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봉을 경유하여 나리분지로 가기로 한 산중파는 영태와 나 둘 뿐이다. 
KBS중계소를 산행 들머리로 하여 성인봉을 경유하여 나리분지까지 가는 산행시간은 약 4시간 30분으로 안내되어 있다.
시간을 지체한 탓에 택시를 잡아타고 서둘러 산행 들머리로 이동하였다.

두어 시간 전까지만 해도 보였다는 독도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좁은 협곡을 비집고 들어앉은 도동항과 독도를 바라보는 독도전망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2시 40분 산행을 시작한다.
성인봉을 오르는 산길은 평범하기 짝이 없다.
시야가 툭툭 터지는 날망도 아니고 물 흐르는 계곡도 아닌 평범한 산길을 하염없이 걷는 인내가 필요하다.

 

성인봉 인근의 숲은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은 말 그대로의 원시림이라고 한다.
하여 숲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너도밤나무가 주종을 이룬다고 하는 이 숲의 매력은 아무래도 바닥을 빼곡히 뒤덮은 양치식물이 아닐까 싶다.
간간히 산죽도 보이긴 하지만 대부분 고사리, 고비 등의 양치식물이 바닥을 뒤덮고 있어 청량감을 준다.

성인봉이 가까워지면서 가파른 급경사로가 나타난다.
여기만 올라 채면 평탄한 능선에 올라설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땀을 쏟다 보면 다리 쉼을 하기 좋은 팔각정이 나타난다.
오는 내내 터지지 않던 시야가 툭 터진다.
눈 아래 보이는 것은 북저바위, 저동항 방파제, 방파제의 촛대바위, 산 위의 하얀 행남등대 등이다.

능선에 올라섰으나 시야는 여전히 터지지 않는다.
다만 석양이 가까워진 햇빛이 충만하다.
안평전 마을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난다.

성인봉이 보인다.
삼각점의 꼭지가 바로 성인봉이다. 
5시가 다 되었다. 2시간 반 가량 걸렸다.

성인봉, 누가 이름 지었을까?
함께 오른 영태, 성인이 되었다.
해 지는 쪽. 방향으로 보아 태하 방면이 되겠다.
능선 오른쪽 희끄무리하게 보이는 것이 알봉분지.

울릉도의 산줄기도 분명 성인봉을 기점으로 사면 팔방으로 뻗어내려갔겠지만 해안에 접한 산줄기를 올라타고 성인봉에 접근하는 능선 산행은 불가능해 보인다. 
아니 가능하다 하더라도 탐사 등의 특별한 목적을 띤 산행이 아닌 한 감히 넘볼 수 없는 험악한 산세를 지니고 있다. 
말 그대로의 '야성', 호락호락한 섬이 아니라는 느낌이 나를 전율케 한다.  
까불지 마라 한다.

성인봉에서 약간 내려서니 시야가 더 잘 터지는 아늑한 조망대가 있다.
알봉분지와 산줄기 끝에 선 송곳봉이 보인다.
나리분지는 오른쪽 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 짝 아래에 나리분지가 있다.
산등성이에 레이다 기지쯤 되어 보이는 공군기지가 보인다.
왜구의 동태를 살피는 모양이라.

성인봉 원시림

성인봉에 먹구름이 몰려온다.
도동에서 가져온 막걸리를 비우고 하산을 서두른다.

 

내려가는 길은 이렇게 생겼다.
시설물이 없던 시절에는 어찌 오르내렸을까?
어지간하면 이 짝으로 올라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섬피나무 고목

산을 절반 정도 내려왔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알봉분지와 나리분지가 동시에 보이는 조망대가 있다.
두 분지를 부드럽게 솟은 알봉이 가르고 있다.
6시,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본래 계획으로는 나리분지에 도착했어야 할 시각이다.

가파른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알봉분지가 있다.
약수터에서 목을 축인다. 물맛 죽인다. 이제 다 왔다 하는 안도감에 어둠은 두렵지 않다.
아~ 그런데 여기서 나리까지의 거리가 만만치 않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기에는 부르면 들릴 듯한 지척으로 보였건만 이 길이 맞나 하는 의문을 두세 차례 마음속으로 공구고 나서야 나리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7시. 예고된 대로 4시간 반 가량이 소요되었다.
길게 누워 하늘을 응시하고 있던 와불이 우리를 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