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호남정맥
호남정맥 추령봉(개운치~추령)
호남정맥 추령봉(개운치~추령)
2021.12.2612월 25일, 녹두장군 일행이 입암산성으로 스며들었다. 그들은 한양으로 잠입하고자 했으나 사흘 뒤 피노리에서 붙잡히는 몸이 되었다. 농민군 본대가 벌인 태인에서의 마지막 전투 이후 불과 닷새, 장군의 잠행은 너무도 짧았다. 펄펄 눈이 내린다. 날이 몹시 차다. 예기치 않았던 눈, 실컷 맞고 싶었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고민하다가.. 호남정맥 개운치, 고갯마루엔 찬바람만 쌩쌩 매섭게 불고 있었다. 눈발이 날리지 않는다. 미리 제목까지 달아놓고 달려왔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호남정맥엔 눈이 내리지 않았다. 방장산, 혹은 선운사로 갔어야 했다. 초입은 대숲, 대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산에 안긴다. 조릿대 숲을 지나 만난 오래된 전호의 흔적, 딱 있을 만한 자리마다 여지없이 나타나던.. 그날의 흔적. 지..
호남정맥 고당산(구절재~개운치)
호남정맥 고당산(구절재~개운치)
2021.12.13동트기 전 산에 올라 조망 좋은 봉우리에서 해를 맞이하고 다시 날이 어둑할 때까지 산을 탔더랬다. 그리 산을 타면 하루 산행거리가 30여 km를 넘나들었다. 불과 5~6년 전의 일이었는데 이제는 새벽에 길을 나서는 것조차 쉽지 않다. 언젠가 죽령에서 만나 소백산을 타 넘기로 약속한 적이 있었다. "어디만큼 오셨어요?" "워매, 나 아직 이불 속인데.." 어찌나 미안헸던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오랜만에 새벽 산행을 해보자 맘먹고 잠이 들었으나 엎치락뒤치락 꼼지락거리다 보니 한낮이 되어간다. 구절재를 향해 길을 달린다. 칠보 소재지 허름한 뒷골목에서 보석 같은 식당을 발견했다. 언제고 칠보에 갈 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이 집에 다시 갈 것이다. 구절재에 당도하니 정오, 짐을 꾸려 출발한다. 오늘은 속도 위..
호남정맥 왕자산(소리개재~구절재)
호남정맥 왕자산(소리개재~구절재)
2021.11.302021년 11월 28일 11시 45분, 산길을 이어간다. 간밤 음악가 선생들과 마신 술이 과했다. 숙취 해소를 위한 산행, 오늘은 순창 사람 김 씨의 도움으로 차를 미리 목적지에 갖다 두고 시작한다. 몸을 낮출 대로 낮춰 도로를 건넌 정맥은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다시 산으로 오른다. 정맥은 한동안 밭과 밭 사이, 무덤 사이, 자그만 솔밭 사이, 가시밭길 돌무덤을 헤쳐간다. 으슥한 곳을 골라 앞뒤 개완허게 비워내니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직박구리, 개똥지빠귀 소리 사이로 낯선 새소리가 들린다. 오~ 좋은 징조로다. 한참을 갈등하며 조물딱 거리다 가져온 망원렌즈를 꺼낸다. 어랍쇼 검은이마직박구리, 이 녀석들을 예서 만날 줄이야 몇 년을 보고 싶어 모대기던 녀석인데 올해만 세 번째, 한 번 보고 나면 자꾸 ..
호남정맥 묵방산(운암 삼거리~소리개재)
호남정맥 묵방산(운암 삼거리~소리개재)
2021.11.22늦가을인가 초겨울인가, 호남정맥에 다시 안기다. 진달래 꽃망울 터뜨리던 초봄이었으니 고닥새 반년이 훌쩍 지나버렸네. 날이 갈수락 먼 길 단번에 가기 어렵다. 나이는 자시고 몸은 불고, 별 수 있나 구간을 쪼개 조금씩 나아가야지. 그러다 다리에 힘 받으면 쭉 빼기도 하고.. 묵방산이 538m, 이번 구간은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 차 달리는 소리 허다히 들릴 것이다. 산이 사람 사는 세상과 가까워지면 필연코 깎이고 뭉개져 상처투성이가 된다. 하여 사람의 간섭이 심한 마을 주변과 밭 가상은 가시덤불과 잡초가 우거져 길은 걸핏 사라지기 일쑤, 집중하지 않으면 곤욕을 치르는 수가 있다. 수풀 무성한 여름이 아니어서 다행인 것이다. 운암 삼거리, 들머리부터 수월치 않다. 흔히 도깨비풀이라 불리는 미국가막사..
