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륙 깊숙이 자리한 소백산, 난생처음 품에 안기고 돌아왔다.  

산행 전날 어의곡 입구에서 바라보는 소백산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했다. 

 

 

일출은 따로 보지 않기로 하고 새벽 6시 반경 길을 잡아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게 걸어 오른다. 

비로봉 2.2km 지점을 통과한다. 날이 제법 밝았다. 

딱 절반 정도 올라왔다. 오름길은 가파르지 않고 꾸준히 고도를 올린다. 

 

 

능선 너머로 붉은 태양이 나타났다.

 

 

이제 주릉이 얼마 남지 않았다. 

광선총으로 찢어놓은 듯한 하늘 틈새가 이채롭다.

기대했던 상고대는 보이지 않는다.

 

 

이 친구 행복해 보인다. 

사진은 현장의 진실을 다는 알려주지 않는다. 

 

 

국망봉 방면으로 향하는 사람들, 장쾌한 능선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비로봉을 눈 앞에 둔 주릉에 서니 지독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몸이 얼고 바람맞은 피부가 놀라 찢어질 듯 비명을 지른다.  

바람의 고향이라더니 명불허전, 소백산 칼바람의 위력이 대단하다. 살을 에인다는 말을 실감하겠다.

혼비백산, "혼은 바람과 함께 날아가고 백은 육신과 함께 흩어진다"

 

내 지금껏 산에서 맞았던 바람 중에 '금강내기'가 있다. 

금강산 길이 열려 있던 시절 2004년 4월 초의 일이다. 

야생화 탐방하는 사람들과 함께 갔던 금강산에서 산을 넘어 내리꽂던 대포알 같은 바람을 맞아본 적이 있다. 

북쪽 안내원들이 "이 바람을 금강내기라고 합니다"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산을 넘으면서 따뜻하게 덥혀진 봄을 재촉하는 끝이 뭉툭한 바람이었다.  

이에 비하면 소백산 바람은 살을 찢어 저미는 고통을 맛 보이는 그야말로 칼바람, 잊을 수가 없겠다.

 

 

비로봉에 이르는 마지막 오름길, 멀리 연화봉과 천문대가 보인다.

 

 

비로봉에 오른 묻지 마 산악회, 지난여름 설악산 이후 두 번째 산행, 어렵게 시간을 합쳤다. 

그 칼바람 속에서 이 정도 표정을 잡아내다니 정말 놀라운 사진 기술이로다. 

김명래 기자 수박만 한 뱃구레도 날씬하게 만들어주고..

 

 

바람이 너무 쎄서일까? 

탑이라고 보기에는 민망한 돌무더기와 멋대가리 없는 정상석이 봉우리를 지키고 있다. 

비로봉, '비로'는 불교에서 '높다'는 뜻으로 쓰이는 범어이기도 하고 '비로자나불'에서 유래한 봉우리 이름이라고도 한다. 

비로자나불은 큰 광명을 내비치어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를 말한다.

금강산, 모향산, 오대산 등 많은 명산의 정상이 비로봉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하지만 소백산 겨울 비로봉에서 부처의 자비를 기대했다가는 큰 코 다치지 싶다. 

철저한 방한방풍 대책이 필요하다. 

 

 

도저히 오래 있을 수가 없다. 

서둘러 무인 대피소로 향한다. 

 

 

무인 대피소, 주목 감시 초소라 쓰여 있다. 

바람을 막아주는 것만으로는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에 역부족이다. 

하지만 취사금지, 뜨거운 라면 국물이라도 넘겨 속을 덥히려는 사람들이 많아 겨울에 한해 취사를 허용해야 되지 않겠는가 싶다. 

어차피 너나없이 끓여먹는 라면인데 속이라도 편하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길을 재촉한다. 

연화봉까지 가서 희방사 계곡으로 하산하는 것으로..

비로봉에서 연화봉에 이르는 구간은 대간길이다. 

뒤따라오기로 한 나머지 일행은 천동 계곡으로 내려갔다. 

 

 

올 겨울 눈이 많이 오지 않았다 해도 고산인지라 꽤 쌓여 있다. 

멀리 천문대가 지속적으로 어서 오라 손짓한다.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수더분하고 펑퍼짐한 길..

바람이 언제 불었나 싶다. 

산은 고요하고 햇살은 따사롭다. 

 

 

 

천문대가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어느덧 연화봉에 이르는 막바지 오름길이다. 

6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분들이 온갖 농담을 주고받으며 느릿느릿 한 발 한 발 산을 오른다. 

 

 

연화봉에서 본 소백산 파노라마, 주릉 길이 유순하기 짝이 없다.

나이 자신 할머니 호랑이. 

비로봉 칼바람은 빼고..

 

 

희방사 계곡으로 방향을 잡고..

 

 

희방사에서 오르는 깔딱 고개, 다행히 나는 내려가는 길이다. 

희방사에서 여기까지 900m, 올라오기로 하면 못 오를리야 없겠지만 살다 이 길로 올라오는 일 없도록 주의해야겠다. 

 

 

얼어붙은 희방폭포, 이 폭포를 보고 나면 이내 산을 벗어나게 된다. 

 

 

풍기읍 부근 중앙 고속도로상에서 본 소백산 주릉이 장엄하다. 

 

소백산어의곡희방사.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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