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지리산 만복대
지리산 만복대
2020.08.26징한 장마를 보내고 정령치에서 만복대 구간을 여러 차례 찾았다. 섣부른 탓이었을까? 만복대는 매번 비구름 속에 자신을 감추고 나를 박대했다. 내 지리산에 크게 잘못한 게 없다 생각했는데 그리 살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러던 차, 드디어.. 내가 만복대에 처음 이른 것은 5년 전이었다. 인생 반백년을 돌아본답시고 나섰던 백두대간 북상길, 때는 2월이었으니 지리산은 아직 겨울이었다. 짙은 운무에 싸인 만복대에서 20여분 개기고 버텨 반야봉을 영접하고 다시 길을 나섰더랬다. 얼마나 추웠던지, 지금 생각해도 뼈가 시리다. 이 날 이후 만복대는 내 머릿속 중요한 곳에 영롱하게 각인되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세월 참 속절 없이 빠르다. 나의 대간 북상길은 충북과 경북 어간 문경 부근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일까?..
구름 좋은 날, 계룡산에서..
구름 좋은 날, 계룡산에서..
2020.07.23딸내집에서 하룻밤, 차를 끌고 서울에 올라온 게 얼마만인지 참 낯설고 두렵다. 행여나 차 막힐세라 이른 새벽 탈출을 감행한다. 5시 반, 이른 새벽이라 하나 날은 이미 밝았고 차들은 벌써부터 꼬리를 문다. 나는 지금 계룡산으로 간다. 기나긴 장마 통에 잠시 볕이 난다 하니 그 짬에 산도 오르고 예정된 회의도 치를 요량이다. 동학사 입구, 대략 두 시간가량이 소요되었다. 네댓 시간 정도의 짬을 확보했다. 어느 길로 올라 어떤 능선을 탈 것인가? 주릉을 조망할 수 있는 황적봉을 골랐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찾아 대강의 산행 계획을 머릿속에 입력하고 들머리를 잡아 본격적인 산행에 나선다. 김밥 두 줄, 생수 1리터를 챙겼다. 20여분쯤 올랐을까, 바위가 나타나고 조망이 터진다. 구름 좋고 바람 시원하다. 용용하..
무등산 심춘산행
무등산 심춘산행
2020.04.224월도 하순으로 달린다. 신록은 산을 뒤덮고.. 봄을 찾아 떠나온 산행, 나는 무등산을 오른다. 나비도 보고, 새도 보고, 나도 보고.. 날 선 봄바람이 징하게도 불었다. 평일이지만 사람이 없지 않다. 수많은 산길 속에서 호젓한 산길을 골라 잡는다. 늘 그렇듯 능선에 오르자 산길이 편해진다. 휘파람 나오는 오솔길.. 서석대에 이르기까지 몇 번의 오르막이 반복되지만 전반적으로 개비에 손 넣고 할랑할랑 걷는 길이다. 철쭉 능선을 지나.. 오래된 무덤에 핀 제비꽃(호제비꽃) 볕 쬐는 멧팔랑나비 가을밤 풀벌레 소리를 내며 우는 '숲새'를 만난다. 중봉 가는 길, 고도가 높아지고 높아져 제법 고산 분위기가 난다. 중봉 아래 이르니 거짓말처럼 애호랑나비가 보인다. 내 너를 보러 예까지 왔노라. 애호랑나비의 존재를 ..
못 다 오른 바래봉
못 다 오른 바래봉
2020.01.31겨우내 눈 기다리다 눈 빠지겄다. 아직 희망을 버린 것은 아니나 내 사는 곳에 눈이 안 오니 눈 내린 곳으로 내가 간다. 아뿔싸 늦잠을 자고 말았네. 6시로 맞촤논 알람 소리는 듣도 못했다. 팔랑 마을, 나는 오늘 바래봉으로 간다. 사진기 밧데리를 빼놓고 왔다. 사람으로 치면 심장이라.. 하나가 더 있을 텐데.. 차속을 발칵 뒤집어도 없다. 공연한 시간낭비, 8시 다 되어간다. 정읍까지 시간 반 잡고 12시까지는 내려와야 한다. 산을 오른다. 적설량이 많지는 않지만 좋다. 귀한 눈 아닌가. 너무 서댔나? 오늘따라 숨이 좀 가쁘다 싶었다. 그렇다고 속도를 늦출 수는 없었는데.. 어느 순간 아 이게 통증이구나 하는 자각이.. 가슴 복판이 답답하고 아프다.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가만히 생각해 본다. 이런..
