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길섶에 피인 꽃 어찌 이리도 고우냐
길섶에 피인 꽃 어찌 이리도 고우냐
2022.10.11무등산 자락 생태 탐방원에서 밤을 보내고 원효사로 향한다. 원효사 입구, 사람과 차가 한가득. 차를 돌려 한적할 만한 곳을 찾다 '광일 목장'을 골라잡았다. 그리 멀지 않다. 김밥 두 줄, 물 두 병.. 헌데 광일 목장은 사유지,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판도 그렇고 차를 둘 곳이 마땅치 않다. 차를 돌려 마을(정곡리)과 목장 사이 임도 입구에 차를 두고 산으로 든다. 북산, 신선대 지나 원효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늦었다. 일단 갈 데까지 가보는 게다. 여기는 담양, 대나무가 임도를 넘어 산을 침범하고 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으나 대나무가 산을 점령하게 되면 숲이 망가진다. 콧노래 되는대로 흥얼거리며 인적 없는 호젓한 산길을 걷는다. 길섶에 피인 꽃 어찌 이리도 고우냐 공중의 찬..
선운사 고라당
선운사 고라당
2022.10.02나는 상당히 무던하고 둔감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러함에도 나흘간 지역을 돌며 논을 갈아엎은 후과는 상당했다. 고상하게 말하자면 정신적 피로라고나 할까? 오늘은 토요일, 선운사 고라당으로 간다. 생각하기는 이슬이 깨기 전에 돌아오려 했으나 꽤 긴 산행이 되고 말았으니, 최근 몸이 급격히 가벼워진 탓이다. 그런데 선운산은 어디에 있는 걸까? 선운사에 선운산은 없다. 선운사 일주문에는 '도솔산 선운사'라 쓰여 있으나 도솔산도 없다. 선운사 중들이나 그리 불렀던 모양이다. 최근 선운사 뒤 쪽 수리봉을 선운산이라 이름 짓고 그리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이 또한 일반적이지 않다. 선운산은 선운사를 에워싸고 있는 주릉에 망라된 봉우리와 그 골짜기들을 통칭한다 보면 되겠다. 하여 고창 사람들은 '선운사 꼬랑' 혹은..
지리산에 안기다.
지리산에 안기다.
2022.09.22지난 8월 뱀사골을 오르다 갈빗대가 부러졌다. 보름 만에 퇴원하고 다시 보름, 한 달이 지났다. 나는 다시 지리산으로 달린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불쑥 반야봉이 나타났다. 산 밖에서 반야봉을 보는 건 아마도 처음이다. 반야봉 너머 남쪽 하늘이 별스럽다. 멀리 일본으로 갔다는 태풍의 영향인 듯.. 빗점골, 이현상 사령관 비트를 찾아 오르는 사람들.. 지리산에 안긴다. 이현상 사령관(1905. 9.27~1953.9.17) 69주기, 제상이 차려지고 추모곡, 추모사, 헌시.. 조촐한 추모제가 거행되었다. 인근에 잠들어 계신 또 한 분의 전사, 남부군 81사단 문화 지도원 최순희(1924.2.10-2015.11.21). 그이에게도 추모의 예를 올리고.. 지리산哭 너덜겅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산중 오락회, 그리고..
정선 백운산, 동강할미꽃
정선 백운산, 동강할미꽃
2022.03.29밤을 도와 먼 길 달렸다. 새벽 한 시, 당도한 곳은 험악한 산중,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침을 맞으며 비로소 본다. 분명 좁은 산고랑창을 비집고 들어왔는데 준고랭지에 펼쳐진 너른 밭이 놀라웠다. 날이 겁나 쌀쌀했다, 여기는 정선.. 쥔장 앞세우고 산으로 간다. 신동읍 운치리, 굽이굽이 흘러온 동강이 용트림하며 휘돌아 나가는 곳, 수직으로 깎아지른 벼랑 너머 우뚝 솟은 백운산이 거기에 있다. 목적지에 차 갖다 두고 서둘러 산으로 든다. 강물이 발아래 놓이고 사람 사는 땅이 아스라해질 무렵 기다리던 꽃들이 간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리 아슬아슬한 절벽에 뿌리는 내리는 건지 그 마음 쉬 알 수가 없다. 갓 피어난 나어린 할미, 아침이슬을 머금고 있다. 강 건너 운치리, 저 산속을 헤집고 들어가고 ..
