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명절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올 설은 참으로 별 재미없게 지나갔다. 
코로나를 핑계로 두 딸은 오지 않았고 아들 녀석과 단출하게 차례상을 차렸더랬다. 
그렇게 설을 보내고 아들 녀석을 꼬드겨 한나절만 타기로 하고 호남정맥으로 갔다. 
어느새 한 달이 되어간다. 
정맥을 좀 더 잇고 싸잡아 기록을 남기고자 했으나 영 틈을 내기가 어렵다. 
지금이라도 기록하지 않으면 잊힌 산행이 되기 십상이겠다. 

기억을 더듬어 보는디..

10시 25분

불재 고갯마루는 좌우로 몹시 어수선하다. 사람 손을 많이 탔다. 
걸음을 서둘러 잠시 오르니 약간의 조망이 터진다. 
시작은 언제가 지나온 길 돌아보는 것부터..
고래 뿔은 어디로 갔을까?

가야 할 길을 가늠한다. 
저기까지만 가면 되겠다. 
치마산이다.
들어보지 못한 산 이름, 봉우리에 올라가서야 "음, 여기가 치마산이라 이거지" 하게 되었다. 

저 건너 모악산, 구이 저수지가 살짝 보인다. 
금산사를 품은 원평 쪽에서 바라보는 모악산과 이 짝 모악산은 면모가 퍽 다르다. 
이 짝에서 바라보는 모악산이 좀 더 장중하고 우람해 보인다. 

힘겨운 오르막이 꽤 있더라. 
날이 더워 땀이 흐른다. 
녀석, 투덜대면서도 잘 올라간다. 

4륜 오토바이의 흔적, 심한 오르막에서는 용을 쓰느라 산을 어지간이 절단 냈더라. 
나름의 모험을 즐기고 싶었겠으나 적절하지 못한 행위다. 

11시 55분

아들 덕에 인증 사진을 남긴다.
치마산, 나는 치맛자락을..

아들 녀석은 치마살을 생각한다. 

사과 참 맛있다. 
올 사과는 다 맛나더라. 
모진 기후변화에 사과나 농민이나 모다 고생이 많았다. 
심화되는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농민이 있다. 

13시 45분

내내 조망이 터지지 않던 산길, 염암 고개를 눈 앞에 두고서야 시원스러운 조망을 제공한다. 
돌출된 암봉과 바위 절벽이 발달해 있어 걸음걸음 발목을 잡는다. 

염암 고개를 넘는 도로가 구불구불 산을 오른다. 

꽤 험한 산중이다. 

염암 고개 너머 오봉산 방향, 저기까지 넘어가고 싶었으나 약속한 바가 있으니 훗날을 기약한다. 
14시 10분 염암 고개 도착,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순창에서 달려온 농사꾼의 도움을 받아 다시 불재로 돌아간다. 
명절 뒤끝인데 고맙지..
삼천리 방방골골 농민의 깃발이여~

다시 돌아온 불재, 정맥 길을 사유지로 점유한 토지주의 심보가 심히 고약스럽다. 
이 길을 넘나드는 산꾼들 토지주에게 어떤 해약을 끼쳤길래 이리 고약해졌을까?
고성방가에 노상방뇨라도 일삼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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