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의 모정(茅亭)
발리의 모정(茅亭)
2014.03.03전라도 농촌에 가면 어지간한 마을마다 '모정' 하나쯤은 있다. 큰 동네는 두개도 되고.. 그 일대에서 가장 시원하면서도 동네 사람들은 물론 길가는 나그네까지 누구나 가까이 두고 쉴 수 있는 곳이 모정이다. 선선한 해장과 해질녘에나 일할 수 있는 한여름 낮, 더위에 지친 농민들의 휴식처가 바로 모정이다. 맥없이 스러져간 양반네들의 정자에 비해 농민들의 모정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마을 사람들의 정성스런 손길에 반질반질 윤이 난다. 농민문화의 건강함과 생명력이 오늘날까지 빛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발리에도 그런 모정이 있더란 말이다. 제대로된 농촌지역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어지간한 마을마다 모정이 세워져 있고 그곳에서 주민들이 쉬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테레비도 있고 선풍기도 ..
발리에서 오토바이 타기
발리에서 오토바이 타기
2014.02.18인도네시아 발리, 처음 가보는 동남아 지역.오토바이 많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끊임없이 쏟아져나오는 오토바이 행렬, 중앙선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질서에 골머리가 다 아프려고 한다. 더군다나 우리하고는 차량통행이 반대방향이다. 좌측통행인가? 차량은 숫제 오토바이에 포위되고 위세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다. 이건 당췌 질서도 없어 위험천만하고 아슬아슬해보였다. 더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모자 안쓴 사람은 없다. 단속이 심한건지 안전의식이 센건지.. 도로는 좁고, 도로를 점령하다시피 한 오토바이 물결에 차량이 나아갈 틈이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이 사람들 잘 다녔다. 실제 사고가 얼마나 나는지는 알 수 없으나 3박4일 머무는 동안 단 한건의 사고도 목격하지 못했다. 우리같..
산골 초입 임실 강진
산골 초입 임실 강진
2014.02.01밤새 마신 술로 몸이 해장을 요구한다.순창가는 길, 전주 인근을 벗어나니 사면팔방에서 산이 달려든다. 산모탱이를 도는 맛도 물길을 따르는 멋도 없이 그저 일직선으로 뚫린 새 도로에는 자연을 거스르는 폭력만이 낭자하다. 왜놈들이 뚫어놓은 신작로를 걷는 옛 어른들 맘이 이랬을까 싶다. 30여분을 달려 도달한 산골 마을에는 곳에 따라, 때에 따라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임실에 속한 강진, 장터로 들어가는 다리 아래로 산에서 내려온 물이 흐른다. 강진장터 국수집 행운집을 찾아들어간다. 국수 마는동안 공것으로 나온 머릿고기에 자동으로 막걸리가 따른다. 막걸리잔을 내려다보는 홍규형의 그윽한 표정에서 꽤 오랜 세월 덧쌓인 격조높은 내공이 엿보인다. "술은 술로 푸는 것이여" 거진 도인의 지경이다. 행운집 국수는 장인..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난 사람사는 풍경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난 사람사는 풍경
2013.12.20WTO 각료회의 덕분으로 다녀온 팔자에 없던 발리, 난생 처음 가보는 열대지방, 가장 멀리 가보는 남의 나라다. 직항 비행기로 7시간이나 걸리는 꽤 먼 곳이었다. 발리는 적도 살짝 아래에 위치한 몹시 더운 동네, 호주하고 가깝다. 적도 아래 남반구에 위치하여 계절상으로 여름인지라 본래 더운 날씨 중에서도 더운 때라 했다. 땀이 줄줄 흐르긴 하지만 습도가 크게 높지 않아 찜통 속에 들어앉아 있는 듯한 우리나라 한여름 무더위에 비교하면 오히려 견딜만 했다. 기후나 풍토나 사람이나 모든 것이 몹시 낯설것 같았으나 의외로 편안하고 낯설지 않았다. 사람들은 느릿하고 여유로웠다. 말은 통하지 않았으나 손짓 발짓에 영어 단어 댓가지 정도면 그다지 불편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하루 지나고 나자 이웃동네에 마실나온 듯..
경순왕릉이 왜 여기에 있지?
경순왕릉이 왜 여기에 있지?
