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이야기
4월, 오름마다 봉화가 오르면..
4월, 오름마다 봉화가 오르면..
2022.04.11산으로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공항에 내린 나는 행여 해 넘어갈세라 서둘러 높은오름으로 달렸다. 해가 어디로 어찌 떨어질지 알 수 없지만 그곳이라야 지는 해를 제대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땀 식힐 겨를 없이 해가 넘어간다. 해는 한라산 오른짝 이름을 알 수 없는 오름들 너머로 고요히 사라졌다. 해 넘어간 자리 봉화가 피어올랐다. 뭇 오름들을 거느리고 묵묵히 버티고 선 한라산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오름마다 봉화가 올랐다는 그날의 투쟁, 그날의 투사들을 생각한다. 가시리, 한라산 두어 병씩 나눠 마시고 혼곤한 잠으로 빠져들었다. 뭔가 많은 꿈을 꿨으나 눈을 뜨면서 모든 것이 사라졌다. 개와 주인의 배웅 속에 길을 나선다. 나는 오늘 산으로 간다. 1100 고지 탐라각 휴게소 산악인 고상돈 ..
신축항쟁 역사기행, 장두의 길을 따라..
신축항쟁 역사기행, 장두의 길을 따라..
2021.07.18신축항쟁? 처음 들었다. 지난겨울이었네.. 아~ '이재수의 난', 고개를 주억거렸더랬다. 허나 영화 제목으로나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 아는 바가 없었다. 부끄러웠다. 내년이면 120주년이라는데.. 인터넷을 뒤져 대략의 전모를 파악하고 '변방의 우짖는 새'를 주문했다. 신축항쟁은 반제 반봉건 민중항쟁이었다. 천주교를 앞세운 제국주의 침탈과 봉건 지배세력의 늑탈에 맞선 위대한 항쟁이었던 것이다. 면면이 이어내려온 제주 민중 항쟁의 역사는 4.3으로 연결되었다. 신축 항쟁의 전모를 알아갈수록 4.3이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다른 한편 동학농민혁명과는 그 어떤 연결고리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제주의 동학당이 사포에 상륙하였다" 동학농민혁명 초기 줄포에 머무르던 왜인이 작성한 [전라고부민..
이덕구 100년 예술 동행
이덕구 100년 예술 동행
2020.12.20제주 인민유격대 이덕구 사령관 탄생 100주년, 그의 발자취를 더듬는다. 예술가들이 기획하였고, 그들과 함께 한다. 그래서 남달랐던 12월 13일 그날의 기행.. 출발은 관덕정, 47년 3.1절 발포 사건으로 4.3의 시발점이 되고 이덕구 사령관의 시신이 전시되었던 곳. 김경훈 시인의 서시와 시 낭송으로 시작한다. 이덕구 사령관! 제주 4.3의 대명사이면서도 제주 4.3의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 ... 그의 복권! 그를 이 시점에서 부활시키는 것은 ... 어둠만을 골라 딛으며 찬바람 속 이슬 잠에 오매불망 그리던 인민 세상 그 세상에 대한 염원을 다시 모으자는 것이다. 김경훈 '서시' 발췌 관덕정 김경훈 그대는 아는가 여기 관덕정 앞 광장에서의 1947년 3월을 미군정 경찰의 발포로 인한 무고한 ..
