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12월 21일, 구미란에서 입암산까지..
12월 21일, 구미란에서 입암산까지..
2023.12.22간밤 많은 눈이 내렸다. 헌데 서해안 쪽에 치우친 눈이었던 모양이다. 일감 취소하고 일찌감치 방장산에 오르려던 생각 접고 전주로 달린다. 칼잡이 양성 교육을 하기로 한 날이다. 서해안 쪽에 내린 눈은 보통 태인을 지나면서 사라지게 되는데 이번에는 모악산까지 제법 하얗다. 칼갈이 교육을 마치고 원평으로 향한다. 갑오년, 그해 음력으로는 동짓달 스무닷새였다.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이 원평에 이르러 구미란에 진을 세우고 조일 연합 토벌대를 맞아 싸웠으나 패했다. 그 싸움터였던 구미란 마을 뒷산, 뻗어 들어온 대나무가 소나무를 위협하고 있다. 농민군은 산 위에 진을 치고 일본군과 관군은 원평천 건너 벌판에 포진했다. 오전 9시부터 양측은 접전을 벌였다. 산 위의 농민군이 지형상 유리한 위치를 점했음에도 일본군과..
덕유산 2(삿갓골재~육십령)
덕유산 2(삿갓골재~육십령)
2023.10.05자다가 서너 차례 깼다. 너무 일찍 자서, 더워서, 방광 비우느라, 사람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대피소의 밤은 늘 이렇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06시 30분 비 내리는 삿갓봉,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이젠 대놓고 내린다. 다시 대피소로 피신, 꿈나라로.. 비 그치길 기다리며 그야말로 꿀잠.. 얼마나 잤을까? 대피소가 텅 비고 비가 그쳤다. 사과 하나 촘 크랙카 한 봉지로 배를 채운다. 산에서 나는 탈탈 굶고 다닌다. 08시 20분 길을 나선다. 골짝마다 몽골몽골 구름이 일어난다. 구름천지, 구름바다.. 적상산이 섬처럼 솟아 오르고, 비에 젖은 풀꽃들이 영롱한 빛을 발한다. 08시 50분 그냥 지나치려 했으나, 환갑 지나면 지나치는 걸로.. 아직은 이런 풍경을 보는 재미를 포기할 수 없다. 갈 ..
덕유산 1(향적봉~삿갓골재)
덕유산 1(향적봉~삿갓골재)
2023.10.04성묘 마치고 산으로 간다. 11년 전 갔던 길, 곤돌라 타고 설천봉, 향적봉 출발해서 삿갓골재 1박 남덕유, 장수덕유 지나 육십령까지.. 그간 먹은 나이를 생각해서 최대한 짐을 줄인다. 사진기를 내려놓았다. 산 아래서 뭉그적댄 시간이 너무 길었다. 가다가 날 저물겄다15시 30분 향적봉 오르는 길, 중첩된 산줄기 너머 나란히 솟은 남덕유와 장수덕유를 본다. 겹겹이 쌓인 산줄기, 패인 골짝마다 쌓여 있을 역사의 무게를 생각한다. 향적봉, 사람들이 많다. 잠시 숨 돌리고 중봉으로..저기 머얼리 구름을 인 반야봉 가슴에 담고,죽어 천 년 살고 있는 고사목 지나,15시 55분 중봉, 편안한 능선길 이어지는 덕유평전 굽어보며 숨을 돌린다. 산길은 어제나 갈之자.. 타박타박 그 길 위에 나의 걸음을 얹는다. 백암봉..
쌀쌀한 봄바람 타고, 가는 봄인지 오는 봄인지..
쌀쌀한 봄바람 타고, 가는 봄인지 오는 봄인지..
2023.04.11고창 바닷가 심원면은 부안에서 해리로 이어지는 지방도를 경계로 아래로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을 펼쳐놓고, 위로는 선운산 경수봉에서 개이빨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아래 골짜기를 파고든 깊숙한 산중 마을을 숨겨 놓았다. 그 길을 지나다 산이 당기는 힘에 이끌려 핸들이 자동으로 돌아갔다. 작은 골짝 적당한 지점에 차를 세우고 산길로 접어든다. 산길은 있으나마나 딱히 길이랄 것도, 그렇다고 아니랄 수도 없는 그런 길이다. 이런 길은 때론 쪼꼿하게, 때론 갈 지자로 우왕좌왕하며 걷는 맛이 좋다. 산에 접어들아마자 이미 꽃은 지고 없지만 풍성한 잎이 돋아난 변산바람꽃이 나를 반긴다. 새로운 군락지를 추가한다. 규모가 꽤 크다. 족두리풀, 노루귀가 지천이다. 내년 봄 다시 만나세~ 인사를 남기고 할랑할랑 발길을 이어간다...