2013.09.01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 경순왕의 무덤은 어디에 있을까? 이래저래 집에 내려가지 못한 일요일 임진강변으로 바람을 쐬러 갔다가 난데없는 곳에서 경순왕릉 안내 표지판을 보고 따라가봤다. 최전방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민간인 출입통제선에 물려있다시피 한 곳이다. 알고보니 경순왕릉으로 하여 민간인 통제선이 뒤로 물러선 것으로 되어 있다. 왕릉 뒷쪽으로는 군사 철책이 둘러쳐져 있고 '지뢰' 표시가 살벌하다. 신라왕이 어인 일로 여기에.. 같이 간 사람들 이러저러한 추측의 결론은 고려 개국 이후 개성에 볼모로 잡혀 있다 생을 마치지 않았겠는가 하는 것이다. 현장에 가서 확인해보니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찌되었건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이다. 경순왕릉 안내문 등에 따르면 국운이 쇠하고 후백제의 침략이 ..
오월, 무등산에 오르다.
오월, 무등산에 오르다.
2013.06.13오월 무등산에 올랐다. 어느새 한달이 되어간다. 5월 17일 석가탄신일, 연휴가 시작되는 날인지라 한적한 길을 찾아 원효사길을 골랐다. 원효사에서 서석대에 이르는 4km 남짓한 길은 무등산 옛길이라 이름붙여져 잘 닦여 있다. 계곡을 끼고 흐르는 호젓한 산길을 시간 반 가량 오르면 중봉 부근 능선에 이르러 무등산의 웅장한 산세가 드러나고 광주시내가 내려다보이기 시작한다. 무등산에 올라 오월 광주를 생각한다. 80년대의 '오월' 광주'에 담겨 있던 역동성과 비장함을 되새겨본다. 복사에 복사를 거듭하여 형체를 알아보기조차 힘든 오월영령들의 사진집을 보며 느꼈던 비분강개, 피가 거꾸로 흐르는 분노에 피를 떨던 시절이다. 역사는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학살자가 애국자가 되고 학살의 배후가 여전히 은인 행세를 하고..
5월, 영실 선작지왓 윗세오름 주변의 야생화
5월, 영실 선작지왓 윗세오름 주변의 야생화
2013.05.09시간 반이면 오를 수 있는 영실-윗세오름길은 한라산 산길 중에서 가장 짧다. 짧기도 하거니와 제주 남서부 일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광활한 주위 조망과 백록담 화구벽을 보며 걷는 선작지왓의 이국적 정취는 전혀 지루하거나 힘들 틈을 주지 않는다. 어리목으로 내려갈 수도 있고 돈내코로 내려갈 수도 있겠으며 영 시간이 촉박하다면 되짚어내려가는 것도 문제 없으니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 산을 잘 타지 못하는 등산객들도 부담없이 오를 수 있겠다. 영실입구, 산객을 반기는 까마귀가 신령스럽게 느껴진다. 털진달래가 피었다. 화구벽이 보이는 고산평원, 선작지왓에는 5월 말에서 6월 중순 사이 철쭉이 만개하는 모양이다. 한라산 특산 좀민들레. 일반 민들레에 비해 매우 작다. 노랑제비꽃이 지천이다. 오른짝 쳇망오름과 외약..
백운산 동강할미꽃
백운산 동강할미꽃
2013.04.01몇 년을 별러왔던가? 정선 땅 동강변 바위 절벽에 피어나는 동강할미꽃, 그 존재를 안 이후 나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그곳에 가는 꿈을 키워왔다. 그 꿈은 농민운동을 통해 실현되었다. 정선 땅에서 농사짓는 농민회원들과 연줄이 닿은 지난겨울 막바지, 돼지 잡는다는 핑계로 몇 차례 오며 가며 동강할미꽃이 피기만을 기다려왔다. 드디어 봄이 왔고 꽃이 피었다. 귀한 꽃 귀하게 보고 싶어 산에 올라 보기로 하였다. 오며 가며 눈에 익혀 두었던 백운산, 백운산은 동강이 크게 휘돌아 치는 곳에 수직의 절벽을 일으켜 세워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하는 그런 산이다. 점재마을로 올라 정상을 거쳐 능선을 타고 제장마을로 내려서기로 한다. 몇 채 안 되는 마을을 지나 산기슭 밭을 지나니 산으로 드는 길이 열린다. 곧게 솟..
