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인가 초겨울인가, 호남정맥에 다시 안기다. 
진달래 꽃망울 터뜨리던 초봄이었으니 고닥새 반년이 훌쩍 지나버렸네. 
날이 갈수락 먼 길 단번에 가기 어렵다.
나이는 자시고 몸은 불고, 별 수 있나 구간을 쪼개 조금씩 나아가야지.
그러다 다리에 힘 받으면 쭉 빼기도 하고..

묵방산이 538m, 이번 구간은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 차 달리는 소리 허다히 들릴 것이다. 
산이 사람 사는 세상과 가까워지면 필연코 깎이고 뭉개져 상처투성이가 된다. 
하여 사람의 간섭이 심한 마을 주변과 밭 가상은 가시덤불과 잡초가 우거져 길은 걸핏 사라지기 일쑤, 집중하지 않으면 곤욕을 치르는 수가 있다. 
수풀 무성한 여름이 아니어서 다행인 것이다. 

미국가막살이

운암 삼거리, 들머리부터 수월치 않다. 
흔히 도깨비풀이라 불리는 미국가막사리 씨가 덕지덕지, 순식간에 고슴도치가 되었다. 
절개지 위 감나무에 걸린 표지기가 반갑다. 

햇빛 잘 드는 무덤가, 누군가 포식하셨네. 
희생자는 알 만한데 포식자는 누구일까, 맹금? 맹수?
조선 땅에 맹수가 있나?
맹수가 따로 있나, 희생자에게는 포식자가 맹수인 게지.

고라니 혹은 노루털
멧돼지털
멧돼지가 몸을 비빈 비빔목
백강균에 감염된 털두꺼비하늘소로 보인다 함

하~ 이런.. 큰일이다. 
맨 이런 것들만 자꾸 눈에 들어오니 산을 볼 수 있나, 해는 담박질 치는데 걸음은 더욱 느려지고..
멧돼지 사냥꾼, 야동 전문가.. 이런 사람들하고 너무 가까이 지내서는 안 되겠다. 

산에 들었으니 산을 봐야지..

운암대교와 옥정호
묵방산

벌목 지대에서 겨우 조망이 터진다. 

모악지맥이 가지 쳐 나가는 갈림길, 늘 보는 낯익은 표지기들..

묵방산 오르는 길에서 땀을 동이로 쏟았다. 
걸음은 출근길 버스마냥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아등바등, 거친 숨 몰아쉬며 죽을 동 살 동 올랐다. 
산 작다 얕보지 마라, 된비알 하나쯤 숨기고 있으니..

이 멧돼지는 어디서 진흙을 묻혀 이 능선에 발라 놓았을까?
궁금하긴 하나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여긴 사람의 흔적, 고지를 고수하던 빨치산들이 머물렀을까?
목을 지키던 매복 초소였을 수도 있겠고..
직접 보면 흔적 더욱 뚜렷한데 사진은 늘 밋밋해 보인다. 

정맥길에서 살짝 벗어난 묵방산 정상은 조망이 전혀 없다. 

어디쯤이었을까? 알아볼만한 산 하나 없다. 
우리나라는 어디서나  산에 오르면 어지간하면 첩첩산중, 우리나라는 분명 산악 국가다. 

여우치(배남재)로 내려선다. 
꽃 피는 봄날이면 볼 만하겠다. 

주인은 간 데 없고 산이 그림처럼 통유리창에 와서 박혔다. 

느티나무
운암댐 혹은 옥정호

여우(如牛)치, 소와 같다. 
마을에 와우혈의 묘지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런 의민지 알았으면 잘 둘러봤을 걸 여우가 많이 살았나 하며 심드렁하게 지나쳤다. 
아무튼 여기는 분수령.

저 앞에 저 산이 소처럼 보이나?
산속에 들어앉은 마을이 호젓하다. 

가는정이 삼거리, 산외와 운암을 가르는..

땅! 총으로 쏴부러야..

부동산 공화국, 몹쓸 투기바람이 농촌마을을 파괴하고 산하를 절단내고 있다.

묵방산이 저만치 멀어지고..

초겨울 쑥부쟁이

멧돼지 둥지, 몸을 풀어 새끼를 낳고 젖먹이를 키웠을..
예전에는 알 수 없었던 짐승의 흔적을 알아보는 눈이 생겼다. 

오후 세 시, 성옥산을 앞두고 돌아갈 일을 걱정한다. 
언제나 그러하듯 산 주변에 사는 농민회원들에게 지원을 요청한다. 
산내면 지회장을 지내시던 고령의 회원분과 연락이 닿았다. 
노인 야간학교에 가야 하니 빨리 오라 한다.
소재지에서 여학우들 모시고 학교 가야 한다고.. ㅋㅋ
도착시간을 40여분 앞당겨야 한다. 
속도를 내보는디 산길은 왜 이리 움퍽짐퍽한 것인가?
입에서 단내가 나드락 오르락내리락..

저 아래 소리개재, 정시에 도착하겠다. 
그 옛날 솔개가 많았을까?
여기도 역시 지형지세와 연관이 있겠지.
이를테면 솔개가 닭을 채가는 형국이랄지..

아~ 이 감, 무지막지하게 맛있더라. 
그냥 홍시가 아닌 쫀득쫀득 찰지면서 꿀처럼 단 먹감이었던 것이다. 

펑퍼짐하게 드러누운 새로운 산들이 나타나고..

휘돌아가는 찻길 너머 시멘트 포장도로 따라 정맥길이 이어진다. 
탈탈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경운기 소리 정답다. 

평생을 오토바이 타고 산길을 넘나드셨다는 산내면 농민회장님 차 얻어 타고 운암 삼거리로 돌아간다. 
승용차 뒷자리에 앉아 오토바이 타는 듯한 심장이 쫄깃해지는 짜릿한 경험..
천천히 다니시라 몇 번을 말씀드렸으나 나를 내려놓고 웽~ 하고 사라지셨다. 

산외면 동곡리 지금실, 김개남 장군 묘역에 들러 술 한 잔 부어드렸다. 
몸은 비록 죽었으나 혁명정신 살아 있다~
13년 만의 발걸음, 묘역이 좀 달라진 느낌..

보름이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