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분지의 밤.
울릉도에서의 첫밤을 보낼 곳은 나리분지의 산마을 식당이다.
먼저 도착해 있던 해안파와 합류하여 여장을 푸니 7시가 넘었다.
우리는 곧바로 저녁식사를 겸하여 막걸리 잔치에 돌입하였다.
해안을 돌아 험준한 고개를 넘어 나리분지에 입성한 해안파는 도처에 즐비한 기암절벽이 마치 정과 마치로 깎아 세운 것 같다며 감탄해마지 않는다.
산줄기를 타고 넘어온 우리 역시 손짓 발짓까지 동원해가며 성인봉에서 내려다본 울릉도를 이야기한다.
과장법은 기본이다.
그러나 울릉도 풍광에 대한 감탄과 찬사도 잠시 우리는 울릉도의 막걸리와 산나물 맛에 그만 취해버렸다.
씨껍데기술, 나리분지 특산 막걸리라 한다.
조껍데기술과 마찬가지로 발음에 매우 유의해야 하겠는데 그 맛이 가히 일품이다.
꽤 많은 막걸리를 마셔보았지만 이만한 막걸리를 본 적이 없다.
보통 막걸리 하면 시큼털털하거나 텁텁한 맛이 연상되는데 반해 이 맛은 한마디로 청아하다.
세세한 제조공정이나 재료야 알 수 없지만 목 넘김은 청아하고 각종 천연재료의 은은한 향기가 입안에 오래도록 남는다.
안주는 또 어떠한가?
감자전이야 뭐 다른데도 있는 것이라 치고..
곰취 묵나물이 주재료가 된 산나물 전도 다른 곳에서도 맛볼 수 있을 터..
엉겅퀴 장아찌는 어떠한가?
우리 동네에서는 짱아치라 하니 우리 동네 표기법을 따르기로 한다.
울릉도에서 고추장이나 된장에 박아서 만드는 짱아치는 보지 못하였다.
아삭하게 씹히는 맛은 마치 신선한 과일을 씹는 듯하고 새콤한 맛은 내장의 묵은 때를 벗겨낼 듯하다.
엉겅퀴 잎으로 이런 맛을 내다니..
삼나물 회무침. 그야말로 환상의 맛. 뭐라 형언할 길이 없다.
울릉도에 가시거든 꼭 잡솨보시라는 말 밖에는..
명잇잎짱아치. 울릉도 특산 산마늘 잎이 그 재료이다.
초기 개척민의 목숨을 부지해준 공로로 울릉도 사람들은 '목숨 명'자를 붙여 '명이'라 부른다.
여기에는 무얼 싸 먹어도 좋겠으나 특히 생선회를 싸 먹으면 생선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고 그 맛을 배가시켜준다.
울릉도에서의 첫 경험들을 무용담처럼 풀어놓으며 거듭되는 잔질에 갖은 여독이 거짓말처럼 씻겨진다.
밤이 무르익도록 잔질은 그치지 않았고 우리는 열 투가리 정도의 막걸리를 비우고서야 자리를 마감하였다.
어설픈 술꾼들은 이후로도 소주병을 서너 개 깠다고 하나 이는 막걸리에 흠뻑 취하지 못한 까닭이다.
고요한 나리분지에 밤늦도록 울렸을 객들의 소란스런 웃음소리에 토박이 주인들이 잠을 설치지나 않았을지 이제 와서 새삼 송구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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