어승생악 일출과 조망
어승생악 일출과 조망
2020.12.1812월 13일, 오늘은 관덕정에서 출발하는 기행이 있다. 아침 일찍 넘어가야 하니.. 어디서 뜨는 해를 봐야 하는 생각에 오름들을 검색하던 차에 어승생악이 걸려들었다. '겨울철 일출 명소'라는 말에 혹 했다. 1,100 도로 넘어 어리목 주차장에 차를 대고 어둠이 남아 있는 산길을 오른다. 정상까지 1.3km, 잘 정비된 산길 따라 어려움 없이 걷는다. 연일 계속되는 음주로 위와 식도에 피로가 누적된 탓인지 식도가 뜨겁고 답답하게 조여 온다. 마치 폐 혹은 심장이 아픈 것처럼.. 다시 술을 참아야 할 때가 된 듯하다. 붉게 타오르나 싶더니 이내 잦아들고 만다. 날이 안 좋은 것인지 눈이 없어서인지 밋밋하더라. 한라산 너머 해 올라오기를 기다릴 수는 없겠고 올라온다 한들 뭐 그다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동광 당오름 일몰
동광 당오름 일몰
2020.12.1812월 12일, 서귀포 예래동에서 아침을 맞는다. '예래'는 고려 시대 서귀포 옛 지명, 범섬의 살기를 누르기 위해 사자를 끌어들인 것이라 한다. 호랑이에 맞서는 사자라.. 음.. 오늘은 일단 하룻밤 신세 진 경록이네 밀감 수확을 돕기로 했다. 밀감 수확도 쉽지는 않더라. 밀감나무 깊숙이 파고 들어가고, 기어 들어가고.. 밀감 값이 형편없다고.. 올해는 태풍 피해도 많이 입었는데.. 기대치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밀감 값에 밭주인 심기가 편치 않다. 세 사람이 손을 더하니 일이 일찌감치 끝났다. 혼자서는 몇 날 며칠 해야 할 일을 단숨에 해치웠다고 좋아라 한다. 모슬포로 달려가 대짜 방어 발송 예약 걸어놓고 늦은 점심을 먹었는데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 하여 찾았다. 해 넘어가는 쪽 가까운 당오름을 오른..
이덕구 산전에서
이덕구 산전에서
2020.07.107월 2일, 전북도연맹 간부수련회 4.3 유적지 답사. 제주 한경례 여성농민, 민중가수 최상돈, 김경훈 시인의 안내를 받는 호사를 누렸다. 영령들께 제를 올리고.. 시도 바쳤다. 당신의 이름은 ( 이덕구 산전에서) 당신의 이름은 쟁기다 너덜밭 일구어내며 심장에 박힌 총소리 파편들과 동지들의 배곯는 소리 골골이 묻혀있는 자리 뒤집던 당신은 70여 년 삭은 무쇠 솥 뜨겁게 불꽃 일으킨 생을 담은 피는 녹슬지 않았구려 한라를 퍼서 바람 휘몰아치는 추자도 남쪽 바다 메우고 지리를 퍼서 울렁이는 완도 바다 골 메워 한달음에 안기고 싶었던 하나의 반도 당신은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삽이다 잠들지 못해서 서러운 한으로 눈물로 남아 있으신가 붉은 땅 이랑 만든 가슴을 슥슥 긁어내 환한 하늘 아래 꽃대 올리고자 하는 당..
한라산 둘레, 법정사 동백길
한라산 둘레, 법정사 동백길
2019.11.11가자는 말 먼저 꺼낸 사람은 바쁘다 자빠지고 먹은 마음 그대로 나 혼자 간다. 겁나 싸다. 왕복 비행기 삯이 서울 가는 KTX 차비. 비상구 자리 달라해서 앉으니 무르팍이 무지하게 편하다. 석양 깃든 구름바다 헤치고 비행기 달린다. 조짐이 좋다. 사람 맛으로 술을 마신다. 밤사이 적잖이 달렸다. 나는 밀가리 것으로 속을 푼다. 수두리 보말 칼국수, 수두리가 어딘가 했더니 지명이 아니다. 곶자왈에 속고, 수두리에 속고.. 수두리나 보말이나 그것이 그것, 나의 무지를 탓할 일이다. 제주 갯 가상 사람들이야 어찌 구분하겠지만 나한테는 내나 갯고동일 따름이다. 엄밀히 하자면 수두리도 넣고 보말도 넣어 끓였다는 말이겠다.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속 풀렸으니 되얐다. 제주 토종 사람한테 좋은 곳 데려가 주시..
