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녹두꽃은 영원하리
녹두꽃은 영원하리
2023.12.1712월 15일(양력),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 본대가 후퇴를 거듭하여 전주에 이르렀다. 청주성 전투에서 패한 김개남은 논산에서 전봉준과 합류하여 함께 전주로 들어왔으나 곧 다시 헤어졌다. 손화중과 최경선은 나주를, 순천의 김인배는 전라좌수영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 이들에게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봉준은 12월 21일과 23일 원평과 태인에서 마지막 전투를 치른 후 부대를 해산하고 잠행에 들어갔으나 28일 순창 피노리에서 피체되었다. 하루 앞선 27일 손화중과 최경선이 부대를 해산했다. 이날 태인에서 피체된 김개남은 채 48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전주에서 즉결 처형되었다. 12월 31일 이방언이 이끄는 농민군이 장흥을 함락하고 부사 박헌양을 처단했다. 1월 1일 김인배가 순천에서 피..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2023.11.21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세 분의 초상을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무릇 혁명에 있어 지도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 분들은 어떻게 동학농민혁명 3대 장군의 반열에 오르고 시공을 뛰어넘어 역사 속에 살아남게 되었을까? 어찌 이 분들 뿐이겠는가? 5대장군, 10대 장군, 이름도 성도 없이 쓰러져간 무수한 농민군들을 그려본다. 스러져가는 한 시대와 더불어 기꺼이 사라짐으로 하여 새 시대를 열어젖힌 사람들, 자신의 흔적을 끊임없이 지워가며 온몸을 불살라 오히려 선명하게 역사에 각인된 혁명가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조를 잃지 않았기에 유해조차 수습할 수 없었던 헛묘의 주인들. 강경파니 온건파니, 지어 NL이니 PD니 하는 삿된 잣대와 논쟁을 거두어들일 일이다. 여기 김남주 시인의 유고시 한 편으로 필설로 어찌할 ..
아리랑 고개 넘어 다시 개벽의 시작이다.
아리랑 고개 넘어 다시 개벽의 시작이다.
2023.10.23살아남은 농민군은 의병이 되었다. 우금티 패전 이후 농민군은 일본군과 관군, 유림이 조직한 민보군에 맞서 삼천리강산을 피로 물들이며 죽어갔다. 이렇듯 광범위하게 자행된 살육전에서도 살아남은 농민군은 산적 혹은 화적떼로 변신하거나 흩어져 몸을 숨겨야 했다. 이런 그들이 항일의병 투쟁에 가담한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림이 중심이 된 초기 의병 투쟁에서 농민군은 환영받지 못했다. 춤성심을 품고 의리를 붙들려 하는 자는 몇몇 사람에 지나지 않으며 ... 그리하여 농민이 천 명, 백 명씩 무리를 이루고는 의병이라 일컬었다. 심지어 동비의 남은 무리가 그 반을 차지했다.(매천야록, 황현)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강상의 도’가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한 양반 의병장들은 농민군 출신 의병들을 색출,..
내 마음이 네 마음
내 마음이 네 마음
2023.09.19"때가 왔네 때가 왔네, 다시 못 올 때가 왔네" “칼노래라는 것은 우리 대신사 수운 선생께서 여기 전라도 남원 선국사 은적암에 머무르실 때 지으신 노래올시다. 여기 은적암에서 석 달을 머무르셨는데, 그 사이 도력이 더욱 왕성하시니, 그 희열을 금치 못하여 스스로 노래를 지으시어 달 밝고 바람 맑은 밤을 타서, 목검을 짚고 묘고봉상에 홀로 올라 노래를 부르며 칼춤을 추시니, 그 노래를 일러 검결 즉 칼노래라 하였습니다.”(녹두장군, 송기숙 저) "때가 왔네 때가 왔네 다시 못 올 때가 왔네. 만년에 하나 날까 말까 한 대장부가 다시 못 올 때를 만났으니,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 쓰고 어찌할 것인가? 기세 좋게 칼을 들어 천지를 감당하고, 일월을 희롱하며, 우주를 덮을 용맹을 떨치니 만고명장인들 당할 수 ..
"왜병이 장차 이를 것이다. 일이 심히 급박하다."
"왜병이 장차 이를 것이다. 일이 심히 급박하다."
