두릅, 땅두릅이 아니다. 귀한 녀석..

헐.. 아직도 이리 생생한 여인이 있다니.. 

세석고원 숙은처녀치마, 너 말고 그냥 처녀치마는 없냐?
농번기철에 피어나는 탓에 단 한 번도 눈 맞추지 못했던 녀석을 본다.

천천히 가자고 무진 애를 썼으나 세석에 당도하니 네시, 일찌감치 저녁을 차려먹고 세석고원 탐사에 나선다. 
내심 이러저러한 꽃과 나비, 진귀한 새를 고대했으나 숙은처녀치마, 휘파람새, 노란턱멧새 정도를 본 것 외에는 소득이 없다. 
영신봉에서 보았으나 렌즈 갈아 끼우는 사이 날아가버린 푸른큰수리팔랑나비는 꼴도 보이지 않는다. 

 

해 떨어질 시각에 맞춰 탈래탈래 홀로 촛대봉에 올랐다.
촛대봉에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무지막지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순식간에 손이 얼고 콧물이 줄줄.. 춥다 추와..
금강산에서 맞았던 바람 금강내기, 살을 에이던 소백산 칼바람에 이어 일생 기억에 남을 만한 바람이다. 
그런데 사진은 이처럼 따스하고 평온하다니..
사진은 현장의 진실을 다 말해주지 않는다. 

그냥 산철쭉이겠거니 여겼던 이 꽃은 털진달래라 한다. 
이미 대부분 지고 없고 촛대봉과 천왕봉 부근에 일부 남아 있었다. 

 
 
 
 

해는 뜨고 또 지고 또 뜨고 지고..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이겠으나 구름바다 너머 장엄하게 사라지는 해를 보는 그 마음 어찌 아니 각별하겠는가? 
해 진 후의 여명은 또 어떻고.. 무슨 말이 필요할꼬..
모진 풍상에 굴하지 않고 의연하게 버티고 선 구상나무의 힘찬 기상을 보시라. 

 

 

5월 지리산, #1. 성삼재~연하천산장

5월.. 것도 하순, 지리산은 어떤 모습일까? 5월 24~26일 지리산을 탔다. 새벽참 내린 비는 공연히 차단기만 건드렸다. 논마다 돌며 모다 다시 틀고 물꼬 단도리 단단히 하고 길 떠날 채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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