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 불고기
한우 불고기
2020.12.28냉장고 속에서 늙어가는 쇠고기, 국거리용은 미역국 끓여 먹고 불고기용이 남았다. 추석 때 받은 것이니 해 넘어가기 전에 먹어 치우는 것이 죽어 고기를 남긴 소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헌데 불고기라는 건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으니.. 그래 요리가 뭐 별 것이더냐? '할 수 있다'는 도전 정신이 중요하다고 본다. 까짓 것 해보는 거다. 양념장이 불고기 맛을 좌우할 것이기에 자신의 기호에 따라 그 맛을 상상해가며 양념장을 정성껏 준비한다. 꽁꽁 언 쇠고기 뜨거운 물에 담가놓고 양념장을 만들어 보는디.. 나는 간장을 고를 때 우리콩으로 만들었는지 소금은 어떤 걸 썼는지 확인한다. 우리콩 천일염으로 만든 진간장 적당량, 이건 순전히 감이다. 쇠고기 양을 감안하여 이 정도는 되야겠다는 느낌만큼 간장을 붓고..
순창 구림식당 시래기 해장국
순창 구림식당 시래기 해장국
2020.12.15토박이 순창 사람이 가는 식당, 아침 일찍 문을 열어 좋고 맛이 있어 좋다 하네.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우리는 해장이 필요해. 실가리국(시래기해장국)을 주문한다. 구수하고 깊은 맛, 어떻게 끓이면 이런 맛이 나지? 심지어 추어탕 맛이 나기도 하여 추어탕도 하는지 살폈지만 메뉴판에 없다. 좌우튼 해장에 딱이다. 순창에 가시거든 찾아가 잡솨보시라. 순창군청 가까이 천변에 있다.
수두리보말 칼국수
수두리보말 칼국수
2020.12.12여기는 제주도, 사람 맛으로 술을 마신다. 밤사이 적잖이 달렸다. 해장이 필요해.. 나는 밀가리것으로 속을 푼다. 수두리보말 칼국수, 수두리 보말이 어디냐 묻지 마시라. 지명이 아니다. 그러니 띄어 쓰면 안된다. 곶자왈에 속고, 수두리에 속고.. 수두리나 보말이나 그것이 그것, 나의 무지를 탓할 일이다. 제주 섬 사람들이야 어찌 구분하겠지만 나한테는 내나 갯고동일 따름이다. 중문에서 제일 잘 한다는 원조 집에서 먹었다. 속이 확 풀린다. 아침부터 손님이 줄을 잇더라.
장흥 도깨비방망이 닭도리탕
장흥 도깨비방망이 닭도리탕
2020.12.06고2 때쯤이었던지.. 형과 함께 장흥에 갔더랬다. 그것도 정초에.. 난생처음이었는데 딱 세 가지 기억이 남아 있다. 읍내를 관통해 흐르던 탐진강, 강 건너 산 중턱 며느리바위와 그에 얽힌 전설, 멋모르고 떠먹었다 곤욕을 치른 매생이 떡국. 그 후 30여 년의 간극을 뛰어넘어 최근 몇 년 사이 이래저래 꽤 자주 오가는 고장이 되었으니.. 어제는 산에 못 가는 대신 "장흥이나 가자" 하고 길을 나섰던 것이다. 산에는 왜 가지 못했는가? 발 병이 났다. 틀림없는 족저근막염, 적절한 치료대책이 필요하다. 장흥에서는 뭘 했을까? 몇 차례 자리를 옮겨가며 여러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음식과 다량의 술을 마셨다. 그중에 하나 기억에 남길만한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닭도리탕'이다. 맛을 잘 아는 냥반..
우렁이 된장볶음
우렁이 된장볶음
2020.01.23얼마 전 공력 높은 호래비 집에서 하루를 묵고 받은 아침밥상. 그 밥상에 볶은 된장이 있었다. 어찌 만드는가 물었다. 우렁이, 멸치, 청양고추, 들기름.. 물 쩨까 넣고 볶으면 된다 했다. 그처럼 간편한데 이런 맛이 나온단 말인가? '나도 해 먹어야겠다', 가슴에 새겼다. 우렁이살 사놓고 집에서 밥 먹을 날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드디어 나도 된장을 볶았다. 물이 약간 많아 지졌다 말해도 별반 그르지 않겠다. 멸치 다듬어 우렁이살, 다진 마늘, 달군 뚝배기에 들기름 쳐 살짝 볶다 물 자작하게 붓고, 된장 퍽퍽 퍼 넣고 달달 볶는다. 적당한 시기에 대파, 청양고추 댓 개 썰어넣고 들들 볶는다. 들기름 좀 더 치고 끝, 맛을 봤다. '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내 오늘 이걸 끝내 다 먹고 말지.. 반주 한..
