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장거리 이동은 불가한 일, 한가위 달마중은 방장산에서..
이리갈까 저리갈까 고민하다 내린 결론. 
차례 음식 노나묵고, 얼근해진 음복 술에 한소금 시들고 일어나 성묘..
여기까지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한 한가위 공식 일정. 
성묘 이후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다들 친구 찾아 강남으로..
나 홀로 산으로 간다. 

산은 방장산인데 어디로 갈 것인가..
장성 갈재(노령)에서 올라 써레봉 기슭에서 밤을 보내고 능선을 타 넘어 양고살재로 내려가는 것으로 길을 잡는다.
시간상으로도 그렇고 달마중하기엔 써레봉이 마춤이라 여겨졌다. 
4시 50분 갈재를 출발한다. 갈재에서 써레봉까지는 대략 한시간 하고도 20분, 땀을 동이로 쏟았다. 
날이 흐리다. 여차하면 비라도 올 듯..

방장산 주릉 초입 써레봉 부근은 바위가 많아 조망이 잘 터진다.
6시 30분, 문득 보름달을 보았다. 구름에 잠겨 있다 나온 듯 이미 꽤 높은 하늘에 있다. 
휘영청 밝은 달은 아니지만 소원을 빈다. 우리민족 자주와 평화의 길에서 만사형통하길..

그런데 이 써레봉을 요새 사람들 '쓰리봉'이라 부른다. 
나는 써레봉이라 들어왔다. 방장산 아랫 동네 신림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
보다 분명히 말하자면 세상 사람들 사이에 방장산 봉우리들은 거의가 제대로 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더랬다.  
그러던 것이 표시목에 쓰리봉이라 박히고 이정표도 그걸 따라 표시되니 사람들 입에 그리 오르내리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쓰리봉'은 대체 어디에서 온 이름인가?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이 혀 짧은 소리로 써레봉을 그리 불렀다는 기사가 보인다. 
당시 방장산이 인민군 소굴이었다는 믿기 어려운 설명도 달려 있다.
방장산은 덩치는 작지 않지만 홑산이어서 골이 깊지 않은 탓에 유격전 근거지로 적당하지 않다. 

좀 더 알아볼 일이지만 근거 빈약한 '카더라' 통신으로 판단된다.  
미군 기원설이 사실이라면 민망하고 우세스러울 따름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그 유래를 짐작하기 어려운 허무맹랑한 이름이다.  
바로잡을 일이다. 
쓰리봉 아니고 써레봉이다.   

써레봉 아래 나무 계단에 잠자리를 마련하고 나니 밤중이 되고 말았다. 
딸들이 장만해준 추석 음식에 잘 담근 복분자술을 곁들이니 아니 좋을 수가 없다.
나는 잠이 쏟아지는데 자던 바람은 일어나 살랑살랑 얼굴을 간지럽힌다. 
어찌나 잠이 쏟아지던지 더워서 한번, 추워서 한번 단 두번 깨고 아침까지 내쳐 자부렀다. 새벽녘에는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아침이 밝았다. 달도 없고 해도 없다.
나 사는 동네, 잠 깨어오는 가을 들판에 옅은 땅안개가 깔렸다.
곰소만과 변산반도, 큼지막한 동림 저수지가 눈 아래 보인다.

병풍산과 불태산 너머 그 사이로 무등산이 버티어 선 곳, 내 이런 데서 잤다. 
아늑하지 아니한가.. 정말 잘 잤다.

봉우리를 넘고 넘어 능선을 탄다.
능선 곳곳 구철초 흐드러졌다.

멀지 않은 곳에 두승산, 그리고 호남평야

가을빛이 살짝 엿보인다.

정맥의 망루, 봉수대 조망


수리취

정상, 봉우리 이름이 없다.
저짝 끝이 써레봉

벽오봉 전경

벽오봉은 고창 서쪽의 방장산 주봉

갈미봉, 구불구불 양고살재


다 왔다. 병길 형님이 마중나왔다. 
방장산 아래 왕림 지나, 천원 지나 갈재 거슬러 원점회귀..
가을 장마가 지려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철물점 들러 논괭이, 논호맹이 장만하여 논으로.. 수삼년만에 개쳤다.
입에서 단내가 폴폴, 머리에선 짐이 콩콩 난다.
마를까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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