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와 고려사악지에 기록된 방장산의 본래 이름은 '방등산'이다. 
'방등'은 불가의 용어로 "방정하고 평안하다" 하는 뜻이라 하니 산의 품세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방등산이 방장산으로 불리게 된 것은 조선조 중국을 숭앙하던 선비들이 중국의 방장산에서 이름을 가져와 붙인 것이라 한다.
사대주의가 골수에 박힌 나부랭이들이 하는 짓이라는 것이 늘 이렇다. 예나 지금이나...
하지만 이 역시 오랜 세월 역사성을 획득한 터 현세대에 보편화된 방장산이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자 한다.

방장산은 고창의 진산이다.
고창은 방장산에 기대어 있고 방장산은 고창을 굽어보고 있다.
방장산은 선이 굵다.
흔들림없는 묵묵함으로 항상 그자리에 그렇게 서 있는 그런 산이다.
방장산은 호남정맥 내장산 구간에서 분지하여 전남북 도 경계를 흐르다 불갑산을 거쳐 목포 유달산에 이르는 산줄기에서 으뜸가는 산이다.
방장산에서 바라보는 산줄기의 유장함은 호남정맥과 영산기맥의 흐름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탁 트인 시원스런 조망에서 기인한다.
방장산에서는 무등산도 보이고 지리산 주능선도 한눈에 보인다. 
방장산도 방장산이려니와 다른 산을 바라보는 맛이 더 좋은 그런 산이다.

잔뜩 찌푸린 날씨지만 오후 한때 소나기라는 예보를 믿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고창 사람들이 가장 즐겨찾는 산행 들머리는 양고살재 고갯마루이다.
양고살재는 병자호란 당시 '양고'라는 적장을 죽인 고개, 외세에 맞선 항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이름에 박혀 있다.
살짝 가파른 길을 치고 올라 능선에 서면 시원한 바람이 땀을 가시게 한다.
무덤이 있는 작은 봉우리에서는 양고살재를 오르는 구불구불한 차길이 내려다보이고 고산을 지나 영광쪽으로 흐르는 산줄기가 한눈에 잡힌다.

양고살재길과 저 너머 솔재길이 보인다.
굽이치는 산줄기

여기서부터는 바람 솔솔 부는 편안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꽃이 보이면 꽃을 찍고, 새가 보이면 새를 찍어가며 타박타박 걷다 보니 이내 벽오봉이다.
가을 억새가 잘 어우러지는 이 봉우리는 '벽오'라는 산적의 이름자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하는데 그 얘기를 전해준 사람은 지금껏 단 한사람 뿐이다. 
벽오봉 바로 옆의 억새봉은 페러글라이딩 하는 친구들이 애용하는데 잡목을 제거해버리는 바람에 산 아래에서 보면 이마 벗겨진 대머리처럼 보인다.
쑥부쟁이, 억새, 참취, 범꼬리, 구절초 등의 야생화가 밭을 이루는 곳인데 이 역시 예초기의 칼날에 난도질 당하였다.
이곳에 서면 고창읍내와 신림, 성내, 아산, 부안면의 너른 들판과 야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들어 눈을 멀리 하면 선운산 너머 서해 칠산바다가 언뜻 보인다.

지난해 가을 억새봉
지난해 가을 억새봉
억새봉에서 본 저녁노을

여기서부터 정상을 거쳐 입암 갈재까지의 능선을 방장산의 주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적한 숲속 오솔길을 지나기도 하고 가파른 된비얄을 한바탕 되게 치고 오르면 방장산 주봉에 이르게 된다.

고도는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 지도에는 742.8m로 나와 있다.
봉수대를 넘어가는 구름
 

이곳 정상에서 헬기장이 있는 연지봉까지의 능선이 방장산 산행의 백미라 할 만 하다.
암릉으로 된 능선은 산행 내내 시원한 조망과 함께 가을이면 구절초, 숙부쟁이, 억새 등 가을 꽃들이 만발한 구간이다.
방장산에는 아직 가을이 오지 않았다. 물봉선, 여뀌, 등골나물 등 여름 꽃들이 아직 기세가 등등하여 여름의 끝자락을  놓지 않고 있다.
오락가락하던 빗줄기가 점차 굵어지고 바람이 세차게 일기 시작한다.
오후 한때 소나기라는 예보가 무색하다.

잔대

연지봉에 서니 일순 구름이 몰려오고 빗줄기가 더윽 거세어진다.
방장산에서 구름바다를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렌즈에 달라붙는 빗방울을 닦아가며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가을을 뛰어넘어 겨울로 직행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방풍옷을 꺼내 입었는데도 꽤 춥다.
이제 구름이 뒤덮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최대한 빠른 탈출로로 산을 벗어나는게 상책이겠다.
연지봉을 지나 용추골로 빠지는 길을 택해 속도를 내니 30여분만에 임도에 다다른다.
탱자탱자하며 걷는 산행인지라 짧은 거리임에도 5시간가량을 산에 있었다.

04년 추석 다음날(9월 28일) 연지봉에서
 
2007년 10월, 지리 주릉이 한눈에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