계방산 해맞이 산행
계방산 해맞이 산행
2020.01.02새해 해 구경, 결과는 눈 구경. 이 짝으로 가야 한다 싶었는데 잘못짚었다. 그래도 뭐 귀한 눈 봤으니, 해는 또 뜨는 것이고.. 먼 길 달려 좋은 술 먹고 새벽길 헤쳐 산을 오른다. 운두령, 무엇인가 어둠 속에서 칼바람과 맞서고 있다. 거대한 바람개비, 소리가 쎄다. 분분이 눈발이 날린다. 정상까지 십리길, 날이 밝아온다. 온통 하얗다. 눈이 부시게.. 정상, 정시에 도착했다. 국립공원 직원들이 같이 찍자 한다. 강원일보에 실린다네. 나는 사진을 찍었다. 해를 기다린다. 거짓말같이 운무가 걷히길 기대한다. 바람이 씽씽, 걷힐 듯 말 듯, 애를 태운다. 창졸간에 해가 나왔다 사라진다. 입맛이나 다시라는 듯.. 얼마나 기다렸을까? 에잇! 해고 지랄이고.. 얼어버린 몸이 나무토막 같다. 삐그덕 삐그덕.. 감..
지리산 달맞이
지리산 달맞이
2019.09.15달 보러 간다. 이북 출신 빨치산들의 비원이 서린 달뜨기 능선, 나에게는 그 위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겠다는 약간 오래된 바람이 있다. 달뜨기 능선 위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자면 '조개골과 쑥밭재 언저리에 마련한 비트'를 찾아야 되겠는데 그럴 수는 없겠고 쑥밭재 부근 혹은 쑥밭재 지나 두류봉에 이르는 능선 어디 조망 터지는 곳에 시간 맞춰 당도하는 것이 일이 되겠다. 열사흗날 뜨는 달을 봤더니 정동쪽에서 남쪽으로 한참 치우쳐 동남쪽에서 떠올랐다. 하니 쑥밭재 부근이면 달은 과연 달뜨기 능선 위로 떠오르겠더라. 이짝 길은 하봉, 영랑대 지나 한번 내려와 본 적이 있으나 짙은 운무 속에서 길을 여러 차례 놓치기도 하였고 청이당터니 쑥밭재니 하는 곳을 확인하지 못한 채 지나쳐 자신감이 다소 떨어진다. 이래저래..
묘봉에 올라 대간을 본다.
묘봉에 올라 대간을 본다.
2019.08.2730년 되야가는 고향 친구들 모임 1박 2일. 올해는 속리산 인근으로.. 농민회 일 핑계 삼아 밤 늦게사 합류했으나 술도 안 묵고 맨숭맨숭. 인자들 늙어가는가? 밤새 푸고 아침에 또 푸던 술 푸대들이 찔끔찔끔 몸을 사린다. 하긴 아예 입에도 안대는 내가 젤로 문제다. 나는 지금 금주중, 섣달 초하룻날에나 다시 잇대기로 작정해 뒀다. 한번 작정하면 천하 없어도 안 먹는지 아는지라 술 먹으라 권하는 놈도 없다. 월남뽕 치다 순식간에 판이 커져 판돈이 100을 넘으니 돈 다 돌려주고 판을 아예 접어버린다. 진짜 늙었군.. 재미 하나도 없다. 이렇듯 밤을 보내고 아침이 밝았으나 할 일 없기는 매 한 가지.. 또랑 가상 나비나 새 둘러볼 요량으로 사진기 챙겨 들고 할랑할랑 길을 나선다. 그러고 보니 몽골 다녀와서..
덕유산 토옥동 골짝
덕유산 토옥동 골짝
2019.06.23어디로 튈까를 고민하다 덕유산 향적봉 대피소를 예약해 두었다. 올해 새로 심은 잔디밭 하나 시기를 놓쳐 풀 매느라 한 이틀 적잖이 고생했다. 논 둘러보고 스프링클러 옮겨주고 나니 시간이 많이 흘러부렀다. 산 아래 도착하니 오후 다섯 시, 올라갈 수 없다네.. 사정이 통하지 않는다. 멀리서 왔다 하니 다 멀리서 온단다. 이래 저래 고민하다 장계로 가서 방을 잡았다. 계남 사는 동갑내 불러내 술을 붓는다. 돼야지 꼬랑지가 아주 맛나다. 역시나 술은 지역 토종과 묵어야 된다. 밤이 이슥해 술자리 파할 무렵 던져놓은 미끼를 물고 사람 하나 달려왔다. 술벵이 추가되었을 뿐.. 토옥동 골짝에서 서봉으로, 주릉을 타다 월성재에서 다시 토옥동 골짝으로 내려오는 길을 잡았다. 숲이 짙어 어두컴컴, 서늘하기 짝이 없다. ..
