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녹두장군 일행이 입암산성으로 스며들었다. 
그들은 한양으로 잠입하고자 했으나 사흘 뒤 피노리에서 붙잡히는 몸이 되었다.
농민군 본대가 벌인 태인에서의 마지막 전투 이후 불과 닷새, 장군의 잠행은 너무도 짧았다. 

펄펄 눈이 내린다. 날이 몹시 차다. 
예기치 않았던 눈, 실컷 맞고 싶었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고민하다가..

호남정맥 개운치, 고갯마루엔 찬바람만 쌩쌩 매섭게 불고 있었다.
눈발이 날리지 않는다. 미리 제목까지 달아놓고 달려왔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호남정맥엔 눈이 내리지 않았다. 
방장산, 혹은 선운사로 갔어야 했다. 

초입은 대숲, 대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산에 안긴다. 

 

조릿대 숲을 지나 만난 오래된 전호의 흔적, 딱 있을 만한 자리마다 여지없이 나타나던..
그날의 흔적.

지나온 산줄기를 둘러본다.
눈앞에 고당산, 쩌기 멀리 사자산..
하늘엔 뜬구름 흘러간다. 
흘러서 어디로 가는 거냐.

저 건너 마을에 장날이라
송아지 끌고서 장터간다
서울간 내아들 생각하며
송아지 끌고서 장터간다
하늘 저 끝에 소구름이 흘러간다
어디로 흘러서 가는거냐 음~메 음~~메

망대봉 작전도로에서 바라본 쌍치 고라당, 땅기운이 응결돼 단단하게 뭉쳐진 듯한 잣방산이 유별나다. 
호남정맥은 잣방산을 중심에 두고 원을 그리듯 크게 선회하며 휘돌아친다. 
추령에서 발원한 추령천은 잣방산을 휘감아 돌아 피노리 앞을 지나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잣방산 너머 남하 후 추월산 지나 다시 북상하는 호남정맥이 보인다. 

큼지막한 내장산 산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래, 불출, 망해 연봉이 거대한 성채로 장엄하다. 
고창 쪽에는 짙은 눈구름..

한 동안 망대봉으로 오르는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터덜터덜..

멧돼지의 흔적, 진흙으로 떡칠을 해 놨다. 

잠시 눈발이 날리고..

눈 아래 여시목, 그 너머 추령봉.
이번 산행의 후반부이자 백미가 되는 구간이 남았다. 

잣방산을 바라보며 피노리로 향하는 녹두장군 일행을 그려본다. 
잣방산에서 북상하여 국사봉, 계룡산을 통해 피노리로 들어가는 새로운 경로가 그려진다. 
이 경로가 훨씬 수월하겠다. 
이 길로 한 번 가봐야겠다, 피노리..

해가 추령봉에 걸렸다. 
추령봉을 넘어야 집에 갈 수 있다. 
만만치 않은 길, 도착 예정시간을 30분 연장하여 뒤로 미루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계속 잣방산만 보여..

 

고개를 돌리니..
멀리 지리 주릉, 호남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의 주봉은 단연 반야봉이다. 
반야 없는 지리는 심심하다. 
반야봉 앞으로 만복대, 정령치로 이어지는 서북능선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눈구름은 종일 호남정맥을 범하지 못하고 고창땅에 눈을 뿌렸다.
내장산은 가히 명산이다. 내장 9봉이 둘러친 성곽이 마치 철옹성 같다. 

 

 

 

허나 해가 저물고 어둠이 깃을 내리자 눈구름이 철옹성을 해체하고 슬금슬금 정맥을 넘본다. 
호남정맥에 눈이 내린다. 
고창엔 폭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