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성인봉 지나 나리분지로
성인봉 지나 나리분지로
2015.08.09포항을 출발한 우리누리호는 저동항으로 들어갔다. 기록을 더듬어 햇수를 헤아리니 5년 만이다. 첫 방문에서 받았던 감동의 기억이 너무도 선연하여 사뭇 가슴이 뛴다. 이번에도 성인봉을 오른 후 나리분지로 내려가 하룻밤을 보내는 것으로 울릉도 일정을 시작한다. 점심을 먹는 사이 애, 어른, 아녀자 할 것 없이 성인봉 산행에 함께 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서둘러 점심을 해결하고 KBS 중계소 위쪽 산행 기점으로 간다. 택시비 1만 원. 3시 반, 시원스레 펼쳐진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산행을 시작한다. 비좁은 협곡에 자리 잡은 도동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폭염에 신음하는 본토와 달리 울릉도는 섭씨 30도를 넘지 않는다. 산에 드니 서늘한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오고 숲 바닥을 차지한 양치식물이 발산하는 청량..
7월의 방장산
7월의 방장산
2015.07.29장마에, 태풍에, 몹시 어수선한 날들이 지나고 있다. 오랫만에 보는 파란 하늘과 작열하는 태양, 진정한 여름이 도래하였다. 도저히 일할만한 날씨가 아니다. 이런 날은 산으로 가야 한다. 방장산이 나를 부른다. 때로는 아스라히 하늘을 찌를듯 솟아 있는 방장산이 오늘은 손에 잡힐듯 만만해보인다. 방장산은 고창과 장성이 능선을 갈라 도계를 이루고 한짝 귀텡이는 정읍에 속한다. 방장산은 고창 들녘에서 바라볼 때라야 웅장한 산세를 제대로 드러낸다. 특히 고창읍내에서 바라보는 방장산은 듬직하기가 이를데 없어 고창의 진산으로 손색이 없다. 오늘은 용추계곡에서 올라 봉수대 봉우리 찍고 정상(연지봉) 거쳐 고창고개(파릿재)길를 타고 다시 용추계곡으로 내려오기로 한다. 과거 차 귀하고 양고살재가 포장되기 전에 많이 애용하..
4월 한라산, 영실에서 어리목까지..
4월 한라산, 영실에서 어리목까지..
2015.04.13한라산을 오르는 가장 손쉬운 길, 영실에서 어리목까지 가벼운 산행을 한다. 이 길로는 백록담을 오르지 못한다. 대신 위풍당당한 한라산 화구벽을 바라볼 수 있으며, 드넓은 고산 평원인 선작지왓의 이국적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길지 않은 시간 큰 힘 들이지 않고 한라산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이 길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싶다. 4월의 한라산은 겨울은 갔으되 봄은 아직 이른 매우 어정쩡한 상태에 있었다. 군데군데 잔설이 남아 있어 겨울이 완전히 물러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봄꽃이 앞다투어 피지도 않는다. 등산로 초입 소나무 숲에는 곧게 뻗은 아름드리 적송이 들어차 있다. 재선충 유입으로 제주도 소나무 숲이 일대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고사목 제거 등 방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행히 ..
갑오년 농민군 최후 혈전을 지켜본 장흥 사자산
갑오년 농민군 최후 혈전을 지켜본 장흥 사자산
2015.03.26장흥에 가면 올라가보고 싶은 산이 많다. 때론 웅장하고, 때론 아지자기한 산들이 사방에 둘러쳐져 있다. 산세도 산세려니와 그 이름들이.. 요샛말로 한이름한다. 억불산, 천관산, 사자산, 부용산, 제암산..하나같이 깊은 사연 한자락씩은 품고 있을 듯한, 그러면서도 위엄있는 이름들이다. 어디로 가야 석대들판을 제대로 내려다볼 수 있을까? 사자산을 오른다. 늘 마음에 품었던 일인데 막상 오르려니 출발지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산자락을 파헤쳐 무슨 주택단지를 짓는 대규모 토목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탓이다. 로하스타운이란가 무이란가.. 참치 통조림이 연상된다. 마주 보는 억불산에는 우드랜드, 이름들 참 격조 있다. 시간을 다소 허비했지만 좌우튼 길을 찾아 산에 올랐다. 지금 내가 선 자리는 두봉, 사자머리에 해당한..
