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8일 11시 45분, 산길을 이어간다. 
간밤 음악가 선생들과 마신 술이 과했다. 숙취 해소를 위한 산행, 오늘은 순창 사람 김 씨의 도움으로 차를 미리 목적지에 갖다 두고 시작한다.
몸을 낮출 대로 낮춰 도로를 건넌 정맥은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다시 산으로 오른다. 
정맥은 한동안 밭과 밭 사이, 무덤 사이, 자그만 솔밭 사이, 가시밭길 돌무덤을 헤쳐간다. 
으슥한 곳을 골라 앞뒤 개완허게 비워내니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직박구리, 개똥지빠귀 소리 사이로 낯선 새소리가 들린다. 
오~ 좋은 징조로다. 
한참을 갈등하며 조물딱 거리다 가져온 망원렌즈를 꺼낸다.  

검은이마직박구리

어랍쇼 검은이마직박구리, 이 녀석들을 예서 만날 줄이야
몇 년을 보고 싶어 모대기던 녀석인데 올해만 세 번째, 한 번 보고 나면 자꾸 보인다는 건 아무래도 법칙인 모양이다. 
그래도 이처럼 내륙 깊숙한 곳 그저 평범한 산골에서 보게 되니 겁나 반갑네. 
내외간일까? 뭐라 뭐라 지저귀며 정답게 쌍으로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나는 그런 그들을 한참이나 쫓아다녔다. 

솔밭 사이로~ 길이 이어진다.
오늘은 이런 길이 많다. 
소리개재에서 구절재까지 이번 산길은 정읍 칠보와 산내를 경계로 이어진다. 
온전한 정읍 땅에 들어선 것이다.
헌데 산내면은 어디를 기준으로 누구의 관점에서 산내인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무래도 산내와 산외가 뒤집혔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마을 뒷길, 초겨울 쑥부쟁이가 단아한 빛을 발하고 있다. 

멧돼지 흔적도 보이고..

볼라벤이었을까?
산을 험하게도 할퀴고 갔다. 

버섯 속 숨어 있던 녀석, 졸지에 찬바람 맞고..

왕자산 턱 밑에서 잠시 조망이 터진다. 
헌데 아무리 더듬어도 지나온 산줄기가 가늠이 안 된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과히 특징 없는 둥글넓적한 산들이  어디가 어딘지 종잡을 수 없게 누워 있는 탓이라 여긴다.
묵방산은 어디에 있는가? 사진 안에 있긴 한가?
너무 남쪽을 바라보고 있었던 듯..

방향으로는 분명 회문산이겠는데 구분할 수 없다. 
이 짝에서 바라보는 게 처음일뿐더러 나는 회문산 봉우리들의 생김새를 잘 모른다. 
언제 한 번 맘먹고 더듬어야겠다. 

담비 똥이라네. 이런 야트막한 산에도 담비가 살고 있단 말이지..
왜 담비 똥이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렇다 하니 그런 게지, 나는 언제나 담비를 직접 볼 수 있을까? 

13시 30분, 조망 전혀 없고 어수선한 왕자산 정상을 지난다. 

노송 즐비한 산길을 간다. 
청신한 솔향이 허파에 새 기운을 불어넣는다. 
수북한 갈쿠나무 밟는 발의 감촉이 푹신하다. 

슬쩍 스치고..

노골적으로 문지르고..
멧돼지들이 길을 따라 흔적을 보란 듯이 남겼다. 

회문산

14시 30분, 마을 뒷 당산, 돌무더기는 간 데 없고..
정맥 양짝으로 밭들이 치고 올라와 어수선하다. 

참나무

된비알이 나타났다. 
소나무 사라지고 참나무 일색, 고요한 산길에 낙엽 밟는 소리만 수북이 쌓인다.
낙엽 수북한 산길이 몹시 미끄럽다. 

고되게 오른 산정, 뉘엿뉘엿 황혼의 해가 반긴다. 
붉은 노을 한울에 퍼져 핍박에 설움이 받쳐~

.

능선 따라 한 동안 걸음을 맞추던 해님 산 너머로 넘어가시고 어둠이 내린다. 
얼마 만인가, 산에서 맞이하는 어둠..
산에 내리는 어둠이 좋다. 

동진강 물줄기 산을 가르며 들판으로 젖어든다. 
뭘 태우는 걸까, 연기 한 줄기 피어오른다. 

17시 45분, 지도상 태경산이라 표시되어 있으나 조망도 없고 아무런 표식이 없다. 
어둠 한층 짙어지고 노을 더욱 붉어지고..
아직 1km가량 남았으나 이제 내리막뿐이다. 

어둠에 휩싸인 내리막길에서 길을 두어 차례 놓쳤다. 
잠시만 길을 벗어나도 어김없이 가시덤불 나타난다. 
무시하고 치고 나가려다 두 번 다 실패하고 뒷걸음질, 숲 속 저만치서 올빼미 운다.
여우가 있어 소리를 받아줘야 하겠는데 화답 없는 올빼미 울음소리가 허전한 여운을 남기며 사라진다.

18시 30분, 구절재 도착. 
산내면엔 불빛도 드물더라. 
오랜만에 걸어본 어둠 속 산길, 홀로 걷는 어둠 속 산길은 인생을 살찌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