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의 변산바람꽃 자생지를 두어차례 찾았으나 아직 일러 바람만 맞고 왔다.  
내변산의 자생지는 접근이 용이하고 크게 알려진 탓에 워낙 많은 탐방객들이 다니는 터라 훼손이 심각하다. 
꽃대를 피워올릴 겨를도 없이 너무 일찍부터 발길이 이어지는 탓일 것이다.
하여 어지간하면 거기는 가지 않겠노라 다짐하였으나 밤사이 내린 눈이 기어이 발길을 잡아 끌고야 말았다.
하지만 부안에 접어드니 의외로 눈이 없다. 고창, 부안보다는 정읍 쪽이 눈이 많았던 모양이다. 

할매는 어디 가셨는지 보이지 않고 주렁막대기에서 부지깽이가 되어버린 청아장만 헛간 담벼락에 세워져 있다.


자생지 밭 두둑을 따라 하얗게 깔려있는 건상한 군락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훼손 정도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꽃대가 한두개 올라올 무렵부터 이어지는 사람들 발길에 채여 뒤이어 나와야 할 더 많은 개체들이 꽃대를 올리지 못한 것이 분명해보인다.
연출을 위해 어디선가 이끼를 떠다 깔아놓고 사진을 찍은 흔적도 보이고 낙엽을 깨끗이 치워버려 맨몸을 내놓고 아슬아슬하게 몸을 지탱하고 있는 바람꽃들이 안스럽기까지 하다.
나 또한 자생지 훼손에 한몫 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진 몇 장 찍고 서둘러 나오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 노루귀를 보았던 장소에 가보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 노루귀가 피어 있다.
하얀 녀석들은 날이 춥고 흐려서인지 꽃망울을 닫고 움추리고만 있다.
진분홍 노루귀들이 그나마 꽃잎을 열었다. 


고창에 돌아와 농민회 일일주점이 열리는 무장면에 가니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