호남정맥 오봉산(염암재~운암 삼거리)
호남정맥 오봉산(염암재~운암 삼거리)
2021.04.303월 24일, 아직 겨울 기운이 남아 있었다. 언제 적인지 기억은 아스라한데 고작 한 달 살짝 넘어섰을 뿐이다. 영원할 것 같은 기억도 실상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제때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은 산화되고 파편만이 어지럽게 날아다니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사진이 있으니 얼기설기 기억이 복원된다. 염암재에 차를 두고 정맥에 안긴다. 염암재를 여태 영암재로 알고 있었다. 독수리 아직 우리 하늘에 머물고 진달래, 생강나무 꽃봉오리 터뜨리는 가운데 동고비는 둥지 새단장 견적을 뽑고 있었다. 생기발랄한 봄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운암댐으로 흘러드는 섬진강 물줄기 너머 장대한 지리 주릉이 버티고 있다. 산 참 많다. 아무래도 우리는 산악 민족이다. 꽃다지, 작업장 언덕길 아니고 산길 무덤가에 무리 지어 피었다. 이..
호남정맥 치마산(불재~염암고개)
호남정맥 치마산(불재~염암고개)
2021.03.10본래 명절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올 설은 참으로 별 재미없게 지나갔다. 코로나를 핑계로 두 딸은 오지 않았고 아들 녀석과 단출하게 차례상을 차렸더랬다. 그렇게 설을 보내고 아들 녀석을 꼬드겨 한나절만 타기로 하고 호남정맥으로 갔다. 어느새 한 달이 되어간다. 정맥을 좀 더 잇고 싸잡아 기록을 남기고자 했으나 영 틈을 내기가 어렵다. 지금이라도 기록하지 않으면 잊힌 산행이 되기 십상이겠다. 기억을 더듬어 보는디.. 불재 고갯마루는 좌우로 몹시 어수선하다. 사람 손을 많이 탔다. 걸음을 서둘러 잠시 오르니 약간의 조망이 터진다. 시작은 언제가 지나온 길 돌아보는 것부터.. 고래 뿔은 어디로 갔을까? 가야 할 길을 가늠한다. 저기까지만 가면 되겠다. 치마산이다. 들어보지 못한 산 이름, 봉우리에 올라가서야 "..
호남정맥 경각산(슬치~불재)
호남정맥 경각산(슬치~불재)
2021.02.10얼마만인가, 석 달? 호남정맥에 다시 안긴다. 한 번 멀어진 발길 다시 잇기가 이리 어려워서야.. 하여 쇠뿔은 단 김에 빼라 했던 모양이다. 슬치는 임실 관촌에 속하며, 호남정맥이 한없이 몸을 낮춘 구간이다. 마을을 통과하는 탓에 사람들의 간섭이 심하여 능선길이 위태롭게 이어진다. 사람의 손을 탄 곳일수록 가시덩굴에 잡목이 우거져 길을 잘못 들거나 통과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겨울이라 다행이긴 하나 마을과 그 뒷산을 통과하는 문제가 마음에 걸려 있던 차에 슬치에서 실치재(혹은 뒷재)에 이르는 약 2km쯤 되는 구간을 잠시 짬을 내 미리 걸었다. 낮은 지역이라선지 산들이 모두 납작 엎드려 드넓은 구릉지대로 보인다. 멀리 모악산은 분명한 데 왼쪽 산을 알아볼 수 없다. 위치로 보아서는 경각산일 터인데 산 ..
호남정맥 사자봉~슬치
호남정맥 사자봉~슬치
2020.11.29다시 맞은 주말, 나의 발길은 호남정맥으로 향한다. 산으로 가기에 앞서 진안 부귀에 있는 녹두장군의 큰따님 전옥례 여사의 묘소에 들렀다. 한 번은 헛걸음, 좀 더 정밀한 탐색 끝에 다시 찾았다. 장군의 큰따님은 동학농민혁명이 농민군의 패전으로 막을 내린 뒤 사람을 피해 산으로 도피했다. 산길만 골라 내달린 발걸음은 마이산에 와서야 겨우 멎었다. 그이의 나이 15세, 김옥련이라 이름을 바꾸고 금당사 공양주로 숨어 지내다 진안 사람과 결혼하여 일가를 이뤘으나 자신의 출신 내력에 대해서는 평생을 함구하고 살았다. 생의 말년에 이르러서야 손자를 통해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이의 묘소는 모래재 아래 호남정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이가 걸었을 태인(산외면)에서 마이산에 이르는 산길은 상당..