2023.08.18전주화약 이후 2차 봉기에 이르는 시기 조선 땅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민씨 일파의 요청에 따른 청의 파병 결정은 일본군 상륙의 구실이 되었다. 일본군은 인천에 상륙하자마자 한양으로 올라가더니, 급기야 경복궁을 침범하여 민씨 일파를 몰아내고 대원군을 앞세워 친일내각을 출범시켰다. 임오년 청나라에 납치된 이래 12년 만에 대원군이 정계에 복귀했다. 일본은 자신의 침략행위와 내정간섭의 방패막이로, 대원군은 고종과 민비를 폐위시키고 새로운 왕을 세워보겠다는 속셈이 있었다. 대원군은 평양에 주둔한 청군과 호남의 농민군, 조선 팔도의 의병을 불러 모아 일본군을 협공하여 몰아내려 했다. 허나 가장 믿었을 청나라 군대가 일본군에 패하여 기본 계획이 틀어지고 말았다. 청일전쟁 이후 ..
청년 장군, 영호대접주 김인배
청년 장군, 영호대접주 김인배
2023.07.17전남 동부와 서부 경남 일대를 호령하던 청년 장군, 영호대접주 김인배. 섬진강을 배경으로 그의 모습을 목판에 새겼다. 총을 거머쥔 고뇌에 찬 모습에 그가 걸어온 숱한 고난,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정과 좌절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장부가 사지에서 죽음을 얻는 것이 오직 떳떳한 일이요, 다만 뜻을 이루지 못함이 한이로다. 나는 공생공사를 맹세한 동지들과 최후를 같이 할 것이니 그대는 집으로 돌아가 부모를 공양하라. 영호대접주 김인배, 그이는 금구(현 전북 김제시 봉남면 화봉리) 사람이다. 갑오년 무렵 금구현은 혁명의 본거지였다. 1893년에 있은 원평(금구현) 집회는 동학의 교조신원운동을 ‘척왜양’을 기치로 한 사회변혁 운동으로 고조시킨 강력한 거점이 됐으며, 9월 2차 봉기 당시 원평은 농민군의 가..
농민군, 마지막 밥을 받다.
농민군, 마지막 밥을 받다.
2023.06.16갑오년 5월 31일 농민군이 용머리고개를 넘어 전주성에 입성했다. “이때는 4월 27일(양력 5월 31일) 전주 서문 밖 장날이라, 때가 오시(오전 11시 - 오후 1시)쯤 되자 장터 건너편 용머리 고개에서 일성의 대포소리가 터져 나오며 수천 방의 총소리가 일시에 시장판을 뒤엎었다. 별안간 난포 소리에 놀란 장꾼들은 정신을 잃어버리고 뒤죽박죽이 되어 헤어져 달아났다. 서문으로 남문으로 물밀듯이 들어가는 바람에 동학군들은 장꾼들과 같이 섞여 문안으로 들어서며 한편 고함을 지르며 한편 총질을 하였다. 서문에서 파수 보는 병정들은 어찌 된 까닭인지를 몰라 엎어지며 자빠지며 도망질을 치고 말았다. 삽시간에 성안에도 모두 동학군의 소리요 성밖에도 동학군의 소리다. 이때 전봉준 대장은 천천히 대군을 거느리고 서문으..
별빛 따라..
별빛 따라..
2023.05.17갑오년, 조선 농민들은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들의 싸움은 조선 말기 '민란의 시대' 100년을 결산하는 것이었으며, 다른 한편 새롭게 등장한 제국주의 침략세력과의 첫 대결이었다. 조선의 운명을 가르는 판갈이 싸움에서 농민군은 크게 패했고 그들의 패배는 조선의 패망으로 귀착되었다. 세기의 투쟁, 그들은 무엇을 남겼는가? 누천년 역사의 뒤안길에서 감당해온 억압과 착취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농민들의 투쟁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들은 꼬박 1년을 싸웠으며 조선 봉건 지배체제에 돌이킬 수 없는 크나큰 균열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제국주의와의 첫 대결에서 그들은 크게 패배했다. 청나라를 격파한 최첨단 제국주의 침략군과 죽창과 화승총으로 무장한 농민군은 애당초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허..
