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호남정맥에 내딛는 첫발
호남정맥에 내딛는 첫발
2016.02.05작년 이맘때 야심차게 시작했던 백두대간 종주는 상주 구간에 이르러 흐지부지되어 오늘까지 다시 잇지 못하고 있다. 대간 줄기가 약해져 좌우로 모두가 신라땅인 상주 구간, 산줄기가 약해지니 내 마음도 약해진 듯.. 언젠가 다시 잇겠다 마음만 먹다가 수렁에 빠진 것처럼 덧없이 1년이 지나버리고 말았다. 산줄기 흐릿한 상주 구간을 날 잡아 단번에 돌파해버리겠다는 계획만 야심차다. 이런 차에 또 무슨 호남정맥이냐 말하지 마시라. 그저 첫발만 떼어 놓았을 따름이다. 언제 틈이 나면 순창새재 부근에서 갈라지는 영산기맥 출발지점도 다녀와야겠다. 그리하여 대간과 정맥, 기맥을 형편에 따라 힘조절해가며 동시다발적으로다가 공략해보는 것으로.. 나는 도저히 사진발이 안받아 장수 청년이 대신 섰다. 호남정맥의 출발점은 북상하는..
명불허전 소백산 칼바람
명불허전 소백산 칼바람
2016.02.02내륙 깊숙이 자리한 소백산, 난생처음 품에 안기고 돌아왔다. 산행 전날 어의곡 입구에서 바라보는 소백산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했다. 일출은 따로 보지 않기로 하고 새벽 6시 반경 길을 잡아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게 걸어 오른다. 비로봉 2.2km 지점을 통과한다. 날이 제법 밝았다. 딱 절반 정도 올라왔다. 오름길은 가파르지 않고 꾸준히 고도를 올린다. 능선 너머로 붉은 태양이 나타났다. 이제 주릉이 얼마 남지 않았다. 광선총으로 찢어놓은 듯한 하늘 틈새가 이채롭다. 기대했던 상고대는 보이지 않는다. 이 친구 행복해 보인다. 사진은 현장의 진실을 다는 알려주지 않는다. 국망봉 방면으로 향하는 사람들, 장쾌한 능선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비로봉을 눈 앞에 둔 주릉에 서니 지독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
선운산 경수봉
선운산 경수봉
2016.01.26밤 늦게까지 쏟아지던 눈이 그치고 아침해가 쨍 하고 솟았다. 이른 아침임에도 짚시랑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하고 햇살을 머금어 무거워진 눈이 비닐 하우스를 묵직하게 쓸어 내리며 눈보라를 일으킨다. 공음, 무장 쪽 비닐 하우스들이 꽤나 찌그러졌다는 소식이 들린다.눈은 정읍이 더 왔다는데 왜 그짝 하우스들이 무너지는지 모를 노릇이다. 이래저래 농민들 시름은 가실 날이 없다. 그나 눈 왔는데 뭐 하나? 산이나 가야지..길바닥 눈은 아직 녹지 않았다. 바퀴에 채워놓은 체인은 아직 풀지 않아도 되겠다. 부안면 사는 선홍이를 싣고 선운사로 간다. 아직 그 누구도 가지 않았을 경수봉을 오른다. 경수봉은 선운사를 휘감아 도는 산군들 중 최고봉으로 인냇강 너머 소요산과 자웅을 겨룬다. 하지만 산세도 밋밋하고 오르는데 ..
눈 덮인 하얀 방장산을 가로질러 온천탕으로..
눈 덮인 하얀 방장산을 가로질러 온천탕으로..
2016.01.21거리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탓에 겨울은 추워야 맛이라는 말이 쉽지 않다. 하지만 봄같은 겨울을 나면서 가슴 한구석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 농민들이다. 그런데 요사이 늦추위가 몰아닥쳤다. 늙발에 뭇 앵긴다더니 다소 맵다. 내린 눈에 한파가 겹쳐 보기 드물게 도로가 얼어붙었다. 길 얼어붙어 다른 일 하기 어렵다 핑계대고 하얗게 손짓하는 방장산으로 차를 몰아간다. 방장산은 그야말로 하얀 세상이다. 언제나 그렇듯 아무도 밟지 않은 새 눈을 밟는 느낌이 남다르다. 눈에 묻혀 사라진 길을 열고.. 용추폭포에서 출발해서 상봉으로 통하는 직등길을 톺아오른다. 고도를 올릴수록 눈은 깊어지고, 산길은 가파르지만 몸은 오히려 가벼워진다. 방장산 능선은 장쾌하다. 장쾌한만큼 조망이 좋다. 날이 좋으면 멀리는 지..