방장산 달맞이
방장산 달맞이
2022.02.20올 겨울 유난히 눈이 없더니 대보름날 눈이 내렸다. 눈이 쏟아지다 해가 나왔다를 반복하는 변덕스런 날씨 속 방장산이 허옇다. 하얀 산이 당기는 힘은 매우 강력해서 감히 거역할 수가 없다. 그래 오늘밤은 방장산에서 자자고, 구름 사이 흘러가는 대보름달도 볼 겸.. 주섬주섬 짐을 챙겨 산에 드니 이미 어둠이 짙다. 간간이 눈발이 날리고 커다란 보름달은 구름과 구름 사이를 담박질 친다. 눈 쌓인 능선길 걸어 벽오봉까지 한 시간 하고도 20여 분, 제법 거대해진 고창읍내의 불빛이 휘황하다. 읍내만 커졌다. 달구경도 잠시, 몸 식을세라 서둘러 천막을 치고 안으로 든다. 바람이 심하지 않다. 눈이라도 나리면 좋으련만.. 라면 하나 끼래 복분자술 한 잔, 탱자술 한 잔 번갈아 마시다가 잠을 청한다. 이미 밤이 깊었다..
호남정맥 추령봉(개운치~추령)
호남정맥 추령봉(개운치~추령)
2021.12.2612월 25일, 녹두장군 일행이 입암산성으로 스며들었다. 그들은 한양으로 잠입하고자 했으나 사흘 뒤 피노리에서 붙잡히는 몸이 되었다. 농민군 본대가 벌인 태인에서의 마지막 전투 이후 불과 닷새, 장군의 잠행은 너무도 짧았다. 펄펄 눈이 내린다. 날이 몹시 차다. 예기치 않았던 눈, 실컷 맞고 싶었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고민하다가.. 호남정맥 개운치, 고갯마루엔 찬바람만 쌩쌩 매섭게 불고 있었다. 눈발이 날리지 않는다. 미리 제목까지 달아놓고 달려왔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호남정맥엔 눈이 내리지 않았다. 방장산, 혹은 선운사로 갔어야 했다. 초입은 대숲, 대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산에 안긴다. 조릿대 숲을 지나 만난 오래된 전호의 흔적, 딱 있을 만한 자리마다 여지없이 나타나던.. 그날의 흔적. 지..
지리산
지리산
2021.12.20지리산에 안기다. 실로 오랜만, 거진 열 달만이다. 오늘은 동행이 있다. 9시 30분, 백무동에서 두지동 방향으로 들어선다. 눈이 내리지 않아 아쉽다. 9시 50분, 옛 마을 터에 당도한다. 마을 이름이 기억이 안 나.. 한때 경남도당 인민유격대가 머물렀다 한다. 사람들은 떠나고 없어도 감나무엔 감이 주렁주렁.. 10시 40분, 창암 사거리 근처 망바위에 올라 천왕봉을 알현하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칠선계곡을 경이롭게 바라보다. 거친 산길, 사면을 거슬러 칠선계곡으로 넘어간다. 12시 20분, 칠선계곡에 당도하다. 눈 덮인 이끼가 파릇파릇, 새순 돋는 보리밭 같다. 치마폭포 뒤로 눈 쌓인 천왕봉이 보인다. 추성동 감도는 칠선의 여울 속에 굽이굽이 서린 한이 깊이도 잠겼구나 ... 너는 알지 눈보라가 ..
호남정맥 고당산(구절재~개운치)
호남정맥 고당산(구절재~개운치)
2021.12.13동트기 전 산에 올라 조망 좋은 봉우리에서 해를 맞이하고 다시 날이 어둑할 때까지 산을 탔더랬다. 그리 산을 타면 하루 산행거리가 30여 km를 넘나들었다. 불과 5~6년 전의 일이었는데 이제는 새벽에 길을 나서는 것조차 쉽지 않다. 언젠가 죽령에서 만나 소백산을 타 넘기로 약속한 적이 있었다. "어디만큼 오셨어요?" "워매, 나 아직 이불 속인데.." 어찌나 미안헸던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오랜만에 새벽 산행을 해보자 맘먹고 잠이 들었으나 엎치락뒤치락 꼼지락거리다 보니 한낮이 되어간다. 구절재를 향해 길을 달린다. 칠보 소재지 허름한 뒷골목에서 보석 같은 식당을 발견했다. 언제고 칠보에 갈 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이 집에 다시 갈 것이다. 구절재에 당도하니 정오, 짐을 꾸려 출발한다. 오늘은 속도 위..