눈 깊은 입암산에서..
눈 깊은 입암산에서..
2022.12.26우금티 혈전 이후 전봉준 장군은 원평, 태인 전투를 마지막으로 1년여간의 농민전쟁을 마감하고 잠행에 들어간다. 입암산 아래 천원에서 하루를 묵은 장군 일행은 산을 넘어 입암산성에 들어 하루를 머무는데 12월 25일(양력)이 그날이다. 호남벌에 큰 눈이 내렸다. 그중에서도 정읍에 눈다운 눈이 내렸으니 강풍을 동반한 폭설이었던 탓이다. 12월 24일, 나는 지금 산으로 간다. 내일 오후면 많은 눈이 녹아버리게 될 것이고, 눈길은 사람들의 발길에 어지러워질 것이기에.. 나선 김에 장군님 길앞잡이도 해드리고.. 정읍 쪽에서 바라보는 입암산은 그 자체로 거대한 성채를 연상케 한다. 굳이 성벽을 쌓지 않아도 됨직한 가파른 산세지만 산성 북문 좌우로는 아직도 기나긴 성곽이 남아 있다. 정면의 갓바위가 오늘의 목적지 ..
눈 내린 방장산에서..
눈 내린 방장산에서..
2022.12.19간밤 눈이 꽤 내렸다. 날이 말짱 개여 아닌 보살 하고 있지만 눈은 분명 새벽녘에야 내렸다. 오랜만에 내린 눈다운 눈, 눈 내린 날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산에 가는 것 말고.. 하여 나는 산으로 간다. 신기 마을 지나 산으로 드는 길, 더 이상 차가 오르지 못한다. 네 바퀴가 다 헛도니 달리 도리가 없다. 차가 자동으로 뒤로 돌면서 고랑에 빠졌으나 4륜 구동의 위력으로 가볍게 빠져나왔다. 여기서부터 걸어서 간다. 용추폭포 방면 들머리, 장담하건대 이 길을 거슬러 방장산을 오를 사람 아무도 없다. 눈 없는 낙엽길에서도 일보 전진, 이보 후퇴를 거듭하며 힘을 쏟아야 하는 급경사 직등길인 데다 접근이 쉽지 않은 탓이다. 오늘 방장산은 동서종주가 아니라 남북을 횡단하는 숫눈길이다. 눈길은 아무래도 전인미답의..
백운산, 한재에서 무수내까지..
백운산, 한재에서 무수내까지..
2022.11.21진달래 산천 11월 정기산행, 백운산으로 달린다. 방장산 너머 해 올라온다. 아침 노을 장하다. 남도대교에서 한재로 이동, 잠들어 계신 빨치산 영령들께 인사 드리고 산행에 나선다. 정원모 鄭源模 Ⅱ 2010년 11월 14일 10:00 그의 무덤가엔 쑥부쟁이 한아름 피어 있었습니... blog.naver.com 또아리봉 또는 똬리봉, 표지석에는 따리봉으로 되어 있다. 조망대에 서니 시야가 툭 터져 전남북 일대의 산들이 발 아래 펼쳐진다. 젊은이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산행에 나서신 88세 소년 빨치산 김영승 선생님과 함께.. 가지 앙상한 겨울산, 하루빨리 눈이 내려야.. 똬리봉 지나 밥봉 가는 길, 산길이 거칠어진다. 음.. 저건 뭔 똥이지? 아마도 담비, 뭘 먹었을까? 똥이 푸지고 찰져보인다. 해가 서산에 ..
지리산 전북도당 트(6개도당회의 트)를 찾아..
지리산 전북도당 트(6개도당회의 트)를 찾아..
2022.10.22진달래 산천 10월 역사 기행 뱀사골-단심폭포-큰얼음쐐기골-표고막터-전북도당 트(6개도당회의 트)-단심 폭포-뱀사골 지리산을 오른다. 지난 8월 가다 만 길.. 날이 매우 좋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 하늘은 높고 푸르며 대기 청정하고 햇살 따스하다. 뱀사골을 거슬러 오른다. 가을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열심히 내려오는 중.. 단풍 없지 않다. 명색이 가을인데..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 해님이 신다 버린 신짝인가요? 해님이 빗다 버린 면빗인가요? 다 아닌 것 같다, 달은 그냥 달이다. 큰얼음쐐기골에서 내려온 물이 뱀사골과 합수되기 직전 폭포로 떨어진다. 단심폭포, 전북 빨치산들의 비원이 서린 곳이라 했다. 지난 8월 쏟아지는 비를 뚫고 올라와 단심폭포를 바라보다 뭔가..