천마산 맛보기 산행
천마산 맛보기 산행
2013.03.19일정상 집에 내려가기 어려운 날 수도권 인근 산행 계획을 세웠다. 산행지는 들꽃을 찾아다니던 시절 명성은 익히 들어왔으나 너무 멀어 한번도 발 내밀어보지 못했던 천마산. 고창지역을 중심으로 꽃피는 시기를 가늠하고 있는지라 어떤 꽃이 얼마나 피었 있는지 알기도 어렵고 오전중으로 산을 내려와야 하는 촉박함도 있어 입맛이나 살짝 다시는 것으로 하기로 하였다. 이러저런 이유로 같이 가기로 했던 사람들 다 자빠져불고 홀로 외로이 청춘열차에 몸을 실었다. 7시 용산역을 출발하니 30분을 살짝 넘겨 평내호평역인가에 가 닿는다. 묵현리 짝 관리사무소를 산행들머리로 삼고 택시로 이동한다. 택시비 5,500원 나왔다. 산행시작 시각 8시.산이 뭐 호젓한 맛도 없고 등산로는 고속도로마냥 넓직하고.. 초입이 그렇다는 말이다...
백두산 통일역사기행 - 둘째날 3 : 천지를 뒤로 하고..
백두산 통일역사기행 - 둘째날 3 : 천지를 뒤로 하고..
2012.09.11못내 아쉬운 마음에 한번 더 쳐다보고.. 이제는 진짜로 하산이다.기다렸다는 듯 구름이 몰려오고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 사위가 어두워진다. 구름이 몰려오건 말건, 비가 오건 말건 발걸음에 속도가 붙지 아니한다. 올라갈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 색깔도 다르고 감흥도 다르다. 몇시쯤에나 산 아래 당도할 것인가에 대한 염려도 없이 발걸음은 한없이 늘어진다. 꽃이 지고 난 후의 씨방에도 사진기가 다가가고..담자리꽃나무 씨방이 천지간에 즐비하다. 진짜로 야생화 만발한 시기에 꼭 다시 오고 싶다. 올라갈 때 미처 보지 못했던 비룡폭포(장백폭포)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봉우리에 섰다. 비룡폭포는 우리 민족이 당초부터 이름붙여 부르던 것이라 하니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하지 않는 것처럼 장백폭포보다는 비룡폭포라 부르는 것이 좋겠..
백두산 통일역사기행 - 둘째날 2 : 백두산 천지
백두산 통일역사기행 - 둘째날 2 : 백두산 천지
2012.09.11등반을 시작한 지 세시간여만에 우리는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주릉에 당도하였다. 천지를 둘러싼 거대한 봉우리들이 시선을 압도하고 짙푸른 천지의 수면은 신비롭기만 하다. 무수히 보아온 너무도 명백한 천지, 바로 그 천지가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우리 민족의 시원으로부터 DNA에 새겨져 세대를 거듭하면서 더욱 강렬하게 각인되어 온 '민족의 성산'이라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벅차오르는 가슴으로 실감한다. 신기하고 놀라운 사람. 감격에 겨운 사람. 무덤덤한 사람. 겉으로 드러난 반응과 표정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 우리는 통일역사기행에 온 사람들이다. 역시 단체사진 한장 박고 우리는 천지 물가로 내려선다. 돌이 굴러내리는 대단히 가파른 길을 조심스레 더듬어 내려간다. 편안한 길이 나온다. 푸른 초원을 ..
백두산 통일역사기행 - 첫째날 : 장춘에서 돈화 거쳐 이도백하까지
백두산 통일역사기행 - 첫째날 : 장춘에서 돈화 거쳐 이도백하까지
2012.09.08전농 통일역사 기행단의 일원으로 백두산에 다녀왔다. 총인원 40명, 단촐한 인원. 본래 80여 명에 달하였으나 태풍의 강습으로 반으로 줄고 말았다. 9월 2일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장춘 거쳐 돈화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백두산 인근 이도백하에 첫날 여정을 풀었다. 비행기 이동 거리 빼고 총 450여 km, 6시간가량이 소요된다. 조선족 안내원 태호림의 말에 따르면 백두산 관광은 중국에서도 '엉덩이 마사지하는 관광'으로 일컬어진다 한다. 중국의 10대 명승지이면서도 차를 타고 이동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용하기 때문일 터, 오줌보가 크고 짱짱하지 않으면 자칫 오줌 참은 기억만 또렷한 여행이 될 수도 있겠다. 공항을 떠나 돈화로 향한다. 제대로 통성명하지 못한 기행 단원들 간의 인사와 기행에 대한 기대와 결의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