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호남정맥 오봉산(염암재~운암 삼거리)
호남정맥 오봉산(염암재~운암 삼거리)
2021.04.303월 24일, 아직 겨울 기운이 남아 있었다. 언제 적인지 기억은 아스라한데 고작 한 달 살짝 넘어섰을 뿐이다. 영원할 것 같은 기억도 실상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제때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은 산화되고 파편만이 어지럽게 날아다니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사진이 있으니 얼기설기 기억이 복원된다. 염암재에 차를 두고 정맥에 안긴다. 염암재를 여태 영암재로 알고 있었다. 독수리 아직 우리 하늘에 머물고 진달래, 생강나무 꽃봉오리 터뜨리는 가운데 동고비는 둥지 새단장 견적을 뽑고 있었다. 생기발랄한 봄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운암댐으로 흘러드는 섬진강 물줄기 너머 장대한 지리 주릉이 버티고 있다. 산 참 많다. 아무래도 우리는 산악 민족이다. 꽃다지, 작업장 언덕길 아니고 산길 무덤가에 무리 지어 피었다. 이..
함양 백운산
함양 백운산
2021.04.19산에 든다. 꽃이 지고 있었다. 다른 꽃이 또 피겄지, 그렇게 봄이 가겄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산길은 고역을 동반한다. 그래야 알 수 있지, 가슴이 빠개지도록 사무치는 강산을.. 어느덧 능선에 서면, 가슴 열리고 걸음 가벼워지고.. 피어나던 진달래가 된서리를 맞고 시날고날.. 산을 오르면서 수거한 다종의 탄피들, 우리 산하에는 얼마나 많은 탄피들이 쌓여 있는 걸까? 썩어 거름도 못 되는 것들.. GRENADE, 수류탄이라 쓰인 거라네. 저기 멀리 지리 주릉, 골골이 쌓인 사연 가슴마다 맺힌 원한들을 어찌 다 풀 것인가? 백운산 상봉에 흐르던 노 투사의 뜨거운 눈물이 산과 들을 적신다. 미제를 몰아내고 통일을 이뤄내자고.. 보고 또 봐도 자꾸만 또 보게 된다. 멧돼지가 잠자리를 마련할 만한 자리. 여..
호남정맥 치마산(불재~염암고개)
호남정맥 치마산(불재~염암고개)
2021.03.10본래 명절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올 설은 참으로 별 재미없게 지나갔다. 코로나를 핑계로 두 딸은 오지 않았고 아들 녀석과 단출하게 차례상을 차렸더랬다. 그렇게 설을 보내고 아들 녀석을 꼬드겨 한나절만 타기로 하고 호남정맥으로 갔다. 어느새 한 달이 되어간다. 정맥을 좀 더 잇고 싸잡아 기록을 남기고자 했으나 영 틈을 내기가 어렵다. 지금이라도 기록하지 않으면 잊힌 산행이 되기 십상이겠다. 기억을 더듬어 보는디.. 불재 고갯마루는 좌우로 몹시 어수선하다. 사람 손을 많이 탔다. 걸음을 서둘러 잠시 오르니 약간의 조망이 터진다. 시작은 언제가 지나온 길 돌아보는 것부터.. 고래 뿔은 어디로 갔을까? 가야 할 길을 가늠한다. 저기까지만 가면 되겠다. 치마산이다. 들어보지 못한 산 이름, 봉우리에 올라가서야 "..
지리산 천왕봉
지리산 천왕봉
2021.03.04강원도에 폭설, 우리 동네는 폭우.. 강원도에 가고 싶었지만 이제 늙었다. 지리산에는 눈이 내렸겠지? 아직 동트지 않았으나 신새벽이라 하기에는 늦은 시간, 지리산에 안긴다. 물소리 요란한 백무동, 봄기운 완연하다. 어제 내린 비로 여기저기 생수가 터져 사방팔방 물이 흐른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길은 거슬러 오른다. 그란디 내려올 때 보니 물이 길을 열고 길은 물 따라 흐르더라. 그때그때 다르더라. 1,300~1,400m 사이에서 상고대가 나타난다. 눈은 내리지 않았다. 행전까지 챙겼는데.. 라면 끓여 배를 채운다. 아무도 없다, 명색이 장터목인데.. 가는 날이 장날이랬는데 오늘은 아닌갑다. 짙은 운무만이 오락가락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제석봉 오르는 길, 일순 운무가 걷히고 파란 하늘에 태양이 빛난다. 바..