국수호박 비빔국수
국수호박 비빔국수
2016.07.26신림 사는 태영이 형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말씀의 요지는 국수호박 50여개를 원협에 냈는데 이 씨벌놈들이 2만원 쳤다는 것이다. "내 아무리 묵어보기나 할 요량으로 심었다가 하도 많이 열어 장에 냈지만 인터넷에서는 한뎅이에 만원, 2만원 하는데 이런 상놈의 새끼들이 없다"고 적지 않게 흥분하셨다. 차라리 노나묵고 말겠다고 공판장 근처 사는 정읍 농민회원 있으면 알려달라고.. 이렇게 저렇게 해서 공판장에서 돌아온 국수호박이 그날밤 민중연합당 농민당 도당위원장 선출대회에 나타났다. 한망에 만원, 국수호박은 순식간에 12만원 지폐와 교환되었다. 이렇듯 곡절을 겪은 국수호박이 도마에 올랐다. 요거는 태영이 형님이 거저 준 잔챙이 국수호박, 큰 참외보다 좀 더 크다. 따서 그냥 한데다 둬도 오래 간다 한다. 저장..
집에서 먹는 곤드레밥
집에서 먹는 곤드레밥
2016.05.18제사 때 사놓은 곤드레나물이 하릴 없이 늙어간다. 먹어 치워야지.. 그래서 작심했다. 곤드레밥을 해먹겠노라.. 그런데 그 준비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몰랐다. 오래 걸렸다. 곤드레나물을 물에 불린 후 삶아 알맞은 크기로 잘랐다. 여기까지 2박3일, 한 삼십분 물에 불리면 되겠지 했다가 "아 그게 아니구나" 하고 하룻 저녁 재우고.. 그러고는 곤드레밥을 까맣게 잊었다가 그 이틑날에야 물에 담긴 곤드레나물을 발견하고 "아 곤드레밥.." ㅎㅎ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이렇다. 좌우튼 오랜 기간 물에 불렸으니 삶는 시간은 좀 짧게 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맞지 않아 다시 냉장고에 넣어 하루를 더 재웠다. 곤드레나물을 꺼내 볶는다. 들기름 아까라 말고 볶다가 음식 싱거운 건 참지 못하는 성미대로 소금..
남원 추어탕, 고향마루.
남원 추어탕, 고향마루.
2014.07.15한중FTA 12차 협상이 대구에서 열리고 있다. 협상 첫날 전국의 농민들이 모여 한중 FTA 저지 전국 농민대회를 열었다. 언제 완공될 지 모를 확포장 공사가 진행중인 88 고속도로를 지나야 하는 험난한 여정. 무더운 날씨까지 겹쳐 여간 고역이 아니다. 돌아오는 길, 저녁 먹을 궁리를 한다. 이구동성 의기투합하는 것은 일단 경상도를 벗어나자는 것. ㅎㅎ해서 전라도 첫들머리 남원 추어탕이 낙점되었다. 더위에 지친 심신도 풀고.. 그래 이런 호사라도 누려야지. 음식 맛은 토박이들이라야 제대로 평가가 된다. 남원 농민회 회원에게 문의하여 고향마루 추어탕에 자리를 잡았다. 뜨거운 김이 폴폴 나는 뚝배기가 영판 맹탕으로 나왔다. 전화기 사진기로는 표현하기가 몹시 어려운 영역이다. 잡맛이 없는 깔끔하고 개운한 그야..
만병통치 나숭개, 냉이를 먹자.
만병통치 나숭개, 냉이를 먹자.