7차 : 추풍령-큰재, 백두대간 지루박 구간
7차 : 추풍령-큰재, 백두대간 지루박 구간
2015.03.14영동에서 닭을 많이 키우는 수호 형이 부탁한 청미가 준비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청미는 덜 익은 푸른 나락이 도정 과정에서 색체선별기에 의해 걸러진 것이다. 일종의 싸레기라 할 수 있겠는데 좀 다르다. 보조 닭 모이로 쓰려나 보다. 좌우튼 잘 되얐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더라고 청미 2톤가량을 싣고 영동으로 달려간다. 노래가 절로 나온다. 팔팔에 곰배팔 구구 닭 모시.. 3월 12일, 수호 형 댁에서 자고 이른 아침 추풍령으로.. 추풍령에 관한 이러저러한 얘기를 듣는다. 수호 형은 돌아가고 금세 금산에 올랐다. 꽃샘바람이 매섭게 몰아친다. 추풍령면 소재지를 내려다본다. 추풍령면은 옛 황금면을 91년도 개명해서 오늘에 이른다. 과거 번성했던 추풍령을 그려본다. 그 옛날 일본과 조선을 왕래하는 사신이 추풍령..
6차 세째날 : 백두대간의 굴욕, 추풍령은 어디에..
6차 세째날 : 백두대간의 굴욕, 추풍령은 어디에..
2015.03.11이제 가성산, 눌의산 넘어 추풍령까지 가면 이번 판 대간 일정이 마무리되겠다. 괘방령과 추풍령이 몹시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둘 다 매우 낮은 고개들이고 가성산, 눌의산 역시 지금껏 지나온 산들에 비하면 야트막하고 순하게 생겼다. 거리 또한 짧아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한다. 대보름달만 아직 남아 텅 빈 고갯길을 휘영청 밝히고 있다. 밤중에 들었다 새벽에 나왔으니 괘방령이 어찌 생겼는지는 알 길이 없다. 두 길에 실린 세월과 그로 인해 덧쌓였을 이러저러한 무게를 빼면 지방도, 국도 지나가는 산모탱이 돌아가면 나오는 그냥 그런 고갯길일 따름이다. 학교 갔다 돌아오는 조무래기들은 영판 귀할 것이고 이따금 딸네집 가는 할매들이나 보따리 끼고 앉아 시내버스 기다릴 그런 길. 좌우튼 나는 다시 길을 나선다. 산길..
6차 둘째날 : 대보름 달빛 안고 괘방령으로.,
6차 둘째날 : 대보름 달빛 안고 괘방령으로.,
2015.03.10참으로 잘 잤다. 대략 9시간을 죽은듯이.. 네시 반, 라면 하나 끓여 엊지녁 얻어놓은 식은밥 말아 후루룩 먹어치운다. 주섬주섬 채비하고 길을 나서니 다섯시 반. 산 너머 하늘이 왜이리 밝나 했더니 서짝 하늘에 달 걸린 모양이다. 한시간은 넘게 걸어야 다시 능선에 올라설 수 있다. 어두운 산길, 올빼미가 운다. 어지간하면 등골이 오싹할 소린데.. 무척 반갑다. 지난번 남원 교룡산성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서도 등 뒤에서 올빼미가 울었더랬다. 시멘트 포장길이 끝나고 약수터에서 물 받고 나니 동짝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언제나처럼 마음이 급해지지만 차분히 오를 일이다. 아뿔싸! 해가 떠오른다. 삼도봉 100미터 전방.. 그래도 과히 늦지 않았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오늘은 혼비백산하지 않는 차분한 산..
6차 첫째날 : 대덕산 넘어 삼도봉 가는 길, 백두대간에 바람이 분다.
6차 첫째날 : 대덕산 넘어 삼도봉 가는 길, 백두대간에 바람이 분다.
2015.03.093월 3일 밤늦게 도착한 소사고개 아래 하늘땅 정보화마을, 정보화마을 운영위원장 정도화 농민과 접선한다. 든든한 빽을 둔 덕에 공짜라 좋긴 한데 겨우내 한 번도 손님이 들지 않았다는 방은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았다. 보일러에 문제가 있는 듯.. 방바닥을 지나는 호스에 공기가 들어간 모양이다. 데워진 물이 기름보일러와 전기보일러 사이에서만 맴도느라 방바닥을 데우지 못한다. 그저 미적지근한 정도. 보일러실을 몇 번 들락거렸으나 해결하지 못했다. 내리던 눈이 그치고 보름을 앞둔 달은 휘영청 밝은데 산줄기를 훑어내리는 매서운 바람이 밤을 새워 불었다. 새벽녘에야 눈을 붙여 늦잠을 자고 말았다. 서둘러 소사고개 탑선 슈퍼로 간다.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다. 길가에 세우고 앞바퀴 위에 열쇠를 올려두고 길을 나선다..