따라비오름의 아침
따라비오름의 아침
2019.11.09가시리에서 맞는 아침, 해 올라오기 전에 따라비오름으로 간다. 따라비오름은 억새 천국, 억새 좋을 때 잘 맞촤 왔다. 따라비오름 입구, 울타리는 그대론데 말들이 없다. 말이 사라지니 억새가 살판 났다. 붉어진 동녘, 금방이라도 해가 쑥 밀고 올라올 듯 공연히 맘이 급해진다. 시간이야 넉넉하다. 하지만 빨라지는 발걸음을 막을 수 없다. 정상에 올라 5분여, 해가 올라온다. 따라비오름에 아침이 밝았다. 천지사방이 급격히 밝아진다. 한라산이 우람하다. 마치 거인의 뒷모습.. 따라비오름 능선 너머 저주파 소음 웅장한 풍력 발전기를 죄다 뽑아냈다. 뽀샵은 마술사.. 광활한 중산간, 조천, 구좌 방면 오름들도 일제히 아침을 맞는다. 따라비오름은 굼부리가 세개, 복잡한 지형만큼 오밀조밀한 아름다움이 있다. 중심부에 ..
오름왕국에서 하룻밤을..
오름왕국에서 하룻밤을..
2019.06.13바굼지오름과 모슬포 일대를 흘러 다니다 열리로 돌아왔지만 네시까지 오겠다던 집주인은 감감무소식이다. 한숨 자고 일어나 배낭에 꾸려온 화산도를 꺼내 읽는다. 화산도 10권, 얼마 남지 않았던지 금세 다 읽고 말았다. ".... 동족상잔의 제주도 출병에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이방근이 산중 게릴라들을 조직적으로 섬에서 탈출시킬 것을 암중모색하는 가운데, 제주도 출병을 앞둔 여수 주둔 14 연대 봉기 소식이 전해진다. 화산도 10권은 그렇게 끝났다. 다시 살풋 잠이 들려는 찰나 집주인이 돌아왔다. 집주인이 곧 차주인이다. 주인을 돌려세워 집을 나선다. 제주에서의 마지막 밤을 위하여.. 목적지는 '높은오름', 꽤 멀다.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마지막 밤을 위하여.. 네비 따라 찾아온 높은오름, 차는 이내..
단산(바굼지오름)
단산(바굼지오름)
2019.06.11은일이를 만나 그가 부어준 술에 취하고 말았다. 은일이는 제주와 나를 오늘처럼 긴밀하게 이어준 은인이다. 비록 건강을 잃어 몸이 많이 상했지만 정신은 여전히 펄펄 끓고 있더라. 좋은 술이었던지 숙취가 없다. 제주 유랑 이틀째, 오늘은 어디로 가야 하나.. 오후 세시까지 돌아오기로 하고 차를 빌렸다. 새를 보겠다는 생각에 알뜨르 비행장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산방산 부근에 이르러 생각한다. 그래 산방산으로 가자. 그란디 산방산은 입산금지더라. 어지간하면 무시하고 가겠는데 징역을 살리겠다는 서슬 퍼런 경고판을 한 개, 두 개, 세 개 연달아 지나다 보니 마음이 약해져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그래.. 합법적으로 살아야지. 산방산 옆에 괴상한 오름이 하나 있더라. 사진 외약짝에 있는 산이다. 그래 꿩 대신 닭이..
관음사 - 산천단
관음사 - 산천단
2019.06.07화산도를 읽는 동안 몹시도 제주도에 가보고 싶었다. 5월 3일, 못자리 낙종을 마치고 그 걸음으로 길을 나섰다. 목포발 0시 30분 배를 예약해두고 2박 3일 일정을 짰다. 하루쯤은 어디가 되었건 밖에서 잘 요량으로 야영 짐을 꾸려 짊어지니 등짝이 묵직하다. 어린이날을 낀 황금연휴 탓에 타고 다닐 차량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어떻게든 되겠지.. 배에 손님이 가득하다. 먼저 눕는 게 임자라고 비좁은 객실 바닥을 차지하고 일찌감치 다리를 뻗었다. 비좁고 무덥고.. 꽤 고역이었다. 제주항에 도착하니 아침이 환하게 밝았다. 버스 편을 알아볼까 하다 마침 호객 중인 택시에 올라타고 관음사로 향한다. 관음사에서 산천단까지 걷는 것으로 제주 유랑의 첫발을 내딛는다. 산천단에서 관음사로 오를까 생각도 했..