호남정맥 경각산(슬치~불재)
호남정맥 경각산(슬치~불재)
2021.02.10얼마만인가, 석 달? 호남정맥에 다시 안긴다. 한 번 멀어진 발길 다시 잇기가 이리 어려워서야.. 하여 쇠뿔은 단 김에 빼라 했던 모양이다. 슬치는 임실 관촌에 속하며, 호남정맥이 한없이 몸을 낮춘 구간이다. 마을을 통과하는 탓에 사람들의 간섭이 심하여 능선길이 위태롭게 이어진다. 사람의 손을 탄 곳일수록 가시덩굴에 잡목이 우거져 길을 잘못 들거나 통과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겨울이라 다행이긴 하나 마을과 그 뒷산을 통과하는 문제가 마음에 걸려 있던 차에 슬치에서 실치재(혹은 뒷재)에 이르는 약 2km쯤 되는 구간을 잠시 짬을 내 미리 걸었다. 낮은 지역이라선지 산들이 모두 납작 엎드려 드넓은 구릉지대로 보인다. 멀리 모악산은 분명한 데 왼쪽 산을 알아볼 수 없다. 위치로 보아서는 경각산일 터인데 산 ..
삼정산에서 지리를 보다.
삼정산에서 지리를 보다.
2021.01.28운봉 지나 살래 가는 길 인월 못 미쳐 개울 바닥에 넓게 엎드린 붉은 반석, 피바위. 왜구와 얽힌 이성계 이야기 전해지는 곳, 비가 내린다. 멋진 배경, 아마도 삼봉산인 듯.. 살래 중기 마을 모처, 숯불에 고기 올려놓고 술잔을 기울인다. 쩌 산은? 아마도 삼정산.. 이른 아침 눈 앞에 펼쳐지는 지리 주릉을 본다. 며칠을 봄인 듯 비가 내렸어도 천왕봉은 눈 세상. 아침나절 숙취로 모대기다 점심 무렵에야 주섬주섬, 그냥 갈 수 있을까? 이토록 잡아당기는데.. 산이 잡아끄는 힘은 강력했다. 돌아서지 못하고 다시 돌아섰다. 삼정산으로 간다. 영원사 가는 길 따라 오르다 이쯤 됐다 싶은 곳에 차를 세우고 산으로 든다. 용코로 차를 세웠다. 거기가 바로 상무주암으로 가는 길목이더라. 산길 중간쯤에서 만난 약수터,..
시산제
시산제
2021.01.191월 17일 오늘은 시산제, 산으로 간다. 그 시절 산으로 간 사람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숱한 영령.. 만나 뵐 수 있을까? 오전 8시 백무동 주차장, 시간 반을 달려 딱 맞춰 왔다. 날이 몹시 차다. 장갑 속 손가락이 따락따락 아리다. 산으로 든다. 두터운 얼음짱에 갇혀 다소곳해진 한신계곡, 속삭이듯 재잘대며 흘러간다. 삐걱대던 몸이 산에 적응해간다. 걸음에 탄력이 붙는다. 눈이 많아지는가 싶더니 상고대가 나타나고 본격적인 깔크막이 시작되었다. 옷을 벗었다 입었다, 모자를 썼다 벗었다 하며 체온을 조절한다. 겨울 산에서는 땀을 흘리지 않는 것이 좋다. 탄성과 한숨이 교차하는 고빗사위, 타박타박 묵묵히 산을 오르는 사람들. 이쯤 되면 산길은 수행 길이 된다. 저기만 지나면.. 따스한 햇살에 휩싸인 잔돌..
바래봉에서 지리를 보다.
바래봉에서 지리를 보다.
2021.01.10바래봉을 오른다. 지난겨울 오르다 작파했던 바로 그 길, 이번엔 뜨는 해 말고 지는 해를 보자는 것이다. 팔랑 마을에서 바래봉 오르는 길은 매우 수월하다. 팔랑치에 오르면 지리 주릉과 서북 능선이 한눈에 잡힌다. 구름짱 두터운 곳, 그곳에 천왕이 있다. 운봉고원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동학 농민군의 비원이 서린.. 저 멀리 고리봉, 그 너머 만복대가 살짝 전라도에서는 반야가 주봉이다. 구상나무 조림지를 지나.. 바래봉을 오른다. 살래 사람 살래 보고 있겄지. 험악허네.. 살래 사람들 살기 팍팍허겄다. 나는 저 산만 보면 피가 끓는다. 눈 쌓인 저 산만 보면 지금도 울리는 빨치산 소리 내 가슴에 살아 들린다. 해 넘어가고.. 내려왔다.