고부 두승산
고부 두승산
2016.01.14호남 서해안, 그중에서도 고창과 정읍 접경에 집중적으로 눈이 내렸다. 정읍 가는 길, 두승산이 눈길을 잡아끌며 이리 오라 손짓한다. 두승산은 길을 나서는 나를 가장 멀리까지 바래 주고, 돌아오는 길 가장 먼저 달려 나와 반기는 그런 산이다. 돌아오기 어려운 길을 나선 농민 혁명군들에게도 그리 했을 것이다. 오전 내내 눈발이 오락가락하다 해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푹한 날씨 탓에 봄눈 녹 듯 눈이 스러지는 가운데 두승산이 홀로 아련하게 빛난다. 정읍에서 일을 마치자마자 두승산으로 달려간다. 시간이 많지 않다. 눈이 제법 왔다. 정갱이까지 푹푹 빠진다. 묘하게 산을 오를수록 눈이 적어진다. 나는 아무래도 돌탑 쌓는 마음을 알아낼 길이 없다. 그래도 분위기는 좋다. 엉성한 돌탑들이지만 경건하면서 정갈한..
선운산 낙조대에서..
선운산 낙조대에서..
2016.01.05겨울이면 눈이 펑펑 내려 수북이 쌓이고 세상이 온통 꽁꽁 얼어붙기도 해야 제격인데.. 자연의 순환에 기댄 소박한 소망마저 겉으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세상살이.. 거리에서, 하늘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참으로 고단하고 치욕스러운 세월이다. 새해 대둔산 해맞이 산행 이후 팔다리에 뻗치는 기운을 억제하기가 쉽지 않다. 쑤시는 좀을 참다못해 선운산 낙조대를 찾았다. 천마봉 오르는 길 계곡 으슥한 곳에서 밤톨만 한 굴뚝새 한 마리 발길을 붙잡는다. 가는 겨울과 오는 봄 사이 주로 출몰하는 녀석인데 제 세상이라도 만난 듯 몹시 촐랑거리며 부산을 떤다. 반나마 오르다 전망 좋은 바위에서 숨을 고른다. 마애 미륵불과 도솔암 내원궁이 내려다보인다. 도솔암 내원궁에는 보물급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어 지장보살을 ..
대둔산 동학 농민군 최후 항전지
대둔산 동학 농민군 최후 항전지
2016.01.02"갑오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 되면 못 가리.." 새해를 어디서 맞을 것인가를 두고 여러 생각이 많았는데 발길은 결국 대둔산으로 향했다. 일본군 기록에 남아 있는 마지막 농민군 토벌, 대둔산에는 우금티에서의 통한의 패배 이후에도 3개월여에 걸쳐 항쟁을 이어간 동학농민혁명군의 항전지가 있다. 그런데 왜놈들이 전하는 기록에야 마지막일 수 있겠지만 어찌 이를 두고 마지막이라 하겠는가? 농민군의 항쟁은 을미의병으로, 정미의병으로.. 이름도 없이 성도 없이 싸우다 산과 들에서 죽고 논밭에서 썩어 흙이 되고 거름이 되어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어떤 이는 "갑오년에 쏜 총알이 아직도 날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1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는 말들..
어제 본 인왕산, 안산의 봉화
어제 본 인왕산, 안산의 봉화
2015.12.0712월 6일, 2차 총궐기를 마친 직후의 실천 없는 농성장을 지키는 일은 다소 따분하다. 해서 나선 길, 창의문에서 사직단까지 인왕산 성곽길을 걸었다. 한시간 남짓..인왕산은 청와대 뒤가 아니라 옆에 있다. 청와대 뒷산은 북악산. 그러니 이명박이 인왕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불렀다는 얘기는 맞지 않다. 이명박은 그저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북악산으로 오르는 산길이 어찌 생겨먹었는지 알 수 없기에 이명박이가 실제로 산에 올랐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아마도 거짓일 것이다. 낮은 산이지만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도 제법 산 맛이 난다. 서울시내 복판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열심히 사진기를 눌러댔는데 아뿔싸.. 메모리카드가 없다. 노트북에 박아두고 그냥 왔..
