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고창 눈이 별나게 많다.
대설경보가 몇차례 내려졌는지 알 수가 없다.
겨울 가뭄이 심하다는 다른 지역과 달리 눈 녹은 물이 차올라 저수지마다 물이 그득하다. 
지난 일요일과 월요일 눈 속에 잠긴 방장산에 올랐다.
일요일, 예전과 달리 방장산도 꽤 유명세를 타는 모양이다.
들머리로 잡은 양고살재에 관광차가 4대나 세워져 있다.
따로 행전을 찰 필요가 없을 정도로 길이 반지르하다.
억새봉에 이르니 오락가락하던 눈이 그치고 잠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일요일 산행은 다소 밋밋했다.

 

산을 내려오는 동안 퍼붓기 시작한 눈이 밤새 다시 폭설이 되었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월요일 오전, 공설운동장 씨름장 뒷편을 들머리로 삼아 산에 오른다.
소나무 우거진 솔밭을 한참을 치고 오른다. 퇴깽이를 빼고 우리를 앞선 발자욱이 없다.
의외로 능선이 길다. 시간 반가량을 치고 올라서야 주릉에 이른다.
주릉에서 흥덕 농민회원을 만났다. 멋진 사나이.
주릉의 눈은 깊이가 다르다. 바람이 밀어붙인 눈더미가 때로는 허리까지 차오른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억새봉에 당도하니 거센 칼바람과 눈보라가 삽시간에 몸을 얼어붙게 한다.
라면을 끓여야 한다.
바람을 피해 눈어덕 밑에 자리를 잡아 한없이 움추러드는 가스불을 잡고 실갱이한 끝에 떡라면이 겨우 만들어졌다.
끓였다기보다 라면을 물에 불리고 그 물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린 것. 
뜨거운 국물을 넘기지 못하면 얼어죽을수도 있다는 필사의 각오로 완성시킨 떡라면이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그 사이 몸은 얼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나 떨고 있냐..? 
라면을 우겨넣기 시작한다.
뜨거운 국물이 넘어가고 속에서부터 데워진 몸이 풀리면서 떨리던 몸이 진정된다.
여전히 눈은 내리고..

몸이 좀 훈훈해지고 나서야 소주병이 눈에 들어온다.
어제밤 술에 맞아 골골거리는 영태는 사양한다.
병목아지를 잡고 몇모금 넘기니 목구멍이 쌔하다.
재빨리 행장을 수습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여전히 눈은 내리고..

 


정상은 포기한다.
전주이공의 묘비, 라면먹는 사이 내린 눈으로 전주 할때 '전'자가 반 넘게 가려졌다.  
벽오봉 너머 하산길, 언제 그랬냐는 듯 파란 하늘이 드러나고 해가 비친다.
가방에 넣은 사진기를 챙기자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삽시간에 구름이 밀려온다.
여전히 눈은 내리고..

 
 

양고살재가 내려다보이는 갈미봉에서 하산길을 수월 방향으로 잡는다.
순전히 하산길이 수월하길 바라는 마음 뿐 다른 의도는 없다. 
'오늘은 전인미답'의 급경사길을 미끄러지듯 내려서니 올림길에서 마주친 거목이 있던 장소에서 길이 합쳐진다. 
어린 아들을 동반한 아버지가 컵라면을 끓이고 있다.
여전히 눈은 내리고..

얼마간을 구르듯 내려서니 다시 씨름장.
산정에서 먹은 라면국물과 소주의 쌔한 기운이 아직도 기억에 삼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