호남정맥 모래재 ~ 만덕산
호남정맥 모래재 ~ 만덕산
2020.11.222주 만에 다시 호남정맥, 금남호남정맥을 지나 모래재에서 그 첫발을 내딛는다. 호남정맥의 실질적인 뿌랑구라 할 장안산에서부터 치면 예까지 오는데 무려 4년이 걸렸다. 앞으로 또 얼마나 세월이 흘러야 백운산에 가 닿게 될지 알 수 없다. 좌우튼 가보는 게다. 시작했으니 끝을 볼 날이 있겄제, 암만.. 어제, 그제 내린 비로 산은 훨씬 황량해졌다. 이제는 겨울이니 눈이 내려야 겨울산의 면모를 갖추게 되겠다. 올해는 눈이 많이 내렸으면 좋겠는데 날이 갈수록 예측할 수 없는 날씨가 문제다. 조망 없는 숲길, 커다란 묘지 하나 있어 앞이 트였다. 마이산이 삐쭉, 모래재에서 내려서는 도로가 산을 크게 휘감아 돈다. 조망 없는 산길을 걷고 걸어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귀한 조망 하나 얻는다. 도로 하나 구불구불 모래재를..
금남호남정맥 주화산, 3정맥 분기점
금남호남정맥 주화산, 3정맥 분기점
2020.11.11가죽재에서 모래재까지 대략 시오리 길, 나른한 오후 농성장에서 잠시 몸을 빼내 짬 산행에 나선다. 껄적지근하게 남겨진 짜투리 구간을 털어내고자 함이다. 지금은 옛길이 돼버린 단풍 수려한 모래재 고갯길로 접어든다. 굽이굽이 산을 휘감아 올라 모래재 휴게소에 차 놓고 동행한 차에 옮겨 타 가죽재로.. 가죽재는 오룡재라는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더라. 16시 30분, 차는 떠나가고 나 홀로 산으로 향한다. 해가 뉘엿뉘엿, 세상 가파른 턱골봉 오름길을 헐레벌떡.. 오늘은 간만에 야간산행으로 마감하게 되겠다. 간만에 카메라를 가방에서 꺼내 들었다. 150mm로 당겨 나뭇가지 사이 지는 해를 잡는다. 당겨놓고 보니 모악산이다. 나아갈 방향.. 금남정맥에 속한 운장산이 보인다. 멀건하던 하늘이 어둠이 내리면서 갈수록 ..
낙엽 수북한 정맥길(마이산~가죽재)에서..
낙엽 수북한 정맥길(마이산~가죽재)에서..
2020.11.09일주일 만이다. 가을이 한층, 아니 이제는 겨울로 간다. 때마침 입동이라네. 이번에도 늦잠, 지난밤 혼술이 과했다. 07시 10분, 마이산 북부 주차장에 차를 두고 단풍 흐드러진 계단길을 오른다. 숫마이봉과 암마이봉 사이에서 숫마이봉 한 번 쳐다보고 암마이봉으로 향해 정맥을 이어간다. 그나 숫마이봉은 참 뭣같이 생겼다. 진안읍 방면, 새벽을 지나 아침으로.. 암마이봉 오름길은 잘 단장되어 있어 아무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 오래전 한 번 올랐었는데 통 기억이 없다. 보기와 달리 흙도 있고 나무도 있다. 암마이봉의 조망은 이 짝 저쪽 거침이 없다. 비룡대, 금당사 방면, 마치 물 빠진 다도해 분위기.. 외약짝 멀리 내동산 비룡대 너머 진안고원이 잠에서 깨어난다. 백운면 방면 암마이봉에서 내려와 본격적으..
늦가을 금남호남정맥, 신광재 ~ 마이산
늦가을 금남호남정맥, 신광재 ~ 마이산
2020.11.01농성장은 토, 일 문을 닫는다. 누가 뭐라건 그건 우리 맘이다. 이 틈에 농성장에서 엉겨 붙은 도시의 소음과 먼지와 갖은 독소를 털어내야 한다. 대간은 너무 멀고.. 이번엔 호남정맥이다. 조선팔도 천지가 산이니 갈 곳 많아 좋다. 눈을 뜨니 이미 여섯시가 넘었다. 또 늦잠이로군.. 조망 터지는 산봉우리에서 맞아야 할 아침해를 도로에서 맞는다. 마이산이 살짝 보인다. 산행을 마치고 사진을 분석하니 등빨 좋은 덕태산을 뒤로하고 성수산에서 쭉 뻗어 마이산까지 이어진 능선이 한눈에 잡힌 것이었다. 성수산과 마이산 중간 지점에 해가 있는 것이다. 얼마만인가? 2018년 10월이었다. 서구이재에서 여기 신광재까지.. 그때는 건각 수정이와 함께 했더랬다. 그러니 2년 만이로군, 고랭지 채소밭 풍경은 조금도 변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