방장산 해맞이 심설 산행
방장산 해맞이 심설 산행
2021.01.02해가 바뀐다.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네, 내일이면.. 정말로 해가 바뀔까? 가서 봐야지, 그래야 알지. 해맞이 짐을 꾸린다. 이리 할까 저리 할까, 이 궁리 저 궁리. 생각이란 놈이 온종일 오락가락 열두 번도 더 바뀐다. 나이가 든 게지, 길을 나서기가 쉽지 않다. 해 질 녘이 돼서야 짐이 꾸려졌다. 빠진 것 없어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 차 안에서 또 한참을 뭉기적대다 이미 어둠이 내리고서야 산을 오른다. 장갑 한 짝이 온 데 간 데 없다. 목장갑 두 개 겹으로 끼고 간다. 모처럼 눈이 쓸만하게 내렸다. 능선엔 칼바람, 눈보라 거침없이 혹은 고요히, 오락가락.. 산이 온통 하얗다. 불 없이도 능히 오를 만하다. 사진 찍을 때 말고는 불이 필요 없다. 불 없이 오르는 하얀 산의 정취를 표현할 길이 ..
지리에서 智異를 보다.
지리에서 智異를 보다.
2020.12.26산에 안긴다. 산에 드는 건 산을 더 잘 보고자 함이라.. 여긴 어디 나는 누구? ㅋㅋ 좀 더 일찍 올랐어야 했다. 해님이 벌써 중천에 계시니.. 하늘로 올라간 마을 농평 불무장등, 황장산 너머 구름 모자 쓴 세석, 남부 능선 거친 산길을 간다. 지리 주릉이 한눈에 잡히고.. 우리의 후손들이 태어난 후에 전설처럼 우리를 이야기하리라. 반야봉, 토끼봉, 명선봉, 형제봉.. 세석 너머 천왕은 구름 속에 계시고.. 그때는 찢겨 피 묻은 깃발이나마 해방의 강산 위에 나부끼리라~ 아~아 오늘도 우리는 간다 선배들의 핏자욱 서린 이 길을.. 지리 주릉은 구름의 거처 천왕은 끝내 자태를 드러내지 않았다. 노래 부르며 서로를 일으키면서.. 신비주의에 휩싸인 대반야 끝내 안 보여 주더라. 왕시루봉 남해로 가는 섬진강 불..
호남정맥 사자봉~슬치
호남정맥 사자봉~슬치
2020.11.29다시 맞은 주말, 나의 발길은 호남정맥으로 향한다. 산으로 가기에 앞서 진안 부귀에 있는 녹두장군의 큰따님 전옥례 여사의 묘소에 들렀다. 한 번은 헛걸음, 좀 더 정밀한 탐색 끝에 다시 찾았다. 장군의 큰따님은 동학농민혁명이 농민군의 패전으로 막을 내린 뒤 사람을 피해 산으로 도피했다. 산길만 골라 내달린 발걸음은 마이산에 와서야 겨우 멎었다. 그이의 나이 15세, 김옥련이라 이름을 바꾸고 금당사 공양주로 숨어 지내다 진안 사람과 결혼하여 일가를 이뤘으나 자신의 출신 내력에 대해서는 평생을 함구하고 살았다. 생의 말년에 이르러서야 손자를 통해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이의 묘소는 모래재 아래 호남정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이가 걸었을 태인(산외면)에서 마이산에 이르는 산길은 상당..
호남정맥 모래재 ~ 만덕산
호남정맥 모래재 ~ 만덕산
2020.11.222주 만에 다시 호남정맥, 금남호남정맥을 지나 모래재에서 그 첫발을 내딛는다. 호남정맥의 실질적인 뿌랑구라 할 장안산에서부터 치면 예까지 오는데 무려 4년이 걸렸다. 앞으로 또 얼마나 세월이 흘러야 백운산에 가 닿게 될지 알 수 없다. 좌우튼 가보는 게다. 시작했으니 끝을 볼 날이 있겄제, 암만.. 어제, 그제 내린 비로 산은 훨씬 황량해졌다. 이제는 겨울이니 눈이 내려야 겨울산의 면모를 갖추게 되겠다. 올해는 눈이 많이 내렸으면 좋겠는데 날이 갈수록 예측할 수 없는 날씨가 문제다. 조망 없는 숲길, 커다란 묘지 하나 있어 앞이 트였다. 마이산이 삐쭉, 모래재에서 내려서는 도로가 산을 크게 휘감아 돈다. 조망 없는 산길을 걷고 걸어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귀한 조망 하나 얻는다. 도로 하나 구불구불 모래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