쳇망오름
쳇망오름
2019.03.01제주에 간다. 하지만 제주에서 어디로 갈 것인지는 정하지 못했다. 이른 아침 영실에 데려다 달라 했다. 어디로 넘어갈 것인지는 올라가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내심 돈내코 방향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젯밤 꿈 속에서는 하늘다람쥐가 날아다녔다. 상쾌한 출발, 조짐이 좋다. 영실 오름길 솔 숲은 참으로 좋다. 곧게 뻗은 소나무의 기상이 하늘을 찌른다. 손톱만치나 남아 있던 술기운이 개운하게 가신다. 그런데 그만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개울 건너 샛길이 보였다. 붉은 표지기의 치명적인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오름나그네](김종철 선생의 저서)에 따르면 영실 오름길 도중에 이스렁오름으로 가는 길이 있다 했다. 틀림없이 그 길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돌아와 책을 뒤지니 "영실 등산로 접어들어 처음 만나는 맑은..
이덕구 산전
이덕구 산전
2018.01.12제주도에 가시거든 가시리에 가보시라. 가시되 교래리 산굼부리 지나 녹산로를 타고 가시라. 가시리가 나는 참 좋다. 가시리에 가야 비로소 "아.. 여기가 제주도로구나"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가시리는 참으로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제주도 어느 한 곳 예외가 있겠는가마는 그중에서도 가시리는 4.3.. 항쟁과 피의 학살 그 한복판에서 중산간 마을 중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곳이다. "제주도민을 다 죽이더라도 제주도를 확보하라" 이것은 미국의 명령(미 군사고문단장 로버츠가 경무부장 조병옥과 국방경비대 사령관 송호성을 불러놓고 지시)이었다. 당시 자행된 어마어마한 학살극의 장본인이 누구인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가시리의 올레, 올레를 전라도식으로 표현하면 '고샅'이 되겠다. 더 정확하게 ..
한라산 깊은 곳, 흙붉은오름
한라산 깊은 곳, 흙붉은오름
2017.07.16흙붉은오름, 이런 이름 좋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이름 그대로 흙이 붉은 오름. 흙이 왜 붉을까? 붉은 화산송이가 오름 등성이 지면에 노출돼 있어서 그렇다네. 송이는 뭐지? 왜 그게 그대로 노출돼 있다냐? 머릿속에서 의문이 꼬리를 문다. 송이는 화산이 폭발할 때 공중으로 높게 뿜어지며 잘게 부스러진 용암이라 보면 되겠다. 한자로는 분석(噴石)이라 하는데 噴(뿜을 분) 자를 쓴다. 그러고 보니 흙이 아니라 돌이네. 시뻘건 용암이 하늘 높이 분출되는 광경을 상상해보시라. 공기 중에 분출되다 보니 공기를 많이 머금어 가벼워지고.. 이게 지표면에 퇴적되니 식물이 뿌리를 내리기 어려운 모양이라.. 흙붉은오름은 백록담(부악) 동쪽 가장 가차이, 가장 높은 곳(표고 1,381m)에 자리한 오름이다. 성판악에서..
한라산 깊은 곳 이스렁오름
한라산 깊은 곳 이스렁오름
2016.05.28몇 해 전 5월 영실에서 윗세오름으로 가는 오름길에서 바라본 이스렁오름과 그 주변 경관을 가슴속 깊이 간직해 두었더랬다. 언젠가는 가고 말리라.. 그리고 4년이 지나 그곳을 다녀왔다. 그것도 연중 가장 바쁜 농사철 고동목에 작정하고 집을 나섰다. 선거를 마친 이후 장거리 여행을 꿈꿔왔다. 본래 흑산도를 벼르고 별렀으나 성사시키지 못했다. 한데 왕복 6만 900원 하는 비행기 삯이 나를 결단케 했다. 흑산도보다는 제주도가 심리적으로나 물질 기술적으로 훨씬 가깝다. 오후 늦게 출발해서 아침 일찍 돌아오는 짧은 2박 3일, 다녀와서 정밀하게 다시 고증해보니 몇 해 전 내 시선을 잡아 끈 오름은 쳇망오름이었다. 쳇망오름을 이스렁오름으로, 이스렁오름을 어스렁오름으로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 쳇망오름은 다시 기회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