2014.03.04봄 하면 냉이. 순창 사람 둘이 의견이 충돌한다. 순창에서도 험한 산중 쌍치 사람 '나숭개'라 하고, 순창에서도 가장 너른 들판을 끼고 사는 대가리 사람 '아숭개'라 한다. 고창 사람이 결론을 내린다. 냉이를 먹으면 뭣이고 잘 낫응게 '나숭개', 아무리 들판이라도 숭악한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들던 시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아숭 게 먹어서 '아숭개'로 불렀다는.. 뭐 믿그나 말그나.. 누가 캐다 줬을까? 깨끗하게 손질된 냉이가 밥상 위에 한웅큼 있다. 어떻게 먹어야 쓰까? 바로 이렇게.. 맛있는 고추장 듬뿍 얹어 벌겋게 비벼먹는 거다. 쌩 냉이 그대로 이렇게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약간 질긴 듯 하지만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그야말로 봄을 느끼기에는 최상이다. 냉이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달며 독성은 없..
설
설
2014.02.01우리 식구들 다 모였다. 설이다. 삐약삐약하던 것들이 그새 컸다고 이제 말도 안타고 애비를 숫재 갖고 놀자고 한다. 우리 식구 다 해봐야 손하고 발만 나온놈, 술잔만 기울이는 놈까지 도합 다섯이다. 딸래미들이 컸다고 제몫을 한다. 옆에서 평가해주는 남정네들까지 해서 이렇게 손맛은 전승되는 모양이다. 차례상보다 성주상이 더 그럴듯했다. 떡국이 얼매나 맛나등가 어제만 다섯그륵을 자과대부렀다. 어렸을 적에는 한살이라도 얼른 더 묵어볼라고 그랬다치고 어제는 왜 그랬을까?밥도 힘으로 묵는거이라 힘 있을 때 한그륵이라도 더 묵어둘라고 그런 모양이다. 아들만 4형제를 둔 옆집 칠암할매 손주들허고 통화허는 모양이다. "어이 잘 갔는가?" "어이 어이" 하는 목소리가 촉촉히 젖어 담을 넘는다. 다들 처갓집으로, 혹은 다..
예당 저수지 어죽
예당 저수지 어죽
2014.01.31예당 저수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저수지다. 내가 아는 가장 큰 저수지인 우리동네 동림 저수지의 약 3배 정도가 되니 커도 몹시 크다. 이름 그대로 예산과 당진, 예당평야의 젖줄이 된다. 그냥 바라만 봐도 붕어, 잉어 등 펄떡거리는 물고기들이 가득해 보인다. 군데군데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우리들이 무리를 이루어 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야생오리들이다. 저수지물이 발치에서 찰랑거리는 솜씨 좋은 음식점에서 붕어찜과 어죽으로 점심을 먹는다. 붕어찜은 일반적인 맛이다. 우리동네 아짐들이 끓이는 전라도 붕어찜에 비해 다소 쳐진다. 토막내지 않은 묵은지에 두툼하게 썬 무를 넣고 고추장 듬뿍 풀어 지진 붕어찜이 내가 아는 최고의 붕어찜이다. 제대로된 묵은지가 여의치 않다면 질 좋은 실가리가 2번 타자가 되어..
발리의 기억, 발리 도시락과 박소.
발리의 기억, 발리 도시락과 박소.
2014.01.12발리에 갔다 온지도 해를 넘어 벌써 세달이 되어간다. 놀러 갔다온 것도 아니고 씀뻑 다녀온지라 이러저러한 기억들이 고닥새 아스라해진다. 어딜 가나 제때 공급받지 못해 배고픈것 빼고 음식으로 해서 어려움을 겪는 일은 그다지 있어본 적이 없다. 머나먼 열대지방이지만 발리에 가면서도 음식 걱정은 달리 해보지 않았고 실제로 잘 먹고 잘 싸다 왔다. 일부러 이것저것 먹어왔지만 이렇다 하게 기억나는 음식도 없다. 다만 첫날 먹었던 도시락과 마지막날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먹었던 음식이 그중 기억에 남는다. WTO 발리 각료회의에 반대하는 국제 행동의 날 시가행진을 마치고 점심으로 받은 도시락이다. 기름종이에 쌓인 도시락을 펼치는 순간 당혹감이 밀려왔다. "이걸 대체 어쩌라는 거지? ㅎㅎ" 무슨 라면땅 찌끄레기 물에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