길섶에 피인 꽃 어찌 이리도 고우냐
길섶에 피인 꽃 어찌 이리도 고우냐
2022.10.11무등산 자락 생태 탐방원에서 밤을 보내고 원효사로 향한다. 원효사 입구, 사람과 차가 한가득. 차를 돌려 한적할 만한 곳을 찾다 '광일 목장'을 골라잡았다. 그리 멀지 않다. 김밥 두 줄, 물 두 병.. 헌데 광일 목장은 사유지,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판도 그렇고 차를 둘 곳이 마땅치 않다. 차를 돌려 마을(정곡리)과 목장 사이 임도 입구에 차를 두고 산으로 든다. 북산, 신선대 지나 원효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늦었다. 일단 갈 데까지 가보는 게다. 여기는 담양, 대나무가 임도를 넘어 산을 침범하고 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으나 대나무가 산을 점령하게 되면 숲이 망가진다. 콧노래 되는대로 흥얼거리며 인적 없는 호젓한 산길을 걷는다. 길섶에 피인 꽃 어찌 이리도 고우냐 공중의 찬..
선운사 고라당
선운사 고라당
2022.10.02나는 상당히 무던하고 둔감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러함에도 나흘간 지역을 돌며 논을 갈아엎은 후과는 상당했다. 고상하게 말하자면 정신적 피로라고나 할까? 오늘은 토요일, 선운사 고라당으로 간다. 생각하기는 이슬이 깨기 전에 돌아오려 했으나 꽤 긴 산행이 되고 말았으니, 최근 몸이 급격히 가벼워진 탓이다. 그런데 선운산은 어디에 있는 걸까? 선운사에 선운산은 없다. 선운사 일주문에는 '도솔산 선운사'라 쓰여 있으나 도솔산도 없다. 선운사 중들이나 그리 불렀던 모양이다. 최근 선운사 뒤 쪽 수리봉을 선운산이라 이름 짓고 그리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이 또한 일반적이지 않다. 선운산은 선운사를 에워싸고 있는 주릉에 망라된 봉우리와 그 골짜기들을 통칭한다 보면 되겠다. 하여 고창 사람들은 '선운사 꼬랑' 혹은..
지리산에 안기다.
지리산에 안기다.
2022.09.22지난 8월 뱀사골을 오르다 갈빗대가 부러졌다. 보름 만에 퇴원하고 다시 보름, 한 달이 지났다. 나는 다시 지리산으로 달린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불쑥 반야봉이 나타났다. 산 밖에서 반야봉을 보는 건 아마도 처음이다. 반야봉 너머 남쪽 하늘이 별스럽다. 멀리 일본으로 갔다는 태풍의 영향인 듯.. 빗점골, 이현상 사령관 비트를 찾아 오르는 사람들.. 지리산에 안긴다. 이현상 사령관(1905. 9.27~1953.9.17) 69주기, 제상이 차려지고 추모곡, 추모사, 헌시.. 조촐한 추모제가 거행되었다. 인근에 잠들어 계신 또 한 분의 전사, 남부군 81사단 문화 지도원 최순희(1924.2.10-2015.11.21). 그이에게도 추모의 예를 올리고.. 지리산哭 너덜겅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산중 오락회, 그리고..
정선 백운산, 동강할미꽃
정선 백운산, 동강할미꽃
2022.03.29밤을 도와 먼 길 달렸다. 새벽 한 시, 당도한 곳은 험악한 산중,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침을 맞으며 비로소 본다. 분명 좁은 산고랑창을 비집고 들어왔는데 준고랭지에 펼쳐진 너른 밭이 놀라웠다. 날이 겁나 쌀쌀했다, 여기는 정선.. 쥔장 앞세우고 산으로 간다. 신동읍 운치리, 굽이굽이 흘러온 동강이 용트림하며 휘돌아 나가는 곳, 수직으로 깎아지른 벼랑 너머 우뚝 솟은 백운산이 거기에 있다. 목적지에 차 갖다 두고 서둘러 산으로 든다. 강물이 발아래 놓이고 사람 사는 땅이 아스라해질 무렵 기다리던 꽃들이 간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리 아슬아슬한 절벽에 뿌리는 내리는 건지 그 마음 쉬 알 수가 없다. 갓 피어난 나어린 할미, 아침이슬을 머금고 있다. 강 건너 운치리, 저 산속을 헤집고 들어가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