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해안 절경과 학포 일몰에 취하다.
아침이 밝았다.
어젯밤 보았던 거대한 와불을 알현한다.
구름이 다소 낀 싱그러운 가을 하늘을 인 나리분지는 한적하기 이를 데 없다.
또르륵 또륵 방울 굴리는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는 방울새들만 분주하다.
밭에는 대부분 더덕이 심어져 있고 군데군데 참고비를 심어놓은 밭이 보인다.
이미 가을이 완연하여 묵은 밭처럼 보이고 쓸쓸하다 못해 황량한 감마저 든다.
할레 할레 걷다 보니 울릉도 전통가옥인 너와집이 보인다.
실제로 사람이 살았던 집을 보전하고 있는 듯 하나 관리상태가 영 좋지 못하다.
가장 큰 특징은 눈이 많이 쌓이면 굳이 집 밖에 나오지 않고도 집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건물 외벽을 다시 한번 견고하게 감싸는 '우데기'가 그것이다.
지붕에는 바람에 대비하여 굵은 돌들이 너와를 하나하나 세심하게 누르고 있다.
아침을 먹는다.
산채정식 가격이 부담스러워 그냥 백반을 시켰는데도 각종 나물반찬이 식탁에 그득하다.
간밤에 먹은 막걸리 씨껍데기술은 정말 좋은 술이다. 산마을 식당 정말 좋은 집이다.
전혀 숙취가 없어 거뜬하다.
막걸리를 반주 삼아 아침을 먹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오전 10시, 이제 출발이다.
세심하게 정해진 노정은 없으나 해안을 돌아 숙소인 학포까지 가면 된다.
나리분지는 험준한 고개를 넘어야 하는 도로 사정상 대형버스가 운행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 버스를 타고 천부로 내려가 관음도 쪽 해안도로의 끝인 섬목이라는 곳까지 갔다가 다시 천부로 돌아오며 그 짝 방면의 해안을 훑었다.
대단히 낭만적인 버스 아저씨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는 곳곳 나타나는 명소와 울릉도의 특징 등을 아주 재미있게 안내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운행구간이 아닌 선창에서 섬목까지를 공짜로 구경시켜주었다.
버스에는 우리 일행과 두사람의 여행객 외에 울릉도 분들 서넛이 함께 승차하고 있었으나 10여분을 추가로 도는 운행에 대해 아무런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
여행 중 계속 느끼게 되지만 울릉도 분들 정말 순박하시다.
석포 전망대에서 바라본 죽도.
영락없는 와불이다.
불법은 즐기나 불심은 없는 내 눈에 왜 자꾸 와불이 들어오는지 모를 일이다.
왼짝의 관음도가 죽도를 향해 손짓을 하는 것도 같고, 달려가는 것도 같고..
나만의 생각일까?
오전 11시 30분, 우리는 다시 천부로 돌아왔다.
여기부터는 걷기로 하였다. 갈 만큼 가다가 지치면 쉬어가고 정 안 되겠으면 차 타고 가고..
실제로는 현포항까지 걸었다. 약 2km, 멀지 않은 거리인데 체감상으로는 매우 먼 길을 걸은 듯하다.
천부항에서 포구 전경, 뒤에 보이는 산이 송곳산이다.
성인봉에서 바라본 기억이 생생하다.
포구는 적막하기 그지 없다.
현포까지 걷는 동안 절반은 송곳산을 바라보며 걷게 된다.
송곳산 바로 아래를 지나고 있다. 하늘이라도 맞창낼 듯한 기세가 우리 민족의 기상을 닮았다.
나머지 절반은 코끼리바위(공암)를 바라보며 걷게 된다.
내내 드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가야 코끼리가 보일까 하는 생각뿐 하염없이 걷는 수밖에..
현포항에 당도해서야 코끼리바위가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해안길이 생각지 않게 지리하게 이어진다.
사람도 없고 차도 없는 호젓한 길이다.
영태가 내 앞을 걷고 있다. 사진기를 들지 않은 패들은 저만치 앞서 가버려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날이 흐려지며 간간히 비가 뿌린다.
현포항 방파제에 서니 코끼리가 제대로 보인다.
일행들이 다소 지쳤다. 술에 맞은 정덕순이 제일 골롱거린다.
여기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버스로 이동하기로 한다.
점심 먹는 동안 오는 길가에 피어 있던 들꽃과 간간이 보이던 새들을 감상하시라.
버스에서 내리니 바다로 흘러드는 태하천이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다.
새가 있겠다 싶은 나는 천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으로 달리고 나머니 일행들은 황토굴을 보러 간다.
내심 기대햐였던 작은도요는 보지 못하였다.
여기에서 숙소가 있는 학포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하지만 걷기에는 만만치 않을 뿐더러 터널까지 끼어 있는 가파른 고갯길이다.
궁리 끝에 숙소에 전화를 걸어 태우러 오라 하니 흔쾌히 수락한다.
차량비 5,000원을 지불하였다.
차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성하신당을 둘러본다.
꽤나 슬픈 사연이 깃들어 있는 동남동녀를 모신 신당이다.
조선시대 조정의 울릉도 공도 정책에 얽힌 설화가 아닌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 듯..
숙소는 학포마을 위쪽 찻길 바로 아래에 있다.
새로 지어 깔끔한 글자 그대로의 펜션이다.
술생각이 그다지 나지 않는 그런 집이다. 오늘 저녁은 편히 잘 수 있겠다 싶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낚싯대를 빌려 바다로 내려간다.
낚시가 매우 잘 된다. 담그면 고기가 물려 나오는.. 주로 돌돔.
낚시질 도중 저문 해가 진다.
낮게 깔린 짙은 구름 사이로 잠시 빛을 발하던 해가 이내 지고 만다.
어제의 일출과는 또 다른 장엄함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리고 나는 거대한 도깨비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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