봄날의 백두대간(늘재-버리미기재) 2
봄날의 백두대간(늘재-버리미기재) 2
2019.05.18가던 길 못다 가고 도중(고모치)에 내려온 곳은 괴산군 청천면, 나를 데리러 오는 청주 미원 사람 "지금 청천면 소재진데 40분 더 가야 한다" 말한다. 면 내에서 40분을 달린단 말인가? 알고 보니 청천면이 무지하게 크더라. 증평군보다 크다던가, 맞먹는다던가.. 집으로 가자는 것 마다하고 면 소재지 근처 여관에 짐을 풀었다. 오늘은 뱃구레 든든한 산행을 해야지. 평소 먹지 않는 아침을 먹는다. 올갱이국 좋다. 김밥도 세줄 사고.. 출발이 사뭇 좋다. 다시 고모치로 오르는 길, 영업을 중단한 거대한 석산을 지난다. 포크레인이야 덤프차야 각종 중장비들이 방치된 체 고철이 돼가고 있다. 그래도 얼추 복구는 마친 듯 바위를 파먹던 산이 그리 흉하게 보이지 않는다. 꽃도 보고 새도 보며 할랑할랑 산길을 간다. ..
봄날의 백두대간(늘재-버리미기재) 1
봄날의 백두대간(늘재-버리미기재) 1
2019.04.25요사이 제법 빡세게 살았다. 겨우내 제껴두었던 일 이제야 손에 잡은 것이니 자초한 어려움이다. 그 일이 얼추 마무리되어간다. 거듭되는 술자리로 몸은 무거운데 가슴속 응어리는 활시위처럼 팽팽하다. 때는 바야흐로 꽃 피고 새 우는 따스한 봄날, 백두대간이 나를 부른다. 그래 씻고 와야지.. 가야겠다.. 길을 잡아 나선다. 늦은 밤 홀로 기울인 막걸리 석잔에 출발이 늦어졌다. 고속도로 타고 오르던 길, 화서IC에서 내린다. 낯익은 지명들이 나타난다. 길은 화령 지나 비재, 갈령으로.. 백두대간 속리산 구간을 왼짝에 두고 늘재로 이어진다. 녹색으로 표시된 도로가 화령에서부터 이어진다 보면 무방하다. 늘재에 차를 두고 청화산을 오르는 것이 이번 대간길의 들머리가 되겠다. 늘재에는 성황당이 있다. 그럴듯하게 개축해..
백두대간 9차 : 속리산 구간
백두대간 9차 : 속리산 구간
2019.03.06농성장의 밤이 깊어간다. 노회한 군의원의 정치적 야심과 술수에 농락당한 농민수당, 일시적 곡절에 불과하지만 치욕스럽다. 농민의 이름으로 되갚아주마. 뼈에 사무치도록 후회막급하게 만들어주겠노라 다짐한다. 간만에 맞는 고요한 밤, 엊그제 다녀온 백두대간을 되돌아본다. 대간 가는 길, 북접 농민군 최후 항전지 북실전투 현장에 조성된 동학 농민혁명 기념공원을 지난다. 렌즈가 없다. 차 속을 발칵 뒤집어도 없다. 사진기만 가져오고 렌즈를 놓고 왔다. 렌즈 찾는다고 정신이 사나워져 술 한잔 올리지 못앴다. 옥천, 보은을 경유하여 오후 네시경 비재를 출발, 지나온 봉황산을 돌아본다. 나는 오늘 피앗재 산장까지 간다. 피앗재 산장은 대간을 뛰던 형이 추풍령에서부터 한달음에 달려와 잠을 청한 곳이다. 바람처럼 비호처럼 ..
백두대간 8차 : 상주 구간(큰재~비재) 1박2일
백두대간 8차 : 상주 구간(큰재~비재) 1박2일
2019.02.03인생 반백년을 맞아 야심 차게 내디뎠던 백두대간 종주, 달포 가량 나름 쾌속 질주하다 상주 구간에 이르러 4년 동안이나 발이 묶여 있었다. 산줄기가 약해져 그 옛날부터 온통 신라 땅이었던, 오늘날에도 겨우 면단위나 가르는 곳.. 나는 여기를 백두대간의 수랑이라 일컬으며 절반도 못 가고 중단된 내 결심의 박약함을 은폐해왔다. 그간 상주 땅을 벗어나기 위한 구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박 2일 혹은 2박 3일, 때로는 하루를 잡아 쏜살같이 통과해버릴까 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더랬다. 그러는 사이 4년이라는 세월이 덧없이 지나가 버렸다. 그러니 계획과 구상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대간길을 개척했던 초기 답사자들에게 상주 구간은 결코 쉬운 곳이 아니었을 것이다. 별다른 특징없는 나지막한 칙칙한 잡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