1895년 4월 24일, 1990년 4월 24일
1895년 4월 24일, 1990년 4월 24일
2023.04.17전봉준,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성두환. 1895년 4월 24일(음력 3월 30일) 새벽, 컴컴한 적굴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이들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진 것은 불과 하루 전 법무아문 권설 재판소에서였다. 판결은 그날로 국왕의 재가를 받아 날이 바뀌자마자 형이 집행되었다(속전속결, 훗날 이날의 모범을 충실히 따른 자가 있었으니 박정희다. 이 자는 인혁당 재건위 관련 피고인 8명을 형 확정 18시간 만에 사형시켰다. 세상에는 역사를 이렇게 계승하는 자도 있다). 1894년 4월 백산대회에서 이름을 올린 대장 전봉준, 총관령 손화중, 총참모 김덕명, 영솔장 최경선, 전주에서 이미 즉결 처형된 총관령 김개남 장군을 제외한 농민군 최고 지도자들이 한날한시에 명을 달리했다. 함께 처형된 성두환, 이분만이 낯이..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깃발이여!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깃발이여!
2023.03.201895년 3월, 을미적 을미적 봄이 오고 있었다. 허나 봄이 왔으되 봄이 아니었다.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기치를 든 동학농민군과 침략자 일제의 충돌, 조선의 명운을 건 한판 대결, 우금티 패전 이후 조선은 피바다에 잠겼다. 참빗 작전이라 했다. 제국주의 일본은 해외 침략의 첫걸음부터 피바람을 몰고 왔다. 참빗으로 훑어내리듯 씨를 말려 화근을 없애버리겠다는 일본군의 초토화 작전에 조선 관군이 동원되고 민보군이 앞장서는 골육상쟁의 비극이 벌어졌다. 임무를 마친 일본군이 인천으로 귀환하고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군 지도자들은 재판에 회부되었다. 오호 통제라! 남의 나라 군대에 제 나라 백성을 도륙케 한 조선 정부를 어찌 조선의 것이라 할 것인가. 무수한 농민군들과 그 가족, 이웃사촌들이 무리죽음을 당하고..
대둔산의 아침, 새로운 항쟁의 불꽃
대둔산의 아침, 새로운 항쟁의 불꽃
2023.02.17우금티 혈전 이후 농민군 주력부대가 남쪽으로 퇴각하던 시기 대둔산을 근거지로 유격 항전을 개시한 부대가 있었으니 금산, 진산, 고산 등지의 농민군들이었다. 이들은 우금티 전투 이전 를 맞아 금산, 진산 등지에서 치열한 매복 기습전으로 맞섰으며 일본군이 우금티로 몰려간 이후에는 관군이 몰려오면 사라졌다 떠나가면 다시 나타나는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이들이 대둔산에 근거지를 마련한 것은 12월 초순(양력) 퇴각하는 농민군 주력부대가 논산에서 전투를 치를 즈음이었다. 이로부터 이듬해 2월 중순에 이르기까지 70여일에 걸친 대둔산 항전이 시작된 것이다. 대둔산은 천 길 낭떠러지 허다하고 기암괴석 즐비한 험준한 바위산이다. 대둔산 석도골 미륵바위 정상에 근거지를 마련한 항전 지도부는 수시로 산에서 내려가 진산,..
전사의 길, 후회가 없다
전사의 길, 후회가 없다
2023.01.13태인 전투를 마지막으로 잠행에 들어간 전봉준 장군은 사흘 만인 12월 28일(양력) 피노리에서 피체되었다. 하루 앞선 27일 태인 종송리에서 김개남 장군이 피체되었다. 전봉준은 나주로 김개남은 전주로 압송되었으며 전주로 압송된 김개남은 새로 부임한 전라감사 이도재에 의해 즉결 처형되었다. 그로부터 10여일 후에는 손화중 장군이 고창에서 피체되었다. 이즈음 농민군들의 형편은 어떠했을까? 부대는 해산되었으되 돌아갈 곳이 없었다. 시시각각 추격해오는 조일 연합군, 앞을 막아서는 민보군이 기승을 부렸다. 내내 숨을 죽이고 사세를 엿보던 양반과 부호들이 토벌대를 조직해 농민군 살육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조일 연합군, 특히 조선 실정에 밝지 못한 일본군의 충실한 조력자가 되어 농민군을 색출하고 살육하는데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