5차 둘째날 : 덕유산 지나 삼봉산, 삿갓골재에서 소사고개까지
5차 둘째날 : 덕유산 지나 삼봉산, 삿갓골재에서 소사고개까지
2015.03.03풍력발전기 쌩쌩 돌아가는 삿갓골재 대피소, 산장의 밤은 따뜻했다. 거의 찜질방 수준이다. 진짜로.. 산에 온 것인지 술집에 온 것인지 모를 정도로 취해버린 일군의 산객들로 인한 다소간의 소란을 빼고는 모든 것이 쾌적했다. 무룡산에서 일출을 볼 요량으로 6시가 살짝 넘어 길을 나선다. 아직 어두운 시각 오늘은 다시 혼자다.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 잔잔하고 푸근한 날씨 구름이 많이 낀다 했다. 장수덕유에서 남덕유를 거쳐 삿갓봉으로 이어지는 대간의 기세가 날카롭다. 지나온 길과 달리 무룡산에 이르는 구간에서 대간은 부드럽고 넉넉해진다. 그래 그리하여 덕유산이로구나.. 삿갓봉에서 뻗어내린 두툼한 산줄기가 호랭이 등껍닥같다. 대간과 정맥 사이에 낀 장수 방면의 자잘한 산들이 낮게 깔려 있다. 무룡산에서 일출을 본..
백두대간 5차 첫째날 : 덕유주릉(육십령~삿갓골재)을 밟다.
백두대간 5차 첫째날 : 덕유주릉(육십령~삿갓골재)을 밟다.
2015.03.01생사를 넘나드는 병상을 박차고 나선 형은 2008년 5월 대간 종주를 시작하여 3박 4일 만에 육십령에 도달하였고, 일주일 후 한걸음에 덕유산을 벗어나는 괴력을 발휘했다. 나는 날수로 닷새, 기간으로는 한 달이 걸렸고 이제 이틀간 덕유 주릉을 밟아 무풍(소사고개)까지 갈 계획을 세웠다. 형은 대간 종주 이후 온 나라 산줄기를 부리나케 답파하고 마라톤에 심취하는가 싶더니 홀연 세상을 뜨고 말았다. 철인 같은 모습으로 변모하여 제일 오래 살겠다 싶었는데 순서고 예의고 싹 다 무시해버리고 형제 간들 중에 가장 먼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작년 8월이었다. 내 인생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형이다. 형은 거종이고 나는 대종이다. 지나오는 대간길에서 행여나 형의 흔적이 있나 더듬거렸으나 부질없는 일...
4차 : 남원 지나 함양, 지리산 그늘에서 벗어나다.
4차 : 남원 지나 함양, 지리산 그늘에서 벗어나다.
2015.02.23새벽 네시 집을 나서 복성이재 도착하니 다섯시 반, 집에서 점점 멀어진다. 오늘은 육십령까지 간다. 정월 초이틀, 쪽달조차 없는 밤하늘엔 별만 가득. 쏟아지는 별빛을 담을 재간 없어 한참을 바라만 보다 산길로 접어든다. 산길에 접어들자 무덤이 보이고 으스스한 기운이 일어난다. 이런때는 그저 걷는 수밖에.. 소나무 숲길을 지나 매봉에 다다르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대간 양쪽 장닭들 앞다퉈 새벽을 알리니 아영고원 불빛 너머 여명이 비치기 시작한다. 봉화산 정상에서 일출을 맞기 위해 부지런히 걷는다. 늘 그렇지만 일출시각을 알고 가면서도 밝아오는 동짝 하늘에 마음이 과도하게 앞선다. 너무 서둘렀을까? 오른짝 장딴지가 뜨끔하더니 통증이 온다. 대간길에 나선 이래 가장 길게 잡은 구간인데.. 백운산 깔끄막 오..
3차 : 갑오년 농민군의 한이 서린 백두대간 남원구간(여원재-복성이재)
3차 : 갑오년 농민군의 한이 서린 백두대간 남원구간(여원재-복성이재)
2015.02.144시 반에 집을 나서 복성이재에 차를 두고 여원재에 도착하니 6시 반. 남원 보절 사는 농민회원의 도움을 받았다. 일주일만에 다시 찾은 여원재 고갯마루, 조각달이 중천에 떠 있다. 여원재에서 고남산에 이르는 구간은 120년전 운봉을 공략하려던 농민군과 운봉의 박봉양 민보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격전장이다. 가장 큰 전투는 방아치에서 벌어졌다. 고남산으로 가파르게 치고 오르기 전의 나지막한 구릉형의 산지가 이어지는 지역이다. 김개남포의 농민군은 이 전투에서 패해 예기가 꺾이고 영남지방으로의 진출이 좌절되었다. 당시 박봉양 민보군은 영남지역 민관의 지원을 받아 막강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구간은 해 뜨기 전 어둠 속에서 빠르게 통과하였다. 그날의 농민항쟁을 기억하는 양 동짝 하늘이 핏빛으로 밝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