호남정맥 왕자산(소리개재~구절재)
호남정맥 왕자산(소리개재~구절재)
2021.11.302021년 11월 28일 11시 45분, 산길을 이어간다. 간밤 음악가 선생들과 마신 술이 과했다. 숙취 해소를 위한 산행, 오늘은 순창 사람 김 씨의 도움으로 차를 미리 목적지에 갖다 두고 시작한다. 몸을 낮출 대로 낮춰 도로를 건넌 정맥은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다시 산으로 오른다. 정맥은 한동안 밭과 밭 사이, 무덤 사이, 자그만 솔밭 사이, 가시밭길 돌무덤을 헤쳐간다. 으슥한 곳을 골라 앞뒤 개완허게 비워내니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직박구리, 개똥지빠귀 소리 사이로 낯선 새소리가 들린다. 오~ 좋은 징조로다. 한참을 갈등하며 조물딱 거리다 가져온 망원렌즈를 꺼낸다. 어랍쇼 검은이마직박구리, 이 녀석들을 예서 만날 줄이야 몇 년을 보고 싶어 모대기던 녀석인데 올해만 세 번째, 한 번 보고 나면 자꾸 ..
호남정맥 묵방산(운암 삼거리~소리개재)
호남정맥 묵방산(운암 삼거리~소리개재)
2021.11.22늦가을인가 초겨울인가, 호남정맥에 다시 안기다. 진달래 꽃망울 터뜨리던 초봄이었으니 고닥새 반년이 훌쩍 지나버렸네. 날이 갈수락 먼 길 단번에 가기 어렵다. 나이는 자시고 몸은 불고, 별 수 있나 구간을 쪼개 조금씩 나아가야지. 그러다 다리에 힘 받으면 쭉 빼기도 하고.. 묵방산이 538m, 이번 구간은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 차 달리는 소리 허다히 들릴 것이다. 산이 사람 사는 세상과 가까워지면 필연코 깎이고 뭉개져 상처투성이가 된다. 하여 사람의 간섭이 심한 마을 주변과 밭 가상은 가시덤불과 잡초가 우거져 길은 걸핏 사라지기 일쑤, 집중하지 않으면 곤욕을 치르는 수가 있다. 수풀 무성한 여름이 아니어서 다행인 것이다. 운암 삼거리, 들머리부터 수월치 않다. 흔히 도깨비풀이라 불리는 미국가막사..
입암산 달맞이
입암산 달맞이
2021.09.23추석에는 벌초와 성묘만으로 자손 된 도리를 다하기로 했다. 송편을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지만 보름 후에 있을 어머니 기일에 집중하겠다는 좋은 핑곗거리가 있다. 하여 성묘를 마친 우리는 각자 흩어졌다. 나는 산으로 간다. 추석 보름달을 맞기엔 산 만한 곳이 없다. 입암산 남창골, 새벽에 내린 비로 산은 온통 물 투성이로 축축하다. 산성 남문을 지나 북문을 거쳐 갓바위에서 달을 맞을 계획이다. 이 길은 입암산을 오르는 가장 편안한 길이다. 두꺼비들이 발에 밟힐 지경이다. 녀석들은 사람들의 발길을 과히 두려워하지 않는 듯 엄금 엄금 제 갈 길을 간다. 주차장으로부터 대략 3km, 산성 남문을 지난다. 본래부터 그랬을까? 남문 사이로는 늘 물이 흐른다. 입암산성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송군비 장군이 몽골 침..
흑산도 산행(마리재-큰재-칠락봉-샘골)
흑산도 산행(마리재-큰재-칠락봉-샘골)
2021.05.12섬은 어찌 보면 해저의 산맥이 물 밖으로 높이 치솟은 것이라 하겠다. 바다 가운데 점점이 떠 있는 자그마한 섬들은 더욱 그러해서 섬 자체가 커다란 산 덩어리로 보이기 일쑤다. 논 한 뙈기 없는 흑산도도 그렇더라. 섬을 한 바퀴 돌며 새들을 보자니 길게 늘어선 산줄기와 바위 연봉들이 자꾸만 눈길을 잡아당긴다. 산이 말을 걸어온다. 니가 안 올라오고 배겨? 하여 오른다. 해가 중천에 떠 있다. 바다 위로 뜨는 해를 보겠다는 간밤의 다짐은 헛된 것이 되고 말았다. 산줄기가 장엄하게 도열하여 시선을 압도한다. 석위가 무리 지어 자라고.. 신안비비추인가, 흑산도비비추인가? 육지 것보다 잎사귀가 둥글고 두툼하며 윤기가 반지르하다. 꽃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댄다. 저 짝에서 출발해 왔다. 눈 아래 비리 마을,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