추석날 방장산에서 하룻밤
추석날 방장산에서 하룻밤
2015.09.29차례 모시고 한숨 늘어지게 자고 방장산으로 또 자러 간다. 막둥이는 낮잠 자는 사이 친구 찾아 강남으로 토껴부렀다. 장성 넘어가는 양고살재 고갯마루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포장된 지 20년 살짝 넘은 고갯길은 방장산 종주 출발지 혹은 기착지로 애용된다. 양고살재는 누루하치 사위 양고리를 죽였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인근 솔재와 더불어 남도로 넘어가는 고갯길이 양골로 나 있어서 양고살재라 한다고도 한다. 어찌 되얐든 길을 떠나 보는디.. 아직 능선에도 오르지 못했는데 벌써 해가 넘어간다. 억새봉에서 넘어가는 해를 보겠다는 계획은 폴쎄 틀어져부렀다. 출발이 너무 늦었다. 억새봉 해는 이미 지고 없고 여명만 붉게 남았다. 고창읍내는 이미 어두운 밤, 모양성 성곽을 밝히는 조명이 길다랗게 늘어져 있다. 휘..
이름다운 길, 행남 해안산책로
이름다운 길, 행남 해안산책로
2015.08.14독도에 다녀온 우리 일행은 숙소에서 잠시 쉬면서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야 했다. 숙소가 저동 여객터미널과 매우 가깝다. 다행히 심한 멀미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계단만 나타나면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성인봉에 다녀온 후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다.그렇다 한들 숙소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점심 요기를 마친 우리는 행남 해안산책로를 향해 다시 길을 잡아 나선다. 쉬엄쉬엄 도동까지 걸어가 저녁을 먹고 다시 넘어올 심산이다. 저동항 방파제와 한몸이 되어버린 촛대바위를 바라보며 걷다 방파제에 서니 성인봉 산줄기가 단박에 배경이 되어준다. 아래의 콘크리트굴을 통과하면 곧바로 행남 해안산책로 절경이 펼쳐진다. 길 이름은 중간쯤에 위치한 행남등대에서 따온 모양이다. 힘들..
저동에서 섬목까지 울릉도를 걷다.
저동에서 섬목까지 울릉도를 걷다.
2015.08.13울릉도 2박3일은 다소 짧은 감이 있다. 어느새 돌아가야 할 날이 밝아온다. 오늘은 일행과 떨어져 저동에서 섬목까지 걷기로 한다. 일주도로가 아직 없는 울릉도, 걷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구간이다.이 구간에는 내수전에서 석포에 이르는 옛길이 포함되어 있다. 어제 행남등대 부근에서 설핏 스쳐지난 청띠제비나비가 눈에 삼삼하다. 산과 마을을 지나며 할랑할랑 걷다보면 청띠제비나비는 물론 울릉범부전나비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가 있다. 울릉도의 아침은 고창보다 20분이 빠르다. 내수전 일출전망대를 목표로 길을 나섰으나 거리타산이 잘못되어 내수전마을 입구 바닷가에서 해를 맞았다. 해는 죽도와 북저바위 사이에서 떠올랐다. 언제나 올라올까 싶게 동짝 하늘만 붉히더니 떠오르자마자 하늘로 담박질친다. 저동항 방파..
우리땅 독도
우리땅 독도
2015.08.12성인봉 넘어 나리분지, 산마을 식당에서 하루를 묵었다. 5년 전과 똑같은 여정이지만 세월은 흘렀고 많은 것이 변했다. 음식 맛도 술맛도, 손님 대접도 예전만 못하다. 나리분지의 밤은 싱겁게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8시 반에 저동항에서 출발하는 독도 여정을 잡아놓았다. 아침 일찍 서둘러 다시 저동으로 돌아간다. 섬목에서 저동에 이르는 구간은 찻길이 없는 탓에 섬을 거의 한 바퀴 에돌아 1시간여를 달려야 한다. 택시비 10만 원, 성수기인 탓에 더 비싼 값을 치러야 했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백 리.. 쾌속선을 타고도 1시간 반가량이 소요된다. 너울성 파도가 일렁인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배는 흡사 바이킹처럼 요동치며 독도로 향한다. 이 정도 바람이면 독도에 접안하기 어려울 것이라 말했지만 일정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